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젤강의 서정을 닮은 리슬링

전두환 신한카드 부사장 | 2007.12.07 17:49

[머니위크]전두환의 '나의 와인스토리'

모젤 강은 프랑스 북동부 보주산맥에서 발원해 룩셈부르크와 독일의 국경이 되었다가 독일서부 트리어를 거쳐 코블렌츠에서 라인 강과 만난다. 길이 약 500km가 넘는 이 강은 프랑스 로렌공업지대와 독일 라인을 잇는 수로이며 자르지역부터가 바로 모젤와인 생산지인 Mosel- Saar- Ruwer 강 지역이다.

나는 마음이 울적 할 때면 잔잔하고 조용한, 강폭은 좁지만 깊어 보이는 모젤 강가에 앉곤 했다. 어릴 때 느껴던 어머니 치마폭처럼 유난히 구불구불 굽이쳐 흐르는 모젤은 늘 포근히 나를 감싼다. 독일 사람들은 모젤을 어머니 강, 라인을 아버지 강이라 부른다.

모젤을 따라가는 길은 아름답고 정겹다. 세상에서 특히 우리나라에서 이곳의 가치가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두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가 모젤 주변의 고즈녁한 정취이고 다른 하나가 리슬링이란 포도품종의 우수성이다. 와인평론가 Jancis Robinson은 “리슬링은 세계에서 가장 과소평가되고 영어권에서 가장 많이 발음을 틀리게 하는 품종이다” 라고 했다.

모젤주변을 여행해 보면 그 독특한 정취에 매료되어 왜 이곳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지 않았는지 의아스럽게 생각될 것이다. 아마 교통의 불편함 때문일까? 로마의 도시 트리어에서 코블렌츠까지를 Romantic River란 별칭으로 부른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인 트리어는 로마의 공동 황제 시기에는 두 명의 황제 중 1인이 트리어에 머무른 적도 있었다.

이곳에는 고도답게 많은 로마유적들이 남아 있고 중세에 이 지역 일대를 관할하던 대주교좌 성당(Der Dom)에는 예수 성의의 일부가 보존돼 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방문지는 공산주의 이론의 창시자 칼 마르크스의 잘 보전된 생가이다. 세계적인 와인산지에서 나고 부유하게 자란 그는 프롤레타리아 혁명가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매일 와인을 마신 애호가였다고 한다.

모젤 강을 따라 북쪽으로 40여km 떨어진 베른카스텔(Bernkastel-Kues)의 오밀조밀한 풍경은 모젤 강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풍경이다. 주위는 모젤지역의 대부분의 와이너리가 그렇듯이 급경사의 깍아지른 산등성이는 모두 포도밭이다. 총면적이 7에이커 밖에 되지 않는 이곳의 리슬링 와인은 희귀성과 뛰어난 품질로도 알려져 있지만 Berncasteler Doctor Riesling 같이 닥터라고 이름 지어져 유명세를 더하고 있다.


14세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선출 투표권을 가진 트리어의 대주교가 베른카스텔을 방문하던 중 열병에 걸려 쓰러지자 인근의 모든 의사들이 동원됐지만 차도가 없어 노심초사 하던 차에 인근의 한 농부가 와인이 가장 좋은 약이라며 자기 밭의 와인을 바쳤다. 다음날 완쾌한 대주교는 이곳에 있는 오직 하나 뿐인 진짜 의사라며 이 와인을 베른카스텔러 독터라 칭하게 했다.

리슬링은 꿀향과 매혹적인 꽃향기, 적당한 산도, 잘 숙성된 포도의 경우 진한 황금색을 띤다. 가벼운 8% 내외의 알코올을 함유하고 단맛이 남아 여성들과 처음 와인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권할 만하다. 샤르도네보다 숙성이 늦으며 귀부와인의 경우 최상급 와인으로 가격이 정해지며 수십 년간 장기 보관이 가능하다. 모젤 강 주변에 사는 농부들은 어떤 음식이든 리슬링과 매치될 수 있고 건강에도 좋다고 자랑한다.

우리는 초기 감기증세가 나타나면 모젤주변의 의사들이 리슬링을 처방하듯 Berncasteler Doctor Riesling을 한잔 마신다. 그 의사들은 마땅한 약이 떠오르지 않으면 속이 불편하다고 해도, 어깨가 결린다는 환자에게도 “리슬링 한잔하고 푹 쉬세요” 라고 말하며 좀처럼 약을 처방하지 않는다.

요즘 같은 겨울철 밤 모처럼 여유가 생기면 벽난로 가에서 구수하지만 텁텁하게 목 메이는 군고구마와 산뜻한 한잔의 리슬링으로 일상의 무게를 덜어 본다. 봄철 포도밭 김매기를 위해 산꼭대기에 탄탄히 박은 지주에 철선으로 김매는 도구를 걸고 점판암이 뒤덮여 있는 이랑사이 길을 아래쪽으로 뛰어 내려가는 농부의 모습이나 가을철 가파른 산비탈에 매달리다 시피한 자세로 포도를 딴 후, 일 년 내 흘러내린 아까운 흙을 다시 산비탈로 옮기는 작업을 반복하는 이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달콤하면서도 우아하고 품위 있게 균형 잡힌 위대한 와인 앞에 숙연해 지며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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