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승3패 정동영, 대선후 승부는

머니투데이 김성휘 기자 | 2007.12.19 21:19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의 정치 인생은 승리의 역사였다. 정치입문 12년만에 원내1당의 대선후보에 올랐다. 회사로 치면 초고속 승진이다.

정 후보는 MBC 기자·앵커였던 1995년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한다. 경력을 살려 대변인을 맡았고 96년엔 고향인 전북에서 전국 최다득표로 당선된다. 첫번째 승리였다.

97년 김대중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도왔다. 두번째 승리. 정 후보는 2000년 또다시 전국 최다득표로 재선하고 여세를 몰아 민주당 최고위원에 도전, 당선된다. 3번째 승리였다. 이때 완성된 폭발적인 연설솜씨는 이후 그의 전매특허가 된다.

정권 말기 청와대에서 권노갑 민주당 최고위원을 비판했던 일이 공개됐다. 정치권에 파란이 일었다. 이른바 정풍 운동이 시작됐다.

정 후보는 천정배 신기남 의원과 함께 '천신정'으로 불리며 급부상했다. 권 최고위원은 2선으로 물러났다. 4번째 승리.

이를 바탕으로 2002년 민주당 경선에 도전했다. 경선에서 졌지만 이걸 실패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었다. 경선 완주 뒤 노무현 후보를 적극 도왔고 노 후보는 당선됐다. 정동영의 5번째 승리였다.

6번째 승리는 열린우리당 창당과 17대 총선 압승이었다. 정 후보는 노인폄하 발언으로 위기를 맞았지만 당 의장과 비례대표 자리를 내놓은 정면돌파로 이겨냈다.

거칠 것이 없었다. 통일부장관을 맡아 유력한 차기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참여정부가 좌충우돌하면서 그의 인기도 급격히 식었다.


2006년 당 의장을 다시 맡아 5.31 지방선거를 진두지휘했지만 결과는 참패. 당시 적장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정치인생에서 최초이자 최대의 패배였다.

두달 뒤 7.26 재보궐 선거. 노 대통령으로부터 서울 출마 권유를 받지만 이를 거부했다. 이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정치적으로 '궤멸'됐다. 두번째 쓰라린 패배였다. 정 후보는 독일로 외유를 떠났다.

절치부심한 정 후보는 올 초 귀국 후 전열을 가다듬었다. 우리당 탈당, 대선 도전 뒤 신당 후보로 선출됐다. 오랜만에 맛보는 승리, 7번째였다.

그리고 열번째 승부였던 올 대선을 맞았다. '이명박'이란 벽을 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대선은 끝났지만 정국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기에 정 후보에게 기회는 많다. 향후 야당의 구심점이 돼 정동영식 정면돌파를 보여줄 가능성이 높다.

현재전적 7승3패. 그의 나이 이제 겨우 54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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