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남미병' 털고 조용한 혁명중

상파울루(브라질)=글·권성희, 사진·임영준 기자 | 2008.01.01 06:45

[이머징마켓의 어메이징 기업] 브라질 경제<1-2>

▲모에마 지역 이비라푸에라 백화점.
2007년 12월 중순에 찾은 브라질은 활기가 넘쳤다. 상파울루 남쪽, 젊은 직장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모에마 지역의 이비라푸에라(Ibirapuera) 백화점은 월요일 오후인데도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도로엔 자동차들이 넘쳐 교통체증이 서울의 강남 중심가보다 심했다.

최경하 한국수출입은행 상파울루 사무소 소장은 "브라질 자동차 시장이 연간 20% 이상씩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어 승용차의 경우 수출할 물량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최근 헤알(브라질 통화)이 급격히 절상되면서 브라질이 수출 경쟁력을 잃어 자동차 수출이 줄고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그건 오해"라는 설명이다.

브라질 내수 경기가 호황이란 사실은 LG전자의 판매 추이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박성학 LG전자 브라질 법인 부장은 "매출이 2006년에 46% 늘어난데 이어 2007년에도 40% 이상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LCD TV, 플라즈마 TV, 휴대폰, 양문형 냉장고 등 프리미엄 가전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 판매가 호조세를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프란스 L. 하이머 상파울루 산업연맹(CIESP) 대외관계 이사는 "인플레이션을 극복하면서 경제적 안정을 이룬데다 원자재 붐으로 수출도 호황"이라며 "최근 헤알 절상으로 수출이 어려워진 측면도 있지만 내수시장이 워낙 강해 해외에 못 팔면 내수로 돌리면 된다"고 말했다.

건설도 붐이다. 아파트에 대한 수요 증가로 상파울루의 아파트 건축은 2007년 10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60.8%가 증가했다. 브라질 현지 신문은 "1980년대 이후 건설업이 이같은 파워를 보인 적이 없었다"는 말로 최근의 건설 호황을 표현했다.

▲상파울루 금융가 파울리스타.
브라질 내수경기가 살아나고 있다. 경제가 안정적인 성장을 계속하면서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덕분이다. 브라질 경제는 2006년에 3.7% 성장했다. 브라질 응용경제연구소(IPEA)에 따르면 2007년에는 4.5% 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이 같은 성장률은 지난해까지 5년 연속 10% 이상의 고성장을 계속해온 중국과 비교하면 오히려 부진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이에 대해 LG전자 박 부장은 "브라질은 세계에서 빈부격차가 가장 심한 나라라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며 "전체 인구 1억8000만명 중 구매력을 갖춘 인구는 절반 정도인 약 1억명이고 성장률이 5%라면 이들 1억명의 성장률은 10%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성장의 질이 다르다는 의견도 있다. 수출입은행 최 소장은 "베네수엘라가 2006년에 10%대의 성장률을 구가하고 아르헨티나가 8% 이상 성장했다고 하는데 베네수엘라는 순전히 원유 수출 덕분에, 아르헨티나는 워낙 침체가 심했기 때문에 성장률이 높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브라질은 수출, 소비, 건설, 물가, 실업률 등 경제의 모든 면이 견조한 상태라는 설명이다.

브라질 경제가 탄탄하다는 사실은 한 국가 경제에 대한 세계시장의 평가라고 할 수 있는 환율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달러 대비 헤알 환율은 2003년 이후 100% 가량 하락했다(헤알 평가절상). 주요 통화 중 세계 최고 수준이다. 헤알이 이처럼 초강세를 보이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경상수지 흑자와 외국인 투자 증가 때문. 브라질의 경상수지는 2002년 76억달러 적자에서 2003년 42억달러 흑자로 전환됐다. 그 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계속 100억달러 이상의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2004년 182억달러, 2005년 151억달러, 2006년 188억달로 꾸준한 수준을 유지해 오고 있다. 2007년에는 무려 290억달러에 이른 것으로 추계되고 있다. 이는 한국의 FDI 감소 추세와 정반대다. 한국의 FDI는 2004년 93억달러에서 2005년 63억달러, 2006년에는 37억달러로 계속 줄고 있다.

브라질은 FDI뿐만 아니라 국채와 주식에 대한 포트폴리오 투자도 급증세다. 브라질에 대한 포트폴리오 투자는 2005년 66억달러에서 2006년 90억달러로 늘었다. 2007년에는 1분기에만 89억달러가 이뤄져 전년 한 해 수준에 달했다. 덕분에 브라질 증시는 2002년말 대비 헤알 기준으로 6배가 뛰었고 달러 기준으로는 10배 가까이 폭등했다.

