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하층민의 희망 '맨발대학'

틸로니아(인도)=희망대장정,정리=이경숙 기자 | 2007.11.26 11:24

[젊은 아시아, 빈곤을 넘어]<8-1>인생을 바꾸는 '배움터' 인도 맨발대학 탐방기

편집자주 | 2달러, 우리돈으로 약 1800원. 이 돈으로 아시아 인구 중 9억명이 하루를 삽니다. 21세기 이후 아시아 경제성장률은 연 평균6.3%로 다른 지역의 2배에 가깝습니다. 아시아는 과연 빈곤을 넘어설 수 있을까요? 그 답을 찾아 김이경, 윤여정, 주세운 등 세 젊은이로 구성된 '희망대장정'팀이 지난 9월, 아시아 최빈국의 빈곤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80일 동안 이어질 이들의 희망대장정을 머니투데이가 전해드립니다.

↑맨발대학이 자리 잡은 틸로니아의 황무지.

흙은 모래처럼 부드럽게 흩날렸다. 사막화가 반쯤 진행된 땅에 풀이 듬성듬성 나 있었다. 낙타가 끄는 마차가 드문드문 지나갔다. 11월 14일, 우리가 탄 오토릭샤(삼륜차)는 30분째 그런 길을 달리고 있었다.

인도 라자스탄주의 주도 제푸르에서 이곳 틸로니아까지 3시간반. 시골버스 속에서 벌써 지친 우리는 말 없이 덜컹거리는 삼륜차 위에서 삭막한 풍경을 내다봤다.

지역주민인 삼륜차 운전사도 길을 물어물어 찾아간 오지. 현지인들은 '틸로니아센터'라고 부르는 그곳. 맨발대학(Barefoot College)의 사회사업연구센터(SWRC;Social Work and Research Center)는 메마른 땅에 덩그라니 솟아 있었다.

맨발대학은 1972년 '산지트 벙커 로이(Sanjit Bunker Roy)'라는 인도 최고 카스트인 브라만계급 출신의 부유하고 교육 받은 한 젊은이로부터 출발했다.

1967년 우연히 기근에 시달리던 인도 비하르 주를 방문했던 그는 굶주리고, 교육받지 못하고, 천대 받는 하층민들의 삶을 목격했다. 충격을 받은 그는 삶의 진로를 바꾸어 이 시골마을에 내려와 맨발대학을 설립했다.

이름은 '대학'이지만, 맨발대학의 목적은 일반대학과는 다르다. '학위'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준다. 사회에서 성공할 사람을 키우는 게 아니라, 사회를 살기 좋게 만드는 사람을 키운다.

맨발대학엔 교과과정도, 선생도 없다. 가난한 농민과 임금노동자들, 소외 받는 불가촉민과 여성들, 장애인들이 학생이자 선생으로서 자유롭게 배우고 일한다. 먼저 온 사람이 나중에 온 사람을 이끌어주는 식이다.
↑인도 틸로니아 여자들이 태양열 조리기
집열판을 수리하고 있다.

학생은 자신들한테 필요한 것을 배운다. 가령, 식수가 부족한 지역의 마을 주민들은 직접 수동펌프 기술을 익힌다. 이들은 자기 고장으로 돌아가서 직접 수동펌프를 설치하고 관리하고 유지한다. 지금까지 인도 9개주 700여명의 시골 농민이 이 기술을 배웠다.

이밖에 이 대학 학생들이 배울 수 있는 건 이런 것들이다. 태양광 램프 조립, 태양 전지판 수리, 태양열 조리기구 제작, 옷감 짜기, 염색하기, 옷 만들기, 꼭두각시 인형 혹은 재활용 과학장난감 만들기 기타등등.

틸로니아센터에서 시작된 맨발대학은 35년만에 인도 전국 20여곳에 센터를 설립했다. 107곳의 맨발대학 야학(Night School)에선 2300여명이 공부한다. 이 대학에서 교육, 의료봉사, 식수 개발 같은 지원을 받는 지역주민은 12만5000여명에 이른다.

맨발대학은 거의 무료다. 재정의 40%는 인도 정부가, 나머지 20%는 목도리 등 수공예품을 선진국에 팔아 자력으로 조달한다. 40%는 유엔개발계획(UNDP), 유네스코(UNESCO), 독일 세계기아구조(Deutsche Welthungerhilfe) 등 국제기구와 투자은행인 UBS가 후원한다.

방문 이틀째, 학교 곳곳을 돌아보다가 우리의 머릿 속은 복잡해졌다. '이곳은 학교일까, NGO(시민단체)일까, 사회적기업일까.' 맨발대학은 우리가 두달 동안 방글라데시, 네팔, 인도를 돌면서 방문했던 어떤 조직과도 공통점이 없었다.

맨발대학의 활동은 배움과 일, 돈벌이와 철학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문맹이었던 농부는 건축가로, 불가촉천민 출신의 청년은 회계 전문가 겸 인형극 배우로, 집밖 출입도 못하던 아이 엄마가 태양열 조리기 기술자로 거듭났다.
↑태양열 조리기 기술자
세나즈씨.

사흘째, 우리는 태양열 조리기 기술자인 세나즈(35)씨를 만났다. 그는 진홍색 싸리(인도 여성들의 전통 복장)를 온 몸에 두르고 팔목에는 황금색의 화려한 팔찌를 가득 찬 채 남자도 힘들 듯한 망치질을 뚝딱 해내고 있었다. 5명의 동료들이 모두 여자다.

