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가까이 있다

김영권 부국장대우 | 2007.12.22 15:51

[웰빙에세이]나는 걷는다(4)

올해도 열심히 걸었다. 하루에 평균 4km씩 주 5일은 걸었으니 1주일에 20km, 한달에 80km는 걸은 셈이다. 1년으로는 960km이니 얼추 1000km를 걸었다고 해도 될 것같다.

1000km중 가장 많이 걸은 길은 러닝머신 위다. 그 길이야 마냥 돌고 도는 길이니 설명이 필요 없겠다. 그러나 다른 길들은 걸을 때마다 새로웠다.

우선 백운호수. 둘레가 4km인 이 호수 산책 길에서 옆으로 빠져 백운산으로 오르는 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길이다. 호젓한 이 오솔길에 들어서면 갑자기 사위가 고요해지면서 평화로운 기운이 나를 감싼다. 올해도 휴일이면 그 길을 거의 빠짐없이 걸었다. 567m 백운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정말 흥미진진한 소설같다. 소설처럼 '기승전결'이 있다.

핸드폰으로 찍은 백운산 오솔길의 4계-봄
여름

















도입부에 해당하는 1막의 길은 아주 편안하고 아름답다. 이 길은 산허리를 감싸고 돌면서 백운호수 전경을 9번 보여준다. 2막부터는 길이 좁아지면서 가파라지고 3막에서 절정에 이른다. 숨이 턱에 차는 고비에 이르면 마침내 백운산 능선이 나타나고 다시 부드럽게 오르내리며 정상에 다다르는 마무리 4막으로 연결된다.

가을
겨울

















나는 주로 이 길의 1막을 걷는다. 일주일에 한두번 들르면 그때마다 숲도 색깔을 바꾼다. 봄의 빛깔인 연두색, 여름의 빛깔인 초록색, 가을의 빛깔인 갈색도 볼때마다 채도와 명도가 다르다. 나는 그 길에서 생명의 기운이 꿈틀대는 봄의 용솟음과 여름의 왕성함, 가을의 차분함과 겨울의 고적함을 모두 맛보았다.


백운호수 다음으로 많이 걸은 길은 청계천이다. 봄볕 따스한 날과 가을 바람이 선선한 날이면 사무실 앞 청계천이 나를 부른다. 청계광장에서 평화시장과 두타빌딩이 있는 모간수교까지 2.7km를 왕복하면 딱 1시간 걸린다.

점심 때에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나는 눈을 감고 그 음악을 듣는다. 눈을 감으면 귀가 열린다. 나는 물 흐르는 소리와 폭포 부서지는 소리 사이로 어우러지는 음악 소리를 들으면서 어느 깊은 계곡을 걷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그것도 싱거우면 마전교 쯤에서 빠져 나와 광장시장 골목을 누빈다. 나의 청계천 산책은 이렇게 행복했다.

청계천 다음으로 많이 걸은 길은 남산 산책길. 장충동 국립국장에서 3.5km 북측 순환로를 따라 남대문 숭의대 쪽으로 나오면 40분이 걸린다. 벗꽃이 막 피어 오르는 날, 그 꽃이 만개한 날, 그 꽃잎이 바람에 눈처럼 날리는 날, 개나리 진달래 어우러져 온통 화려한 봄 날, 그 길을 찾는다. 단풍 짙어 세상이 붉게 물든 청명한 가을 날, 그 길을 걷는다.

남산의 봄
삼청공원에서 북악산 오르는 길-초여름

















남산 길 다음은 삼청공원에서 북악산 성곽을 따라 말바위 쉼터에 이르는 길이다. 삼청공원을 한바퀴 돌다가 운좋게 발견한 이 길은 다녀오는데 50분 걸린다. 초여름과 초가을 햇살이 따가운 날, 그 길을 걷는다. 숲과 빛이 숨바꼭질하면서 만들어 내는 실루엣이 환상적이다.

당신의 주변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길이 있는가. 아니면 좋다는 길은 하나같이 멀리만 있는가. 그래서 걸을 길이 없는가. 걸을 길은 있는데 걸을 틈이 없는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길은 가까이 있고, 걸을 틈도 있을 것이다. 당신이 걷지 않는다면 그건 그럴 마음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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