브라질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급증하고 있는 이유는 경제 펀더멘털이 놀랄만큼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브라질 국가신용등급이 올해 초에 투자적격등급으로 상향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채무국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어버린지도 오래다. 브라질의 외환보유액은 2003년 493억달러에서 2007년 1분기 현재 1095억달러로 늘었다. 반면 순외채는 2003년 1509억달러에서 2007년 1분기 현재 556억달러로 줄었다. 수출입은행 최 소장은 "조만간 브라질이 순채권국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브라질의 이 같은 경기 호조에 대해 '중국 효과'로 인한 원자재 수요 급증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중국 효과'가 사라지면 브라질 경제는 또 다시 고꾸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마중하 포스코 리우데자네이루 사무소 소장은 "아직까지도 브라질 경제를 허약하다고 보는 견해는 옳지 않다"며 "브라질은 확실히 '남미병'을 치유한 것 같다"고 말했다.

▲상파울루 국내선 전용 콩고나스 공항.
LG전자 TV와 기아차 광고판이 설치돼 있다.
마 소장은 "브라질은 수력 자원이 풍부한데다 석유를 자급하고 있으며 바이오 에너지인 에탄올도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수출국"이라며 "수력, 원유, 에탄올 등 모든 면에서 에너지 강국인 거의 유일한 나라"라고 지적했다. 브라질은 에탄올 생산량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지만 리터당 생산단가는 22센트로 미국의 45센트에 비해 훨씬 더 경쟁력이 있다.

브라질은 철광석과 원유 등 광물자원은 물론 농축산물도 풍부하다. 쇠고기, 닭고기, 사탕수수, 오렌지, 대두 등은 세계 수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포스코 마 소장은 "중국과 인도, 아프리카 국가들이 경제 성장으로 소비가 늘어난다면 자연히 광물자원과 농축산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며 "이 때 가장 유리한 국가가 어느 나라인가 생각해보면 바로 브라질"이라고 말했다.

김선영 삼성물산 상파울루 지점장은 "미국 경제가 타격을 받고 '중국 효과'가 끝나면 브라질 경제가 흔들릴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게 되면 에너지와 먹을 것이 자급되는 브라질보다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 경제가 더 휘청거리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브라질이 천연자원만 풍부한 나라라는 생각도 오해다. 브라질의 최대 수출품목은 광물이나 농축산물이 아닌 수송기계다. 수출품목 2위와 3위는 석탄 등 광물성 연료와 철광석으로 천연자원지만 수출품목 4위는 기계류다. 김건영 KOTRA 상파울루 관장은 "브라질은 남미에서 제조업 기반이 가장 탄탄한 나라"라며 "내외국 기업에 대한 차별이 없고 내수시장이 커 다국적 기업 대부분이 들어와 있다"고 말했다. 브라질엔 없는 제조업이 없을 정도다.

▲리우데자네이루 쇼핑가 그라시아 다빌라
브라질은 중간기술이 부족할 뿐 첨단기술에 있어서는 세계 수준을 달리는 '이상한' 나라이기도 하다. 브라질의 국영 석유회사인 페트로브라스는 세계 최고의 심해 시추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브라질의 엠브라에르는 세계 양대의 중소형 제트기 생산업체 중 하나다.

물론 브라질은 문제가 많은 나라다. 빈부격차가 세계 최고이고 공교육의 질이 크게 떨어지며 치안은 불안한데다 공공부문의 효율성은 극히 낮다. 이 때문에 조지프 페이지 미국 조지타운대 법학과 교수는 몇 년 전 브라질을 '벨인디아'란 말로 표현하기도 했다. 기술수준이나 경제규모는 벨기에급이지만 사회발전은 인도 수준이란 얘기다.

게다가 브라질은 각종 세법이 복잡하고 조세부담율이 38%(싱가포르 12%, 한국 20%)에 이른다. 2005년 이후 18차례의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준금리 11.25%, 기업 대출금리 30~40%의 고금리로 기업하기가 쉽지 않은 나라다. 그러나 이러한 취약한 사회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브라질 경제가 과거의 '남미병'을 치유하고 체질적으로 개선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저력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KOTRA의 김 관장은 "브라질은 모순이 많은 나라지만 시장경제 시스템은 역사가 오래돼 굉장히 탄탄하다"며 "문제점이 많긴 하지만 문제점이 다 노출돼 있어 경제에 특별한 악재가 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브라질은 1990대 중반 화폐 개혁과 공기업 민영화, 연금제도 개선 등에 따른 성과로 경제가 안정된 토대 위에 '원자재 수요 증가 → 기업 순익 증가 → 실업률 하락 → 소득 증가 → 소비 활성화 → 경제 성장'이라는 선순환 구조에 진입했다는 평가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브라질은 2006년 국내총생산(GDP)이 1조673억 달러로 처음으로 1조달러를 넘어서면서 10위권에 진입했다. 경제규모로 러시아(11위), 인도(12위), 한국(13위)을 모두 제쳤다. 1인당 국민소득(5700달러)은 4년새 배로 늘었다. 아직까지 브라질을 채무불이행 선언과 외환위기를 반복해온 나라로 여기고 있다면 생각을 바꿀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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