"삶이 곧 교육..교육비 걱정 마세요"

머니투데이 이경숙 기자 | 2008.01.16 10:52

[쿨머니, 행복공식 다시 쓰기]<3-1>부모-자녀-교사 모두가 행복한 대안교육

↑충북 괴산 청천면 '꿈터' 벽화.
아이들이 직접 그렸다.
ⓒ머니투데이
과천에 사는 한미영씨(46, 가명)는 아파트를 내놓을까 고민하고 있다. 쌓인 빚 때문이다. 18세 아들의 교육비만 한해 3000여만원이 든다. 1년 학비는 1600여만원, 민박 등 생활비가 1400여만원.

"아들이 다니는 곳이 오클랜드 국제고교(AIC)라고, 뉴질랜드에서도 명문이에요. 들어가기도 힘든 데에 합격했는데 부모된 도리로 안 보낼 수 없잖아요."

사업을 하는 남편은 최근 5년 동안 집에 돈을 가져다준 적이 없다. 한씨가 대전에서 학원을 직접 운영했을 땐 가계소득은 월 1000여만원이 넘었다. 지금 이 학원에서 나오는 소득은 거의 없다.

"부원장한테 맡겨놨더니 경영도, 평판도 다 망가졌어요. 이제 손 쓸 수가 없네요. 제가 어릴 때 꿈이 디자이너였거든요. '그린인테리어' 사업을 하고 싶어서 공부도 배울 겸 과천으로 왔는데, 그게 문제였나봐요."

올해 고등학생이 될 딸은 미대 진학이 꿈이다. 한씨는 딸아이 학원비와 과외교습비를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 그래도 아들, 딸한테는 집안 사정을 말할 수 없단다. 아이들이 꿈을 포기할까봐.

"아파트를 팔면 빚 갚고도 아이들 교육비가 남을거에요. 노후요? 아이들이 먹여 살리겠죠. 설마."

만약 아이들 교육을 투자로 치면 이건 상당히 위험부담이 큰 선택이다. 재테크 전문가들은 중·고등학교, 대학교 10년간 교육비를 현재가치로 따지면 1인당 연간 5000만원씩 5억여원이 들 것이라고 추산한다.

이유는 교육물가가 일반물가보다 상승률이 높은 데 있다.14일 통계청은 지난해 교육물가 상승률이 6%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전체 소비자물가가 2.5% 뛴 데 비하면 2배 이상 오른 것이다.

'투자' 후에도 변수가 많다. 일단, 자녀가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한다. 부모 부양 의지가 있어야 한다. 사회 상황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양극화, 고령화가 이대로 진행되면 부모들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자녀세대 인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교육비는 자녀양육에 압도적인 부담요인이다. 통계청이 지난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아동양육의 어려운 점으로 전국 가구주의 77.6%가 '사교육비 및 양육비용의 부담'을 꼽았다. '자녀 돌봄과 사회생활 병행의 어려움'은 9.3%, '주거공간 협소 및 편의시설의 부족'은 5.1%에 그쳤다.

막대한 교육비를 쏟아붓는 이유가 '투자'가 아니라 '자녀사랑'에 있다면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 교육비만 쏟아붓는다고 아이들이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뉴질랜드 명문고에서 공부하는 한씨의 아들은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

돈, 명성, 아름다운 외모에서 남보다 앞서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아이들은 우울증 발병 빈도가 높다.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퀸 엘리자베스 의료센터의 심리학자들이 2003년 진행한 연구결과다.

아이들도, 부모도 행복할 수 있는 교육은 없을까? 충북 괴산군 청천면에 사는 최미연씨(40)는 "아이들한테 행복한 추억을 주고 싶어서 시골로 왔는데 내가 더 행복하다"고 말했다. 인천 출신인 그는 2005년 괴산으로 들어와 오미자 농사를 짓고 있다.
↑꿈터 아이들이 자치회의 '야단법석'을 열어
안건을 의결하고 있다. ⓒ꿈터

"처음엔 나 때문에 아이들이 기회를 잃는 게 아닐까 두려웠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자기 문제를 스스로 잘 해결하면서 잘 커주네요. "

첫째 동녘(16)이는 실용음악가가 되겠다고 벌써 진로를 정했다. 일주일에 두번씩 청주까지 1시간30분 거리에 있는 음악학원을 자청해서 다닌다. 둘째 마루(14)도 조용하고 사려 깊은 소년으로 자랐다. 최씨는 "꿈터 덕분"이라고 말했다.

최씨의 두 아들이 다니는 '하늘지기 꿈터'는 월 회비 1만원짜리 방과 후 학교다. 2005년 카톨릭예수회와 성심수녀회가 공동으로 문을 열었다. 2명의 학부형교사, 2명의 귀농인이 교사로 자원봉사한다. 초, 중등학교 아이들 22명이 다닌다.

