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소득순이 아니죠"

머니투데이 이경숙 기자 | 2008.01.02 11:28

[쿨머니, 행복공식 다시 쓰기]<1-1>행복성장률을 높이자

↑함께걸음의료생협 조합원들이 지난해 6월 열린 체육대회에서 강강수월래 문지기 놀이를 하면서 즐거워하고 있다. ⓒ함께걸음의료생협
C(50, 남)씨는 자기 소유의 서울시 강남구 55평짜리 아파트에서 산다. 그 자신은 정책가이고 아내는 대학교수다.

그들의 두 딸은 미국에서 대학을 다닌다. 버클리대, 시카고대. 모두 명문이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C씨는 유산으로 복지재단을 운영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요즘 C씨는 수면제 없이 잠을 이루지 못한다. 눈을 감으면 온갖 그래프가 망막 속을 어지럽힌다. 새 정부 인선에 대해 들은 이야기가 귓가를 맴돈다. '인맥 관리' 상 새벽에 귀가한 아내는 술냄새를 풍기며 돌아눕는다.

C씨는 "내 이야기를 사람들이 귀 기울여 들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의 신년계획은 말이 잘 통하는 둘째딸을 만나러 시카고에 가는 것이다. 영국방송 BBC가 개발한 조사방법으로 측정한 결과, C씨의 행복지수는 55.8점.

K(36, 여)씨는 서울시 노원구의 보증금 3000만원, 월세 25만원짜리 아파트에 산다. K씨 부부의 연 수입은 둘이 합쳐 3000여만원.

그는 맘 맞는 사람들과 4년째 '함께걸음의료생협'에 삶을 '올인'하고 있다. 최근 작은 사업을 시작한 K씨의 남편은 짬짬이 불교대학에 다닌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 4학년까지 연년생인 세 아들은 학교가 파하면 학원에 가는 대신 의료생협 사무실에서 논다.

K씨는 "비가 오면 처마끝에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가족이 함께 미숫가루를 타 먹고, 밤이 되면 좋은 사람들이 한 데 모여 고구마를 삶아 먹는" 건강한 마을을 꿈 꾼다. 그의 행복지수는 80.6점.

언제부터였던가. 조금씩 사람들은 돈에 마음을 뺏겼다. 시간도 뺏기고 있다. 오늘의 행복은 내일로 미룬다. 돈 버느라 바쁘고, 자기계발 하느라 바쁘다.

제일기획이 5대 도시 13~59세 3600명을 조사해 11월말 발표한 '전국 소비자 조사(ACR)' 보고서는 "먼 훗날의 행복보다는 지금의 행복이 중요하다"는 응답이 2003년 50.1%에서 올해 36.8%로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즉, 10명 중 6명은 현재보다 미래의 행복을 준비하는 데에 가치를 두고 있다는 뜻이다.

재산증식에 대한 관심은 98년 16%였으나 2003년엔 21%, 2007년엔 21.4%로 꾸준히 늘어난다. 하지만 경제 살리기에 대한 관심은 98년 36.6%에서 2003년에 23%, 2007년에 17.8%로 계속 낮아지고 있다.

유진형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연구소 차장은 "현재의 생활이 힘들고 미래가 안 보이니까 사람들이 적금, 펀드 등 재산 증식에 관심을 가지고 미래의 행복에 투자하는 데에 더 많이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과연 돈이 미래 행복의 담보물일까? 연구결과를 보면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에드 디너 일리노이대 심리학 교수는 국제비교 결과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전후해 행복도는 더 이상 소득과 비례하지 않는 '변화'가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디너 교수가 발견한 더욱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인생의 후반부에 소득 수준이 더 높아졌다. 즉, 돈이 많다고 행복하지는 않지만, 행복하면 돈을 더 벌 수 있다.

도대체 행복이 뭐기에? 고대 철학자 플라톤은 행복의 조건으로 5가지를 꼽았다. 5가지의 공통점은 '부족함'.

"재산은 먹고 살기에 조금 부족할 것. 외모는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 약간 떨어질 것. 명예는 자신의 생각보다 절반밖에 인정받지 못할 것. 체력은 남과 겨루었을 때 한 사람에게는 이기되 두 사람에게는 질 것. 말솜씨는 연설을 할 때 청중의 절반 정도가 박수를 치는 정도일 것."

