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우리 이웃의 희망 '사회적 기업'

머니위크 배현정 기자 | 2007.12.24 14:52

[머니위크 커버스토리]더불어 사는 삶

"다녀오세요."

구직자들이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가장 듣고 싶어하는 '한 마디' 다.

장애인 등 취약계층의 바람도 이와 같다. 청년 비정규직을 일컫는 '88만원 세대'라는 신조어가 유행하는 시대, 심신의 불편을 지니고 있는 장애인이나 저학력층에게 일반 기업 등으로의 취업은 사실상 '좁은 문'도 아닌 '닫힌 문'이다.

'21C' '복지국가'라는 말이 무색하게 월급의 적고 많음을 떠나 일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리고 싶어하는 이들이 우리 사회에는 많은 것이다.

소아마비 장애를 지닌 이귀현(가명ㆍ43) 씨. 재봉 일을 하는 그의 일에 대한 바람도 그처럼 소박하다. 연봉 인상이나 승진 등의 얘기는 '다른 세상' 얘기일 뿐. 그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그저 '잘리지 않고 오래도록 일하는 것'이다.

채 스무 살이 되지 않는 나이에 미싱을 잡기 시작해 경력이 20년이 넘었건만 그의 급여는 월 100만원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이마저도 감사하다.

이 씨는 "일감이 넘칠 때는 장애인 비장애인 가릴 것 없이 고용하다가도 일이 없어지면 장애인 먼저 해고된다"며 "2000년대 들어 의류 공장들이 대부분 중국 등으로 옮겨가면서는 6개월 일하고, 6개월 쉬는 식의 '실업의 반복'이 계속돼왔다"고 하소연했다.

이런 그에게 최근 희소식이 생겼다. 그가 실업의 늪을 피해 취직한 장애인보호작업시설이 정부의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 받았다는 것이다. 이씨는 "제작한 옷의 판매가 신통찮을 때면 아무리 장애인보호작업시설이라 해도 문 닫는 것이 아닌가 불안했는데, 정부의 지원으로 안정적인 고용이 이뤄지면 좋겠다"며 웃었다.

◆ 노동부 사회적 기업 최초 인증

좋은 일도 하고 돈도 버는 ‘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 1호가 우리나라에도 처음 탄생했다. 이번에 인증된 사회적기업은 사회적 약자인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나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며 이를 위해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을 말한다.

노동부는 올 7월 시행된 ‘사회적기업육성법’에 따라 사회적기업육성위원회 심의를 거쳐 아름다운가게, 위캔, 컴윈, 다산환경, 동천모자 등 36곳을 ‘사회적기업’으로 선정하고 11월 20일 서울 고용지원센터에서 인증식을 가졌다.

이번에 인증된 36개 사회적 기업에는 현대자동차가 연계된 (사)안심생활을 비롯하여 학교나 건물 등에 청소대행서비스를 제공하는 (주)함께일하는세상, 문화소외계층에 공연문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노리단,세종장애아동후원회 장애인통합지원센터,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등이 포함됐다.

이번 인증을 통해 선정된 사회적 기업들에게는 새해부터 ▲ 인건비(참여자(월 78.8만원) 전문인력(월 120만원)) 및 사업주부담 4대 사회보험료 지원 ▲ 법인세,소득세 감면 등 세제지원 ▲ 시설비 등 융자지원(1개 기관당 1천5백만원) ▲ 공공기관 우선구매 등 보호된 시장 제공 ▲ 전문 컨설팅 기관을 통한 경영, 세무, 노무, 회계 등경영지원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기권 노동부 고용정책관은 “인증된 사회적기업에게는 각종 혜택을 부여해 사회적기업이 양적ㆍ질적으로 성장하도록 돕겠다"며 “국내의 사회적기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부의 육성정책뿐 아니라 NGO, 기업, 지자체등 전국적인 관심과 지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인증 기업의 경우 분야를 살펴보면 환경, 보건, 문화, 교육 등으로 일부 편중된 감이 없진 않다. 이에 대해 노동부의 한 관계자는 "이번에는 36곳에 불과했지만 앞으로는 사회적 기업의 문을 넓혀 이러한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는 곳이라든지 은퇴한 CEO들이 마케팅을 조언해주는 기업 등 다양한 형태의 선진적 사회적 기업이 많이 배출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내년부터는 전국고용지원센터를 통해 분기별(혹은 수시) 인증 신청을 접수할 계획이다.


사회적 기업은 취업 및 창업 희망자들에게 또 하나의 이상적인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오은경 노동부 사무관은 "아직은 초기단계에 있지만 대학 동아리 등에서 관련 정보를 공유하며 사회적 기업으로의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며 "좋은 일을 하며 수익도 내는 사회적 기업의 창업 등이 활성화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교보 다솜이, 금융권 유일의 사회적기업 배출

금융권 유일의 사회적 기업도 배출됐다. 교보생명과 실업극복국민재단의 '교보다솜이 간병봉사단'에서 발전한 '다솜이재단'이 사회적기업 1호로 인증받는 쾌거를 일궈냈다.

사업을 시작한 지 4년 만이다. 2003년 20명으로 시작된 '교보다솜이 간병봉사단'은 간병인들에게 전문 간병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안정적인 임금과 4대 보험제도 등을 제공하면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왔다. 이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성가장들에게 일시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역량개발의 기회와 일자리를 제공해 스스로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심어줬다.

이후 '교보다솜이 간병봉사단'은 여성가장들에겐 일자리를 저소득층 환자들에겐 무료 간병서비스를 제공하며 사회적 일자리 창출의 대표모델로 자리매김했다.

이 사업을 통해 무료 간병서비스를 받은 환자가 7000명을 넘어섰고, 20명으로 출발한 작은 봉사단이 230여 명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웬만한 중소기업보다도 큰 규모다. 지원금액도 연간 17억원에 달한다.

2006년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환자간호를 위해 간병인을 고용할 경우 간병비가 주당 평균 38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환자는 물론 그 가족들에게도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교보다솜이 간병봉사단의 서비스를 받은 환자는 2750명. 평균 2주 동안 간병인을 둔다고 했을 때 '교보다솜이 간병봉사단'을 통해 20여억원의 사회적 비용을 아낀 셈이다.

지난해엔 노동부가 발표한 기업연계형 사회적 일자리 사업으로 선정됐고 일반인 대상의 유료 간병서비스까지 진출해 서비스 제공의 폭도 넓혔다. 또 지난 10월에는 '재단법인 다솜이재단'을 설립하여 사회적 기업 출범을 위한 독립을 준비해왔다.

다솜이재단 유재호 팀장은 "이번 인증으로 자부심과 함께 책임감이 커졌다"며 "앞으로 간병서비스 외 사업을 다각화해 단순히 좋은 일 하는 기업이 아닌 공익과 수익을 조화롭게 창출해내는 사회적 기업의 좋은 모델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 미국 등에선 1970년대부터 사회적 기업 활동

사회적 기업은 국내에서는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유럽,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활동하기 시작했다.

영국에는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5만5000여개 사회적 기업이 활동 중이다. 노벨 평화상으로 유명한 무하마드 유누스 총재의 요쿠르트 회사인 ‘그라민-다농 컴퍼니’, 영국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이나 토니 블레어 총리만큼 유명한 요리사인 제이미 올리버가 만든 ‘피프틴’ 레스토랑, 세계 1위의 자산가인 MS의 빌게이츠의 지원으로 유명해진 저개발국 치료제 개발 및 판매기업 ‘원월드헬쓰’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회적기업들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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