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분리, 지주사 전환의 암초

김일태 객원필진 | 2007.12.21 13:48

[머니위크]김일태의 기업이야기

1982년부터 도입되어 실시되어오던 금산분리 정책에 대한 폐지 논의가 최근 수면위로 떠오르며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심지어는 금산분리의 폐지가 일부 대선후보의 선거공약으로 까지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통 금산분리(金産分離)라고 표현하지만 은산분리(銀産分離)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왜냐하면 현행법상 산업자본은 은행을 제외한 다른 금융회사의 지분보유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삼성그룹은 은행을 제외한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증권, 삼성카드, 삼성투신 등의 금융계열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한화그룹 역시 대한생명, 한화증권, 한화손보 등의 금융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결국 현행 금산분리 제도의 핵심은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소유를 4%로 제한하고 있는 은행법 제16조의2 제1항 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소유를 제한하고 있는 은행법 규정과는 반대로 금융자본의 산업자본 지배를 제한하고 있는 공정거래법 제11조와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제24조와 부칙 제5조를 대표적인 금산분리 규정이라 할 수 있다.

공정거래법 제11조는 원래 금융회사의 비금융계열사 주식 의결권행사를 금지한 규정이었는데 2001년 김대중 정부 때 30%까지 허용하는 것으로 개정되었다가 다시 2004년 참여정부에 의해 3년에 걸쳐 허용한도를 단계적으로 축소하여 최종적으로 15%에 맞추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한편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이하 금산법) 제24조에 따르면 금융회사는 비금융 계열사의 의결권 있는 주식을 단독으로 20% 이상 소유하거나, 5%이상 소유하면서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려면 금융감독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금산법 부칙 제5조는 1997년 금산법 시행 이후 제24조 위반사항에 대해서는 5%를 초과한 지분에 대해서 의결권 즉시 제한 및 5년 이내에 매각을 1997년 이전부터 위반한 경우에는 5% 초과분에 대해 2년 유예기간 후 의결권 제한만을 규정해놓고 있다.

금산법 개정법률 부칙 제4조 제2항에 따르면 1997년 금산법 시행 이전 보유하고 있던 금융기관의 경우 공정거래법 제11조에 따라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규정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5%초과분이 아니라 15%초과분에 대해 의결권이 제한되게 된다. 부칙 제4조 제2항은 법리적으로 볼 때 금산법 위반을 공정거래법으로 규제하는 모순이 존재하고 금산법 제24조의 5%제한과도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는 규정이라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삼성그룹의 경우에는 1997년 이후 금산법 제24조 위반사항인 삼성카드의 삼성에버랜드 지분 25.64%의 경우 5%를 초과하는 20.64%에 대해 의결권이 제한되며 5년 내에 매각해야 한다. 그러나 에버랜드에 대한 계열사 그룹의 지분율이 90%이상이라 그룹지배구조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1997년 이전부터의 위반사항인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가지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8.52% 중 5% 초과분인 3.52%의 경우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의결권 제한이 이루어지는데 금산법 개정법률 부칙 제4조 제2항에 따라 5%초과분이 아닌 15%초과분에 대해 의결권제한이 들어가므로 실질적으로 의결권행사에 아무런 제약이 없게 된다.

금산분리 원칙의 도입취지는 금융회사의 특수성상 갖게 되는 우월적 지위와 정보력을 바탕으로 제조업에 대한 지배를 확장하고 권한을 남용하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은행은 특유의 승수효과로 인해 적은 자본금으로 막대한 자산을 운용하기 때문에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력이 실로 막대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산업자본의 금융기관 지배를 금지하는 것은 산업자본이 금융회사의 정보력과 우월성을 악용하는 것을 방지하고 금융회사가 제조업체 오너의 사금고화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이미 우리는 IMF라는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 정경유착과 일부 대기업과 금융기관의 모럴해저드로 인한 엄청난 피해와 고통이 국민들에게 전가되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하였다. 따라서 금산분리 원칙을 통해 산업자본의 금융지배와 금융자본의 산업지배로 인한 폐해를 사전에 예방할 필요성이 있다.

일부에서는 적대적 M&A의 방지와 외국투기자본으로 인한 국부유출을 우려해 산업자본의 은행업 진출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이는 금산분리 원칙의 취지를 고려할 때 폐지의 이유가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외국산업자본에 의한 국내 금융에 대한 지배를 가속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국내 토종 글로벌 금융기관이 탄생하지 못한 이유는 산업자본의 은행업 진출을 제한한 금산분리 규정 때문이 아니라 관치금융, 정경유착 등 정부와 금융기관의 무능과 도덕적 해이 때문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특히 최근 드러나고 있는 삼성과 우리은행 사이의 불법행위들을 볼 때 한국에서의 금산분리 폐지는 절대로 허용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금산분리의 원칙은 한국의 후진적인 금융시스템으로 인해 특별히 존재하는 제도인가? 작년 12월 한국금융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아니다라는 결론이다. 자료에 의하면 세계 100대 은행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산업자본의 수는 292개에 이르는데, 그 중 89%에 해당하는 260개의 산업자본의 경우 은행에 대한 지분율이 4%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세계 100대 보험사의 경우에도 산업자본의 88.9%가 4% 미만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는 은행은 물론이고 보험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국가에서 금산분리 원칙이 철저히 지켜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조사에 따르면 산업자본이 최대주주로서 은행을 사실상 지배하는 경우는 독일의 Bayerische Landesbank(100%), Deutsche Postbank AG(50%)와 오스트리아의 RZB(81.2%), 네덜란드의 BNG(50%) 등 292개 중 4개에 불과했다.

아직도 일부에서는 금산분리 완화에 대한 주장이 나오고 있고, 금산분리규정으로 인해 지주사 전환을 미루고 있는 대기업들은 금융자회사의 자산가치가 커질 때마다 두려움에 떨며 정부의 정책에 대해 눈치만 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번 삼성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이 금산분리 정책은 향후에도 지속 유지되거나 오히려 강화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신정부에 의해 금산분리 규정이 폐지될 것을 기대하며 지주사 전환작업을 미루고 있는 일부 대기업들은 금산분리 제도의 취지에 순응하고 현실을 인식하여 현행 금산분리 원칙에 입각한 계열분리를 실시한 후 투명한 기업지배구조를 확립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생각이다.

매는 빨리 맞는게 낫다는 말이 있는데 과연 어떤 기업이 먼저 모범적인 계열분리를 통해 금산분리에 입각한 투명한 기업지배구조 개선으로 나아가는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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