심리학자들은 "소득 등 환경이 미치는 영향은 행복의 10%"라고 보고한다. 나머지 행복의 절반은 유전된다.


데이비드 리큰 미네소타대 교수는 1936~55년에 태어난 쌍둥이 4000쌍을 연구한 결과, 일란성 쌍둥이는 따로 자라도 함께 자란 이란성 쌍둥이보다 행복 수준이 비슷한 경우가 50%나 더 많았다.

그렇다고 포기하진 말자. 행복은 '눈색깔'보다는 유전의 영향이 적다. 유전, 환경을 제외한 나머지 40%의 행복은 본인의 인생관과 우정, 사랑 등 대인관계, 일, 공동체, 운동, 취미 등 '의도적 활동'에서 비롯된다.

바로 이 '40%'에서 우리는 행복의 잠재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 소냐 류보머스키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주립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신의 저서 '행복도 연습이 필요하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체험이 행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잠재력은 행복 파이의 40%라는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의도적인 활동과 전략에 들어 있다. 타고난 눈 색깔은 바꿀 수 없어도 칼라렌즈를 통해 눈 색깔을 바꿀 수 있듯."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당신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우주를 창조한다('더 시크릿' 중)"고 말했다. K씨는 일과 공동체 활동을 통해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마을, 즉 '우주'를 만들고 있다. 당신의 우주는 어떠한가?

◆돈에 관한 행복한 사실 10가지(자료 : 영국BBC 다큐멘터리 '행복', 예담 펴냄)

1. 우리는 부자들이 친구도 자주 만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그 시간에 사무실에서 돈을 번다.

2. 부자 동네로 이사 가면 자신의 처지에 실망해 이웃을 질투하게 되니 이사 오기 전보다 불행해질 뿐이다. 이웃에 지지 않으려고 허세를 부리지 말라.

3. 휴가를 즐기거나 콘서트에 가는 것처럼 경험을 사는 것이 새옷이나 자동차처럼 물질적인 것을 살 때보다 훨씬 행복하다.(코넬대학 소속 리프 반 보벤과 토머스 길로비치의 2004년 조사)

4. 아이들은 용돈을 많이 받는다고 더 행복해지진 않는다. 아동의 정신적 행복을 결정 짓는 핵심요소는 부모와 또래집단과의 관계이지 가족의 소득 수준이 아니었다. (조나단 브래드쇼 요크대학 교수의 연구)

5. 돈보다 애정을 중시하는 사람은 인생을 좀더 만족스럽게 영위한다는 보고가 있다. 부를 우선시하는 사람은 행복을 덜 느낀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러한 현상은 가족을 부양하는 것보다 자신을 증명하고 권력을 획득하거나 과시하기 위해 돈을 모으는 사람에게서 두드러졌다.

6. 물질만능주의는 당신의 건강을 해친다. 돈, 이미지 혹은 명예를 좇는 젊은이들이 우울증에 더 잘 걸리며 인생에 대한 열정도 훨씬 적었다. 게다가 두통이나 인후염과 같은 신체적 증세를 더 많이 보였다.(녹스컬리지 소속 팀 캐서의 연구)

7. 돈이 많다고 해서 섹스 파트너가 더 많거나 섹스를 더 많이 하는 것은 아니다.(데이비드 블랜치플라워와 앤드루 오스왈드가 미국 성인 1만6000명을 조사한 결과)

8. 심리학자들은 쇼핑의 과정을 '문제인식'이라고 부른다. 쇼윈도에서 어떤 물건을 보게 되는 순간 그 물건이 없는 현 상황을 문제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5분 전만 해도 그 물건 없이도 행복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말이다.

9. 정신병력을 가진 부자는 가난한 사람보다 자살할 확률이 3배 높다.

10. 비교대상을 선택할 수 있음을 명심하라. 우리보다 사회적으로 더 성공한 사람과 비교하면 불행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보다 덜 성공한 사람을 보면 우리가 받은 축복을 헤아릴 만한 여유가 생긴다. 그래서 3등이 2등보다 행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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