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3년여만에 벤처계 돌아온다

머니투데이 김희정 기자 | 2007.11.29 15:08

내년 5월 MBA과정 마쳐 "CLO로 인재교육 돕고파"

 안철수. 국내 무료 PC백신의 선구자였던 그가 내년 5월에 돌아온다.
 3년여만에 컴백하는 그의 모습은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가 아닌, 벤처경영 '주치의'가 될 듯하다.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은 29일 서울 프라자호텔 'AVAR(아시아안티바이러스협회)2007' 국제컨퍼런스 행사장에서 오랜만에 기자들과 마주했다. 내년 5월이면 미국 펜실베니아대학 MBA를 마친다는 그는 여전히 수더분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는 모습이 '최고학습책임자(CLO)'였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냈다.

"당장 이번 컨퍼런스 끝나면 다시 기말고사 보러 돌아가야 하지만 최근 귀국 준비를 조금씩 하고 있습니다. 2년전 경영에서 손을 놓으면서 썼던 퇴임사를 다시 읽어봤는데 그때의 결심이 변하지 않았더군요. 10년전, 20년전 쓴 글들이 의미가 있는게 돌아보고 반성할 시간을 줘서 그런 것 같습니다."

◆실패한 벤처인 '설 곳이 있어야 한다'

그는 2004년말 회사가 처음으로 세후 순이익 100억원을 넘으면서 기업 지배구조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어느 한 사람의 독단으로 기업의 운명이 좌지우지되지 않는 균형잡힌 선순환 모델을 만들고 싶어졌다는 것.

"정치도 3권분립이 된 이유는 부패와 자만을 막기 위한 것이죠. 사람이 약한 존재라 그런 것 같습니다. 기업도 커지면 건강한 견제가 필요합니다. 다만 기업에서는 그런 모델을 보지 못해서 생소한 것일 뿐이죠."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유학하며 가장 부러웠던 것은 기업가의 선순환 구조가 잘 정착돼 전문성을 가진 인재풀이 가동된다는 것.

"한 기업을 만든 사람이 또 다른 기업을 만들고, 대기업 임원이 되고 벤처캐피탈리스트가 되고, 교수나 행정가가 돼야 지적자산이 퍼질텐데 기업이 망하면 기업가도 망해 재기하지 못하는 게 우리 현실입니다. 여러 가능성과 모델을 만들어서 후배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싶습니다."

안철수연구소뿐 아니라 소프트웨어(SW)기업 등 벤처기업의 성공 확률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이공계 기피현상은 이 때문에 더 심해지고 있다. 안철수 의장이 염두에 둔 CLO는 바로 이런 현실을 타개해보자는 차원에서 착안한 대안이다.

"국내 벤처기업들의 인재풀이 너무 취약합니다. 아이디어나 기술이 있으면 실리콘밸리처럼 경험과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달라붙어야 하는데 우린 여의치 않죠. 벤처기업인들의 전문성 역시 떨어지니 총체적으로 반성할 문제예요."

◆"나의 꿈은 '벤처경영 주치의"

늦깎이 학생으로 돌아가니 보이지 않던 것, 놓쳤던 부분들이 잡힌다고 했다. 대학으로 갈 수도 안철수연구소에 남을 수도 있지만 감투에는 연연하지 않을 생각이다. 경영도 이사회에 참석할 뿐 간여하지 않을 계획이다.


다만, CLO로서 실무에 직접 적용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학습센터'를 구축해 인재를 양성하는데 전력을 다하겠다는 생각이다.

"인프라 부재, 대기업 위주의 산업구조는 벤처 성장의 장애물입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인건비만 쳐주는 상황이니 발전할 수 있나요. 제가 구조를 바꾸지는 못해도 조언하는 일은 할 수 있지 않겠다 생각하고 준비하기 위해 유학을 갔습니다."

공부하는 CEO들은 많다. 하지만 '학위'를 위한 '학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하고자 하는 일을 하려면 지식이 내 것으로 정리돼야 도와줄 수 있다. 임원들 대상의 경영자 과정은 들을 때는 좋아도 남는 게 없더라고 했다.

"공부를 하면서 자가진단이 됐습니다. 예전엔 자신있다고 생각했던 부분들도 물이 빠지면서 정체가 드러나더군요. 경험만으로는 갖출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습니다."

스스로 부족했다고 느낀 부분을 정리해 중소벤처인들에게 알려주고, 적절한 진단과 조언을 덧붙이는 벤처경영계의 '주치의.' 돌아올 안 의장이 꿈꾸는 모습이다.

어릴적 흰 가운을 입은 부친이 환자를 돌보는 것을 보며 '나도 평생 의사 노릇하겠구나' 생각했단다. 흰 가운은 벗었지만 아픈 곳을 살피기는 안철수연구소 CEO였던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보안은 제품이 아니라 '서비스'

그는 보안 시장의 변화에 따른 무료 백신 도입과 관련해서도 입을 열었다.

"V3 플러스는 아직도 무료입니다. 어느 쪽이 죽고 어느 쪽이 사느냐의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2005년의 여러개의 웜이 갑자기 발생해 안철수연구소 직원들이 수당 한 푼 받지 않고 정부의 대응책 마련에 투입됐었죠. 안철수연구소가 아니라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그게 보안의 근간입니다. 최악의 경우 책임을 지고 대응할 수 있는 조직(전문 인력 등)이 있어야 하는데 인터넷 포털이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요."

해외에서 엔진만 가져와서 사후 서비스가 되지 않으면 안 하느니 못하다는 설명이다. 안 의장은 보안 인프라에 대한 투자 없이 돈만 버는 것은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또 광고주를 통해 지불하는 간접 비용도 결국은 소비자의 부담이라는 생각이다.

"해킹이 조직 범죄화되고, 돈을 목적으로 특정 국가, 기업, 커뮤니티를 공격하는 양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바이러스보다 트로이목마나 스파이웨어 위주로 바뀌고 있구요. 정보를 빼내고 지속적으로 유출해 돈을 버는 게 목적이죠. 방어 방식 역시 이 추세에 맞게 개별상품이 아닌 서비스로 변화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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