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무차별저장…'콜센터 괴담'

이구순 기자 | 2007.12.17 08:04

사전통보 없이 녹취...기업에 불리할 때만 증거로 내밀어

직장인 A씨는 몇달전 평소 사용하는 카드사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사용한도 증액을 요구했다가 퇴짜를 맞은 적이 있다. 급히 세금을 내기 위해 한도증액을 요구했지만 너무 복잡한 서류를 요구하는 바람에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그런데 세금납부용으로는 복잡한 서류 없이도 한도증액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최근 알게 된 A씨는 해당 카드사에 다시 전화를 걸어 항의를 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카드사가 5~6개월전 A씨와 콜센터 직원의 통화내용 녹취본을 증거로 내밀면서 "세금납부용이라고 명확히 밝히지 않아 증액이 어려웠고 콜센터 직원의 잘못은 없었다"며 "카드사에는 잘못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A씨는 카드사 콜센터가 고객들의 통화내용을 일일이 녹취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6개월 가량 지난 뒤에도 이를 보관하고 있다가 찾아내 증거로 제시한 사실에 더 놀랐다.

16일 콜센터 대행사업을 하는 업체들에 따르면 은행이나 보험사, 카드사, 통신회사 등 대형 콜센터를 운영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고객과 콜센터 직원의 통화를 일일이 녹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별로 다르지만 이 녹취본은 일반적으로 1년 이상 보관된다.

이는 콜센터들이 첨단 IT기술을 도입하면서 음성을 디지털로 녹취, 보관할 수 있게 되면서 가능해졌다.

문제는 기업들이 불리할 경우에만 보관된 통화내용 녹취본을 제시하며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A씨와 같은 경우다.

반면 녹취사실조차 모르는 고객 입장에서는 과거에 잘못된 콜센터 직원의 안내를 받았다 해도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의 존재여부 자체를 몰라 증거제시 능력이 떨어진다.

 
또 다른 문제는 녹취사실이 고객에게는 사전에 통보되지 않아 개인정보 침해는 물론이고 녹취본이 얼마나 오랜 기간 보관되는지, 어떻게 활용되는지 여부를 규정하는 법규가 없다는 것이다.

단순한 음성을 개인정보로 보기는 어렵다는게 일반적인 지적이지만 고객의 이름과 신분, 통화날짜, 내용이 모두 포함된 통화내용은 분명히 개인정보로 분류해야 한다는게 개인정보보호 관련 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이 때문에 기업이 콜센터와 고객의 통화내용을 녹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전에 고객에게 통보하고 이를 어떻게 보관하는지, 보관기간을 얼마로 할지 등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통화내용이라는 개인정보의 보호와 함께 분쟁이 발생할 경우 고객도 필요한 증거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기업에 이 정보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보통신부 관계자는 "대부분의 콜센터들이 고객과의 통화 내용을 녹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현행 개인정보보호법률은 통화내용 자체를 개인정보로 규정하지 않아 보호규정이 모호하고 통신비밀보호법에도 당사자의 통화 녹취를 금지하는 규정이 없어 콜센터의 녹취를 규제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통화내용 녹취본이 기업에만 유리한 증거로 활용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면 이에 대한 규정을 마련해 소비자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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