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달리는 자동차, 타실래요?"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 2007.12.24 12:09

[쿨머니, 사회적벤처를 찾아서]<4-1> 노란 유전(油田) 일구는 벤처 농업가들

2003년, 전북 부안은 전쟁터였다. 차가 불탔다. 건물이 부서졌다. 피를 흘리고 불에 그을린 이들이 줄줄이 병원으로 실려갔다. 7만 부안군민은 생업을 포기하고 싸웠다. 5개월 후, 마침내 정부는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부지선정 재검토'를 발표했다.

4년이 지난 2007년 12월. 부안에선 상처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한바탕 싸움이 휩쓸고 간 그 자리에는, 방사성 폐기장 대신 친환경의 노란 유전(油田)이 싹을 틔우고 있었다.

◇연료 얻고 쌀맛 좋고..1석4조=한국유채네트워크의 농민회원인 김인택씨(46, 부안군 주산면)가 1톤 트럭의 시동을 걸었다. 곧 어디선가 고소하고 맛있는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유채기름 타는 냄새예요. 지금 이 트럭은 유채 바이오디젤 100%짜리를 쓰고 있거든요. 유채기름을 넣으면 엔진 소음도 확 줄어들고 매연도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 집 경운기, 트랙터는 물론 보일러도 다 유채기름으로 돌아가요."

만 13년이 넘은 1994년식, 그것도 주행거리가 34만km가 넘는 트럭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엔진소리는 부드럽고 차체 진동도 없다. 유채 바이오디젤의 위력은 말 그대로 놀라울 정도였다.

부안 일대에서 김 씨는 '유채기름 전도사'로 통한다. 그의 트럭 짐칸에는 유채기름으로 만든 'BD100(100% 바이오디젤 원액)'이 여러 통 실려 있다. 시커먼 매연을 내뿜는 경운기나 트럭이 지나갈 때마다 불러 세워 유채 기름을 넣어주기 위해서다.

그는 유채 재배가 '일석사조(一石四鳥)'의 성과를 가져다 준다고 자랑했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서 유채를 키우면 봄에 질소 비료를 뿌릴 필요가 없다. 유채는 공기 중의 질소 성분을 땅 속에 붙잡아두는 대표적 녹비(綠肥) 작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채를 겨울논에 재배하면 질소비료를 쓰지 않고도 밥맛 좋은 쌀을 얻을 수 있다. 또 논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인 아산화질소(N2O)도 줄어든다. 유채로는 청정연료인 바이오디젤을 짜낸다. 그 찌꺼기로는 유기질 비료를 만든다.

◇"국내 바이오디젤 수요 10% 충족 가능"= 김 씨처럼 유채의 효과에 주목한 벤처적 농업가, 전국의 환경단체들, 바이오디젤 업체 관계자들은 올 4월 '한국유채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이들은 유채 재배를 통해 농가 소득도 올리고 환경을 살린다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올 들어 전북 부안에서는 유채 재배면적이 대폭 늘었다. 올해부터 3년간 농림부 주관으로 실시되는 '바이오디젤용 유채 시범사업' 지역에 부안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특히 부안 주산면의 유채 재배면적은 70만평에 이른다. 1평당(3.3㎡) 생산되는 유채종자 1kg에서 0.35ℓ의 바이오디젤 원액이 나오니, 주산에서만 24만5000ℓ의 바이오디젤이 생산되는 셈이다. 이 기름은 지역내 교통수단, 농기계에 바로 쓰일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각지 약 1500헥타아르(ha), 450만평의 논에서 유채가 자라고 있다. 여의도 5배에 이르는 넓이다. 재배면적은 전남 영광과 제주가 각각 500헥타아르(ha)로 가장 넓다. 여기서 총 175만ℓ의 바이오디젤을 뽑아낼 수 있다.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 아시아에서 최초로 바이오디젤의 상용화를 개시했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2005년 한 해 바이오디젤 업체가 생산해 정유사에 공급한 BD100은 총 1500만ℓ다.

이 BD100은 각 정유소에서 일반 경유와 혼합돼, BD5와 BD20의 형태로 전국 주유소에 보급된다. BD5, BD20는 각각 바이오디젤 원액이 5%, 20% 섞인 혼합연료다.


정부는 이번 시범사업을 통해 생산되는 유채 바이오디젤로 국내에서 필요로 하는 BD100 수요의 약 10% 정도를 충당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바이오디젤의 원료로 쓰이는 식물성 기름의 77%가 수입산 콩기름인 상황에서 유채는 수입산을 대체하는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김 씨는 "전라남도는 관내 평야에 토끼풀과 비슷한 자운영을 녹비작물로 심도록 권장하고 있다"며 "자운영 대신 유채를 전남의 그 넓은 평야에 심는다면 유채기름 생산량도 늘어나고 생산비용과 바이오디젤 가격도 대폭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의지 박약이 걸림돌"=그러나 유채 바이오디젤의 확산이 마냥 순탄치만은 아니다.

김 씨와 주산면 농민회 회원들은 올 6월 자신들이 직접 생산한 바이오디젤을 지역 학교버스 연료로 무상 제공한다는 계획을 냈다가 이를 전면 취소하고 말았다.

지난 4월 '석유 및 석유 대체연료 사업법'이 개정되면서 바이오디젤의 생산·판매는 물론 이를 사용하는 것도 '불법'이 됐기 때문이다. 이 법 29조는 '유사 석유제품을 제조·판매해서는 안되며 유사석유제품임을 알고 이를 사용해서도 안된다'고 규정한다.

길복종 한국유채네트워크 팀장은"폐식용유나 유채기름으로 만든 바이오디젤을 양로원 등 공익 시설에서라도 사용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산자부의 한 관계자는 "바이오디젤 원액 성분이 20% 섞인 BD20을 시험해본 결과 겨울철 시동이 안 걸리는 등 시동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결과가 나왔다"며 "품질의 안정성이 문제가 돼 유통을 허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채 재배 농민들은 "정부가 앞장서서 오해를 확산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안정성' 운운하는 것은 정부의 의지 박약을 드러내는 핑계일 뿐이라는 것이다.

4년째 유채기름을 사용한 김씨는 "일반 경유도 겨울철에는 얼어붙는다"며 "겨울용 경유에 첨가되는 부동액을 바이오디젤에 넣어주면 BD100이라도 아무런 문제없이 돌아간다"고 말했다.

그는 또 "농가 재배작물에 대해 보조금을 금지하는 자유무역기구(WTO) 규정도 '에너지 작물'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한다"며 "2009년 농림부가 주관하는 유채 시범사업이 끝나면 산자부가 에너지 작물 차원에서 유채 재배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기준 산자부 신재생에너지팀장은 "바이오디젤용 작물을 국내에서 생산하는 것과 해외 플랜테이션(대규모 기업농업)을 통해 들여오는 것 중 어느 게 '경제적'인지 판단해야 한다"며 유보적 입장을 내놨다.

김 팀장은 "유채재배 시범사업을 통해 국내 생산물량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나올 지 아직 알 수 없어 유채를 에너지작물로 지정하는 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채 에너지작물화에 대한 정부 방침은 내년 상반기 '제3차 신재생에너지 기본계획'을 통해 발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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