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와인 왜 그리 비쌀까

전두환 신한카드 부사장 | 2008.01.13 12:17

[머니위크]전두환의 '나의 와인스토리'

인류역사상 최고의 걸작은 무엇일까?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르겠지만 로마 바티칸시국내 시스틴 성당의 천정과 벽면에 있는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두 그림이 아닐까 싶다.

평생 건축과 조각에만 매진해 왔던 미켈란젤로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명을 받아 1508년부터 4년 동안 혼자서 천지창조를 완성한다. 당시 속세의 왕들도 두려워했던 존재인 교황에게도 자신의 작품을 위해서는 결연히 맞서고 늘 혼자였던 그는 고독한 천재였지만 생전에 많은 부와 명예를 축적하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천정에 그려진 41.2 x 13.2m의 대작을 처다 보자면 5분 더 버티지 못하고 아픈 고개를 어루만져야 한다. 이 불가사의한 명작을 보면 같은 인간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나는 가난과 고독과 태양의 화가 고호를 사랑한다. 인정을 받기 위해 평생을 노력한 그의 1500점이 넘는 작품 중에 생전에 팔린 작품은 '붉은 포도밭”' 단 한편이다. 어떤 와인애호가가 구입했을까? 10만원에도 훨씬 못 미치는 돈 400프랑으로 아마 고호는 와인을 사지 못하고 당시 가난한 예술가들의 술인 압쌩뜨를 몇 병 샀을 것이다.

그는 중독되면 모든 것이 노랗게 보이는 황시증(黃示症)을 경험한 후 순수한 노란색을 그리기 위해 그 술을 마셨다. 자신의 육체와 영혼을 망치는 독주를 기꺼이 마신 후 그려, 광기에 찬 붓 터치로 유명한 '탁터 가세의 초상'은 1990년 1000억원이 넘는 당시 미술품 경매사상 최고의 낙찰금액을 기록했다. 죽은 후에야 인정받은 고호뿐만 아니라 당대에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은 행복한 예술가는 몇이나 될까?

천재의 대작 외에도 우리생활 주위엔 가끔 접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생활명품을 찾을 수 있다. 내가 사는 양지면의 한 괴상한 이발소 이야기- 우리가족이 그곳으로 이사를 간 2004년 늦가을 읍내 허름한 이발소 문을 열자 이발을 하다가 눈이 마주친 이발사는 의아한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혹시 예약하신 손님 맞으신가요? 잠시 멍해진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가 알았을까?

90년 가을 룩셈부르크 시내 한 이발소에서 똑같은 질문을 받고 당황한 경험이 떠올랐다. 예약 없이 온 무례한 동양인의 입장을 특별히 허락한 모차르트같은 머리를 한 그 이발사는 먼저 머리를 감고 후 사방을 오가며 온갖 구도를 잡더니 한참만에야 이발을 끝내고는 머리는 안 감느냐는 질문에 눈만 동그랗게 뜨고 손바닥을 내밀며 고개만 갸우뚱하고 있었다.

양지읍 내 S이발소는 주위 다른 이발소에 비해 50%가 더 비싸다. 한 고객을 위해 정성을 다하기 위해 매시간 마다 한사람의 고객만 예약 접수한다. 매주 일요일은 쉰다. 자신이 직접 개발한 알로에 면도거품을 쓰며 한번 작업에 1200여회의 가위질을 한다고 한다. 명품은 남다른 노력과 독창성의 결과가 아닐까?


명품와인은 왜 그렇게 비싼지 그리고 정말로 맛이 그렇게 좋은지 궁금해 하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6등급으로 나누어진 보석의 경우 3 내지 4등급까지는 투자금액과 보석의 질의 상승률이 비교적 비례하지만 상위등급으로 갈수록 0.1%의 숨은 만족을 위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가격을 감수하여야 한다.

위대한 와인의 요체는 다이아몬드의 평가기준과 같이 아무런 흠이 없는 맛의 투명함과 느껴지는 맛들 간의 완벽한 균형감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면 아예 비싼 와인을 사지 말일이다.

그림이나 조각 등 예술품은 알아보려고 노력하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명품와인을 즐기기 위해 사전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많이 맛보는 만큼 좋은 공부가 또 있을까 싶다.

동양화의 대가가 감았던 눈을 뜨고 한 폭의 난을 치는 시간은 정말 짧은 시간이다. 우리가 굳이 가격산정의 근거를 대라고 하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그분의 작품구상을 위한 고뇌, 순식간의 한 획에 천근의 무게를 담을 수 있도록 공력을 다듬어 온 그의 평생과 하늘이 내려준 천재성을 어떻게 평가하여 가격을 매길까 생각해 볼 일이다.

한잔의 Grand Cru 와인을 음미하면서 그 와이너리가 있는 독보적인 땅의 위치와 흙의 오묘한 배합과 그 골짜기의 바람과 기후를 그리고 집안 대대로 공들여온 경작자들의 땀과 고뇌를 연상할 수 있을까? 때때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와 위대한 와인을 완성시킨다.

나는 집에 석 점의 고흐 그림- '해바라기', '붓꽃', '방'-을 갖고 있다. 파리의 노트르담성당 근처 선물가게에서 이 그림들을 3000원에 산 후 비록 사진판이지만 10만원을 넘게 들여 표구를 하여 즐기고 있다.

나는 열네송이의 해바라기를 보며 더 순수한 노란 음에 도달하기 위해 자기 자신도 속일 수밖에 없었다고…. 그러기 위해 압생뜨를 또 마실 수밖에 없다고 읊조리던 고독하고 음울했던 작가를 떠올린다. 형편에 따라 명품와인의 세컨드와인이나 애써서 고른 적절한 가격대의 와인에 스스로 작위를 부여하여 즐긴들 누가 탓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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