이 아이들에게 '꿈터'는 단순히 숙제를 도와주고 방과 후 시간을 보내는 공부방만은 아니다. 다른 아이들, 어른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삶의 공간이자 삶을 배우는 공간이다.


어느날, 꿈터 운영자인 남궁영미 수녀가 게시판에 '꿈터는 어떤 곳인가요?'란 질문을 적었다. 한 아이는 "놀면서 배우는 곳"이라고 답했다. 다른 아이는 "삶을 알게 해주는 곳"이라고 썼다. 다른 아이는 "재미 있는 곳"이라고 덧붙였다.

남궁 수녀는 "꿈터가 지향하는 가치는 '나다움'과 '어울림'"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아이들이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고 공동체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삶을 배워가면서 자신의 꿈을 키워가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꿈터에서는 삶이 곧 교육이 되고, 교육이 곧 삶입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모든 일을 성찰하고, 아이와 어른이 여러가지 관계를 통해 서로 배우지요."

물론, 꿈터 교사들도 다른 공부방이 하듯 아이들의 숙제를 도와준다. 그 다음이 다르다. 꿈터 아이들은 1시간 동안 숙제를 마친 후 명상을 한다. 어떤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편하게 명상할 수 있도록 지켜주는 '명상지기'를 자임한다.

명상이 끝나면 아이들의 삶이 시작된다. 아이들은 스스로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지난 성탄절에 어떤 아이는 '성탄 연극' 극본을 만들었다. 어떤 아이는 '루돌프 코는 왜 빨간가'를 조사했다.

프로젝트 평가는 없다. 다른 아이와 어른들은 감상하고 박수 치고 의견을 들려줄 뿐이다. 오자, 탈자를 교열하는 '빨간 펜'도 없다. 남궁 수녀는 "맞춤법은 학교에서 가르친다"며 "꿈터에선 글을 통해 대화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서로 배운다"고 말했다.

경제는 일과 삶 속에서 배운다. 아이들은 지난해 텃밭에 감자를 심어서 20만원을 벌었다. 올해 겨울방학 땐 인도 '마더 테레사의 집'에서 봉사하겠다는 '야심만만'한 계획을 세웠다.

정치는 아이들의 자치회의인 '야단법석'에서 배운다. 자치회의가 정한 법 1조는 "욕을 하면 욕쟁이 모자를 쓰거나 반성문을 써야 한다", 2조는 "'됐거든'이라는 말과 인터넷 용어를 쓰면 그날 하루 모든 사람한테 존댓말을 써야 한다", 3조는 "친구에게 바보라고 하거나 무시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이다.
↑윤호섭 국민대 시각디자인과 교수
(왼쪽에서 두번째), 꿈터 운영자인
남궁영미 수녀(오른쪽에서 세번째)가
아이들과 작업 후 기념사진을 찍었다.
ⓒ꿈터

겉보기엔 피터팬의 꿈의 동산, '에버랜드' 같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기가 쉽진 않았다. 아이들은 서로 자주 다퉜다. 남궁 수녀가 한때 "여성신문사가 준 '평등가족상' 상패를 차라리 안 보이는 곳에 치우자"고 할 정도였다.

어른들은 재정적 어려움을 감내해야 했다. 한 아이당 월 1만원씩 받는 경비로는 간식비도 대기 힘들었다. 남궁 수녀는 "그래도 신기하게 지금껏 별탈 없이 잘 왔다"며 "운영비가 떨어질 때쯤이면 누군가 돈이나 책을 보내주곤 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아무런 연고 없는 괴산까지 내려와 아이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친환경적 작품으로 유명한 윤호섭 국민대 시각디자인과 교수,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의 베스트셀러 작가 조병준 시인, 방송광고 애니메이터 김홍중 마스코 대표 등 다수가 다녀갔다.

그러나 꿈터 바깥의 부모들에게 이런 대안교육은 멀게만 느껴진다. 대안학교로 유명한 성미산 학교, 간디 학교로 아이들을 보내자니 이사하거나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탈학교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나 홈스쿨링(가정에서 하는 대안교육)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고병헌 평생학습사회연구소장(성공회대 교수)은 "대안교육은 대안학교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대안학교는 대안교육이라는 목적을 실현하려는 수단일 뿐이라는 것이다.

"쵸코파이를 밥으로 먹으면 이상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그 사람은 쵸코파이가 간식일 땐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제도권 교육도 마찬가지에요. '교육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란 철학이 서 있으면 대안교육은 어디에서든 시작할 수 있습니다."
↑꿈터 그룹사운드 '언저리스'가 동네 아이들을 모아 공연하고 있다. 이 음악실은 원두막 아래 빈공간에 아이들이 직접 계란판을 붙여 만들었다. ⓒ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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