작업장 한 켠에는 그들이 만든 거대한 태양열 조리기들이 잔뜩 진열되어 있었다. 이 정교한 제품엔 시계추의 원리를 응용한 장치가 부착되어 있어, 집열판이 태양의 고도를 따라 자동으로 움직인다. 2명의 기술자가 제품 하나를 만드는 데에만 약 한달 정도 소요된다.

"현재까지 10개 마을에 저희가 만든 태양열 조리기를 설치했어요. 매일 4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이 조리기로 만든 음식으로 식사를 해요. 8인 가족용 모델은 한 달에 14kg, 100인용 모델은 한 달에 84kg의 가스 연료를 절약하는 효과를 가져오죠."


세나즈씨는 세 아이의 엄마다. 이 일을 배우기 전에 그는 집밖 출입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가족 모두 보수적인 무슬림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느날, 집안 남자들이 모두 직업을 일었다. 그는 "나라도 기술을 배워 집안을 돕겠다"고 가족들을 설득했다.

그는 결국 맨발대학의 야학에서 공부할 '자유'를 얻었다. 이제 그는 태양열 조리기술로 한달에 2190루피, 미화 약 56달러를 번다. 2006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GDP)가 797달러인 인도에서 시골아낙이 연 670달러가 넘는 돈을 버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돈벌이가 생기자 그는 집안에서 발언권까지 얻었다.

방문 나흘째, 우리의 구세주, 야스민 고팔(Yasmin gopal) 교수가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식당으로 들어왔다. 그는 인도어-영어 통역자가 없어 고생하던 우리 앞에 홀연히 나타난 캐나다 토론토대학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다.

"제가 좀전에 이곳 캠퍼스를 건축했다는 사람을 만났는데, 글쎄 그가 어떤 사람인 줄 아세요? 문맹에 농부였대요. 이 친환경적이고 과학적인 캠퍼스가 한번도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는 농부에 의해 건축되었다는 걸 믿을 수 있겠어요?"
↑맨발대학의 모든 건물은 에너지
100퍼센트를 태양열에서 얻는다.

맨발대학의 모든 건물은 40 킬로와트 용량의 태양광 발전기를 통해 전기를 공급받는다. 40만리터 용량의 지하 빗물탱크는 몬순(장마철)때 물을 저장해 전체 캠퍼스에 공급한다.

건물 자체도 친환경 자재로만 지어졌다. 채취과정에서 환경 파괴를 일으키는 시멘트와 나무는 전혀 쓰지 않았다. 오직 합판과 석회, 돌멩이들로 만든 맨발대학의 건물들은 태양열 설비와 어우러져 영화 '스타워즈'의 한 장면 같은 풍경을 연출했다.

우리는 이런 캠퍼스를 만든 이가 글자 한자 모르는 농부였다는 사실에 놀랐다. 더 놀라운 건, 그를 믿고 캠퍼스 전체의 건축을 맡긴 맨발대학과 벙커 로이 대표였다. "종이자격증에 구애 받지 않는다", "진정한 교육은 현장의 경험을 통해 나온다"던 이곳 직원들의 말이 허언은 아니었던 것이다.

얼마 전 인도 둥게스와리 방문 때 만났던 JTS의 한 한국인 자원봉사자가 털어놓았던 고민이 떠올랐다. 그는 "10년 넘게 마을 주민들과 아이들을 정규교육 과정에 맞게 교육시켜도 졸업하면 취직할 곳이 없다"고 말했다. 도시의 생활에 맞게 디자인된 정규교육은 시골인 둥게스와리의 삶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결국 JTS는 별도로 기술학교를 개설해 졸업생들을 재훈련시켜야만 했다.

맨발대학은 "농촌 문제는 농촌의 방식으로 풀자"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식수가 부족한 마을의 주민을 펌프 기술자로, 보건혜택이 없는 마을 주민을 간호사로 훈련시켰다. 전기가 없는 마을 주민들은 태양에너지 기술자로 양성했다.

이로써 마을은 도시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낼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선진국이나 도시사람들의 도움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맨발대학에 머문 5일 동안 우리를 안내해준 람니와스(Ram niwas)씨 역시 스스로 한계를 극복한 이 중 한 명이다. 불가촉천민이라는 이유만으로 천대 받으며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던 그는 20년 전 '맨발'로 맨발대학을 찾아왔다. 그에게 맨발대학은 회계업무를 맡겼고, 그는 자신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해냈다.

맨발대학의 '맨발'은 교육, 계급, 성별, 장애 등 모든 것을 떠나 맨발로 시작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자들을 위해 맨발대학은 그들에게 기꺼이 기회를 줬다.

이 황무지에서 펼쳐지는 맨발대학의 '마술'을 거쳐 그들은 이제 자신이 받은 것을 다른 이들에게 베풀고 가르치면서 또 자신보다 모자란 사람들에게 끊임 없이 배우며 살아가고 있었다.

간디가 말했던 자립자족의 마을공동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한국에 있을 때 우리가 '이상'으로 치부해버렸던 것들이 더이상 '꿈'만은 아닌 것 같이 느껴졌다. 우리 역시 맨발대학의 '마술'에 걸린 것일까.

◇희망대장정팀은?
△김이경(22, 한양대 경제금융 04학번, ODA와치 단원, 한국공정무역연합 자원활동가)
△윤여정(22, 아주대 경영 04학번, 지구촌대학생연합회 전 회장,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기획단)
△주세운(22, 서울대 지구환경공학 04학번, 서울대 CSR연구회, 한국공정무역연합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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