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칼럼]신약 개발과 우리의 한(恨)

김정민 녹십자 종합연구소 신약개발팀 박사 | 2007.11.28 18:17
지난 1981년 석사졸업후 의약품 합성으로 의약연구개발에 몸 담은지 벌써 20여년이 지났다. 그때의 연구수준이 초등학교 정도였다면 지금은 대학생 수준으로 많은 진보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국제 임상 2상까지 진행시킨 신규 B형 간염치료제의 연구개발을 통해 많은 신약개발 노하우를 터득하게 됐지만, 이른바 블록버스터 급의 글로벌 신약을 개발해 보겠다는 목표는 손에 잡힐 듯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것은 내 개인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FTA체결로 외국계 대형제약사의 국내 제약시장 진입 문턱이 낮아지게 돼 제네릭 개발 위주의 국내 제약사들은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됐다.

심사 및 허가기간이 길어짐에도 불구하고 약가인하가 요구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위기가 기회라고 모두 느끼듯이 국내 제약사가 정부의 강력한 지원으로 신약연구개발에 힘을 모아 큰 걸음을 옮길 때라고 생각한다.

제약산업은 생명공학 (BT)의 꽃이라고 한다. 지난 한세기 동안 선진국의 경제를 부침없이 가장 꾸준히 견인해 나가는 기업들은 빅파마(Big Pharma)라고 불리우는 다국적제약사들이었다. 이들은 수많은 고학력자들에게 취업기회를 제공하며, 신약매출을 통해 벌어들인 거대한 수익으로 다시 신약 R&D(연구개발)에 재투자를 한다. 이런 재투자는 자기 회사연구소만 아니라 학계 및 연구계의 연구기금이 되어, 생명과학이 발전해 나가는 원동력 역할을 하고 있다.

피터 드러커는 21세기의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이 지식경영이라고 천명하며, “이제 지식이 없는 국가는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다”라고 지식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식산업의 대표적인 사례는 비보이등의 한류문화를 대표되는 문화산업, 핸드폰으로 대표되는 IT산업 등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용기회창출의 물량적 지표 및 제조업 공동화 문제 측면에서 볼 때 글로벌 신약개발을 추구하는 제약산업이야말로 대표적인 지식 산업이라고 하겠다.


특히, 인적자원이 유일한 자산인 한국의 경우 글로벌 신약개발의 선순환이 이뤄진다면, 제약산업이야말로 대표적인 한국의 지식산업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에는 많은 고학력 화학자들이 있다. 특히, 신규물질을 창출하는 유기화학 분야는 세계수준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물론, 중국과 인도에서 의약관련 화학산업이 크게 성장하고 있고, 특히 인도는 20-30년 내에 세계 의약 생산공장이 될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이들 국가의 화학자의 수는 한국보다 비교할 수 없게 많으나, 주로 기존 원료 의약품 생산 기술에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진정한 지식산업이라 할 수 있는 신규물질 창출 분야의 국내 인재집단들은 중국 인도대비의 고임금을 고려하더라도, 세계수준에서 충분히 경쟁해서 WIN할 수 있다. 뿐만아니라 20년 전부터 많은 우수한 고교 졸업생들이 생명과학전공을 택하여 생명공학 분야에도 탁월한 연구집단을 보유하고 있으며, 의학계 및 약학계에 많은 고학력 우수집단이 있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오케스트라의 다양한 악기들이 하나의 악보로 아름다운 음악을 창출하듯이,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들이 글로벌 신약 창출이라는 목표로 각각의 지식을 모을 때 한국에서 신약개발의 꽃이 피게 될 것이다. 한국은 유대인과 더불어 가장 우수한 민족이라고 한다. 이들 언급한 분야의 ‘SUM(총합)’으로 가장 탁월한 인재 집단이 있는데, 왜 우리가 글로벌 신약을 개발하지 못하겠는가?

사견이지만 한국인이 갖고 있는 고유한 정서인 '한(恨)'은 신약개발의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한'은 우리 민족의 '영구적인 절망이 낳은 체념 비애의 정서'라고 정의하기도 하고, 한국 민중의 삶에 가장 널리 그리고 깊게 내려 있는 민중 감정이라고 한다.

이 '한'은 승화되어 민요 판소리 등 우리의 고유한 예술 작품들을 창출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필자에게도 글로벌 신약 개발이 인생의 꿈과 비전이 되어 지금까지 연구를 매진케 하는 동력이 되었다. 마치 신약개발을 이루겠다는 꿈이 '한'처럼 가슴에 박혀 있는데, 이것이 승화된 열정(Passion)으로 나타나는 듯하다. 지난 3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연구자들이 글로벌 신약 개발을 위해 경주해 왔는가? 수많은 연구자들의 가슴 속에 '한/으로 남아 있는 신약개발의 꿈이 이제는 불타올라 열매 맺을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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