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엄마와의 유대는 베이스캠프

이서경 경희의료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 | 2007.12.13 17:27

[이서경의 행복한아이 만들기 프로젝트]

편집자주 | 【'우리아이 천재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번쯤 하지 않은 부모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실망을 하기도 하죠. 하지만 천재, 영재보다 중요한 것은 행복한 아이로 키우는 것입니다. 아이의 가진 잠재력을 죽이지 않고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인생을 행복하고 정서적으로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줘야죠. 경희의료원 소아청소년정신과 이서경 교수와 함께 아이의 잠재력을 죽이지 않고, 두뇌의 고른 발달과 더불어 훌륭한 인격체로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봅니다. 이 교수는 2002년 경희대 의대를 졸업하고 2007년 정신과 전문의를 취득했으며 소아정신과에서 진료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영준(가명)이는 만 5세로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동요도 잘 따라하지 않고, 질문을 해도 좀처럼 대답하지 않으며 매사에 자신감이 없다는 문제로 방문했다. 첫 면담에서 영준이는 엄마 옆에만 붙어있으려 하고 주변에 있던 치료용 놀이장난감에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영준이 엄마는 영준이 등을 떼밀며 놀도록 하였지만 영준이는 땅만 바라보며 엄마와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하루 몇 번이나 영준이와 얼굴을 맞대고 눈을 쳐다보며 장난하는 표정, 웃는 표정, 이야기하는 표정, 엄마의 장난이나 웃음에 대한 반응 등을 관찰하시나요?” 라고 묻자, 엄마는 곰곰이 생각을 하더니, 자신이 하루에 한 번도 제대로 눈맞춤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해내고는 걱정과 함께 스스로도 놀라워하였다.

같이 많은 시간을 놀아주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이와의 눈맞춤을 통한 진정한 교감의 횟수는 매우 적었다. 영준이와의 놀이 관찰과 심리검사를 통해 진단한 결과, 영준이는 엄마와의 애착 형성에 문제가 있어 엄마가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심한 불안감으로 인해서 자신감의 결여와 집중력이 저하되어 있다는 소견을 보여주었다.

애착은 아이가 엄마와 맺는 지속적인 강한 정서적 유대이다. 엄마와의 안정된 애착형성의 여부가 지능의 발달 및 학습능력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애착이 안정되게 형성되어 있어야 아기는 주변에 호기심을 가지고 학습을 할 수가 있다. 에인스워스라는 미국 발달심리학자가 애착과 탐색과의 관계를 알아보고자 ‘낯선 상황’이라는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에서 애착이 잘 형성된 아이가 엄마와 함께 있을 때에는 엄마를 안전한 기초로 삼아서 새로운 환경을 탐색하고 학습하는데 열심이었다. 그러나 엄마가 떠나자 탐색행동은 줄어들고 불안해하면서 엄마를 찾는 행동이 증가했다고 한다.

기우라는 말이 있다. 《열자(列子)》의 <천서편(天瑞篇)>에 나오는 말로, 기나라에 한 사람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까 걱정하여 침식을 전폐하였다고 하며, 우리는 이를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우리는 땅이 꺼질 리가 없고, 하늘이 무너질 리가 없다는 기본적인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천재지변에 대한 걱정 없이 일과 공부에 매진해 나갈 수 있다.

아이에게 엄마와의 애착이란 바로 이러한 기본에 대한 믿음이다. 기본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그에 대한 불안감으로 어떠한 것에도 집중할 수 없다. 고산등정을 하는 사람들은 베이스캠프를 믿고 험한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올라가다 다치거나 힘들면 다시 베이스캠프에서 휴식도 취하고 체력도 쌓고 다시 오른다. 만약 에베레스트를 오르려는 사람이 베이스캠프가 바람에 휩쓸려 사라질까봐 또는 다른 사람이 베이스캠프를 차지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심하다면 어떻게 될까. 엄마와의 강한 정서적 유대는 아이에게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기 위해 필요한 베이스캠프인 것이다.

엄마로부터 충분한 사랑과 관심을 받고 애착이 잘 형성되어있는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서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이 적으며 노력을 기울인 일이 잘못 진행되어도 불안해하지 않고 끈기 있게 재시도 하는 등의 심리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심리적인 특징으로 인해서 학습 동기가 매우 높고 창의력이 발달한 경우가 많다.


부모와 애착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아이들은 혈액 중에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cortisol) 수치가 지속적으로 높아져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코티졸의 상승은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hippocampus)나 문제해결을 담당하는 전두엽피질의 발달이 저해하거나 손상을 유발하여 학습에 필요한 두뇌영역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안정된 애착을 발달시키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엄마와 아이와의 다양한 상호작용에 의한 만족감을 얻어내는 것이 한 방법인데, 그 중에서 실생활에서 손쉽게 아이와의 교감을 이끌어내는 방법이 눈맞춤이다. 우리가 아이와 하루에 몇 번이나 눈을 제대로 맞추는지 세어보자. 설거지 하느라 바빠서, 청소하느라 바빠서, 연속극에 빠져서 아이가 하는 질문에 눈맞춤 없이 대충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눈맞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당연한 얘기이겠지만, 우리가 누군가와 제대로 된 눈맞춤을 하려면 높이가 맞아야 한다. 아이를 위해 자세를 낮추고 아이의 눈동자를 자세히 볼 수 있게 가까이 다가가자. 아이의 빛나는 까만 눈동자를 응시해보자. 그 안에서 빛나고 있는 무언가를 발견한다면 그것은 부모들에게도 축복이다.

그렇게 대화를 하다가 사랑스런 감정이 북받치면 아이를 꼭 끌어안아주고 사랑한다고 여러 번 이야기 해 주면 된다. 엄마와 아이와의 사랑스런 따스한 유대감이 가득 차게 되면 아이는 엄마의 사랑이 전해오는 안정감과 신뢰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이 가진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세상을 탐구하고 배우고 익히게 될 것이다.

아이와의 눈맞춤을 통한 교감의 횟수는 많을수록 좋다. 하지만 바쁜 생활에 쫓겨 시간내기가 쉽지 않다면 적어도 아침, 점심, 저녁 한 번씩, 직장맘의 경우에는 출근전, 퇴근 후, 자기 전에 한 번씩, 하루 3번의 눈맞춤이라도 시작하자.

영준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요즘 영준이 엄마는 영준이와의 눈맞춤을 수시로 한다고 한다. 둘이 깔깔 웃고, 장난치고, 둘만이 통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영준이는 상상력이 매우 뛰어난 아이로 그림에 예술적인 재능이 있다.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며 자기만의 세계를 표현하는 영준이가 언젠가는 훌륭한 예술가가 되어 있지는 않을까 기대해 본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베스트 클릭

  1. 1 '선우은숙 이혼' 유영재, 노사연 허리 감싸더니…'나쁜 손' 재조명
  2. 2 '외동딸 또래' 금나나와 결혼한 30살 연상 재벌은?
  3. 3 '눈물의 여왕' 김지원 첫 팬미팅, 400명 규모?…"주제 파악 좀"
  4. 4 수원서 실종된 10대 여성, 서울서 20대 남성과 숨진 채 발견
  5. 5 "싸다고 주웠는데" 에코프로 개미 어쩌나…매출 반토막에 적자 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