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텬당직로(天堂直路)'와 샤또 페트리스

전두환 신한카드 부사장 | 2007.12.22 15:43

[머니위크]전두환의 '나의 와인스토리'

필자가 사는 용인시 양지면 인근에는 1984년 로마 교황청에 의해 성인품에 오른 김대건 신부 관련 성지가 여러 곳 있다. 1821년 충남 당진군 솔뫼에서 태어나고 1827년 경 가족이 천주교 박해를 피해 현재 양지리조트 내에 그 집터가 남아 있는 골배마실로 피신하여 살았다. 이곳이 김대건 신부가 학문을 익히고 교리를 배운 성장지이고 15세 때 이 은이 공소에 있던 모방신부로부터 세례를 받고 신학생으로 발탁된 곳이다.

한국인 최초로 사제서품을 받고 1845년 귀국 후 은이 성지를 중심으로 인근 호법면의 단내 성지 등에서 짧은 사목활동을 하다가 1846년 체포되어 국가반역죄로 26세의 젊은 나이에 새남터에서 효수형으로 순교했다. 옥살이를 하는 동안 조정의 요청으로 세계지도와 지리 개설서를 만들었다고 알려지고 있으나 전해지지 않고 있다.

프랑스 보르도지방은 최고급 와인의 대명사이다. 온화한 기후를 보장해 주는 대서양과 수많은 지류를 통해 포도밭에 물을 공급하는 지롱드강의 풍부한 수량,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서쪽의 해송 숲 등 천혜의 요건을 갖춘 지역이다. 지롱드강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자갈이 많은 토양인 메독과 그라브지역, 우측에는 진흙으로 된 토양인 생떼밀리옹과 뽀므롤 지역이 있다.

뽀므롤은 보르도에서 가장 재배면적이 적은 지역이며 메독이나 인근 생떼밀리옹 등과 달리 와인의 그랑 크뤼(Grand Cru) 등 등급분류가 없다. 이 지역 와인은 모두가 ‘최고이다’라는 자부심의 결과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옛날에는 보르도시에서 그곳으로 가자면 큰 강을 배로 건너는 불편 때문에 소외되었다는 편이 정설이다. 하지만 근래에는 페트뤼스(Petrus)를 필두로 주옥같은 와인들을 생산하고 있다.

페트뤼스는 보르도에서 가장 위대한 와인의 하나이고 적은 생산량으로 인한 희소성이 있어 가장 비싼 와인이기도 하다. 페트뤼스는 예수님의 수제자이자 초대교황인 성 베드로의 프랑스판 이름이다.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을 들어서면 얼마 안가서 오른편에 사람들이 늘 줄 을 서 있다. 좌대 높이 앉아 있는 성 베드로의 발가락을 만지기 위해서다. 발가락부분만 반짝거리도록 많은 사람들이 그를 경배하는 이유는 그의 손에 있는 천국의 열쇠 때문은 아닐까? 페트리스의 와인병 라벨에는 천국의 열쇠를 가진 베드로가 형상화 되어 있다.

싸또 페트리스는 메를로 품종 95%, 까베르네 프랑 5%로 만들어지며 진한 자주색을 띄고 블랙커런트, 까시스향과 블랙베리의 진한 달콤함과 매콤함 등이 복합적인 아로마를 형성한다. 특히 뽀므롤지역 와인의 특색인 송로버섯 향이 독특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양식재배가 불가능한 송로버섯은 얼마 전 프랑스의 어느 경매에서 1.5kg짜리 대형버섯이 약 3억원에 낙찰되었다. 가히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음식재료라 할 수 있다.


나는 가끔 조용한 은이 공소를 들린다. 그곳에는 김대건 신부의 유해일부가 보존되어 있고 몇 점의 한국 초기교회 시절의 기도서 등 유물이 보존되어 있다. 그 중 내 눈에 띄는 것은 너덜너덜하게 다 헤어진 손바닥만한 기도서 ‘텬당직로(天堂直路)’이다.

1780년경 프랑스 모예신부가 저술한 천당 길로 인도하기 위한 신심서(信心書)이다. 책에서 말하기를 천당에 가는 것 즉 상생(常生)을 얻으려면 세 가지 요긴한 공을 세워야 하는데, 착한 일, 선한 뜻, 천주의 성총이 그것이다. 라고 하였다.


한 병에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페트리스를 음미하면 천국의 의미를 만분의 일은 알게 될까?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 페트리스를 맛보지 못하였다. 이 싸또는 수확기에 비가 오면 농장에 헬리콥터를 띄워 수분을 말린다고 한다. 최고를 만들기 위해 작은 부분에도 최선을 다하는 삶의 자세가 바로 텬당직로를 향하는 기도하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나는 언젠가 꼭 페트리스를 맛보겠다는 생각은 없다. 왜냐하면 때에 따라 내게 감동을 주었던 와인은 반드시 그랑 크뤼급이나 가격이 높은 와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성 베드로의 천국의 열쇠, 싸또 페트리스, 텬당직로 중에 조그맣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기도서에 마음이 더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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