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헷갈리게 만든 3억원짜리 어음

머니투데이 반준환 기자 | 2007.12.30 17:23

[명동풍향계] 경영사정 판단 못내려 블랙리스트에

금융(金融)에서 융(融)은 '솥'과 '벌레'를 합한 것이다. 솥에서 나오는 김이 하늘로 올라가며 벌레처럼 흘러다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는 설이 있다. 곧 금융은 '돈이 이곳 저곳으로 흘러다닌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중소기업인에게 이런 뜻풀이를 했다가는 뺨맞기 십상이다. 이들은 요즘 "나가기만 하고 들어오지는 않는 게 돈"이라는 심정이다. 급전을 구할 수 있었던 명동조차 자금줄이 막힌 때문이다.

◇명동, 왜 몸사리나= 시중은행이나 저축은행 등 '제도권'은 웬만해선 자금을 풀려 하지 않는다. 연말 BIS(국제결제은행)기준 자기자본 비율관리와 시장금리 급등에 따른 자금조달비용 상승이 한 이유다.

과거 이런 상황은 명동에 '호재'였다. 우량 기업을 골라 '안전하게' 대출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금을 풀지 않고 있으며, 주된 이유는 불확실성이 꼽히고 있다.

큰 자금을 굴리는 명동의 전주(錢主)들은 100억원으로 한달에 10억원을 챙기는 것 보다 한달에 1억원씩이라도 큰 위험없이 고정적으로 버는 것을 선호한다.

그런데 최근 명동의 주요 고객인 중소기업 경영여건이 급변하고 있어 돈줄이 풀리지 않고 있다고 한다. 어음을 할인하거나 자금을 빌려주려면 부실 정도를 평가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요새는 멀쩡한 기업이 다음날 부도를 당하고 부도업체가 금방 되살아 나는 등 판단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헷갈린 3억원짜리 어음= A건설은 얼마 전 직원 월급까지 밀릴 정도로 어려움이 컸다. 하지만 이제는 별다른 이유 없이 자금사정이 좋아져 체불임금을 모두 지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도직전 상황에 직면한 것으로 알려진 B건설은 최근 해외에서 1조원 공사를 수주하며 견실한 기업으로 부상했다. 반면 여러 분야에서 사세를 확장해 오던 C사는 갑작스레 부도를 맞았다.

이에 피해를 본 곳은 D사. D사는 경남을 근거로 사세를 키워왔는데 최근 불과 3억원짜리 어음을 할인하기 위해 명동을 찾았다. 만기도 보통 어음처럼 3개월 이내가 아니라 5개월이었다.

명동시장에선 D사의 경영 사정을 놓고 정반대의 평가가 오고갔으나 결국 일관된 판단을 내리지 못했고 D사는 어음할인에 실패했다. 아울러 블랙리스트에도 올랐다. 판단이 불가능한 것은 곧 불량업체라는 기준이 적용된 것이다.

명동시장 관계자는 "최근 중소기업에 자금을 풀지 못하는 것은 이처럼 헷갈리는 사안 때문"이라며 "최근 경기가 좋다, 나쁘다를 떠나 모르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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