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 낮아지면 은행도 힘들다?

머니투데이 이경숙 기자 | 2007.11.23 17:49

[백년기업의 조건]<6-3> 금융산업의 사회 리스크

편집자주 | 사람 나이 100살엔 혼자 먹고 살기도 힘들다. 그러나 기업은 다르다. 기업은 100살이 넘어도 성장한다. 경제와 사회를 이끈다. 한국의 미래 증시를 이끌 기업의 조건은 무엇일까? 머니투데이는 아시아지속가능투자협회(ASrIA), 에코프론티어와 공동기획으로 국내 대표업종 대표기업의 지속가능성을 9회에 걸쳐 분석한다.


모은행 직원 박인정씨(34, 가명)는 지금 출산휴가 중이다. 복직은 할까, 말까 고민 중이다. 과장 시험에 통과한지 2년여가 지났는데도, 그는 아직도 승진 대기자다.

시부모는 "이 참에 일 그만 두고 아이 하나 더 낳아라"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늦둥이 또 하나 키우려니 교육비 생각에 앞이 캄캄하다. 남자형제 없는 맏딸인 그는 홀로 사시는 친정어머니 노후도 걱정해야 한다.

"저 말고도 승진에 밀린 여직원들이 있지만 노조에 뭐라고 말하기가 힘들어요. 나이 많은 노조원들이 아직 은퇴하지 않아 남자직원들도 승진에서 밀리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전 10년 전에 대졸자 계약직으로 입사했거든요. 이래저래 불리해요."

박씨의 고민은 앞으로 우리 금융산업의 리스크로 이어질 것이다. 출산율 저하, 고령화는 고객들의 금융자산구조를 바꾼다. 여자직원들과 비정규직 출신 직원들, 소외층 고객들이 자신의 권리에 눈 뜨면 사회적 압력이 높아질 것이다.

최근 들어 은행 여직원은 늘었는데 여간부 비중은 줄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의 10월말 발표자료에 따르면 은행 직원 중 여성 비중이 지난해 38.94%에서 올해 39.79%로 늘었다. 반면, 관리자 중 여성 비중은 4.24%에서 2.37%로 줄었다.

아직 국내 금융사에서 여자직원들이 성 차별 소송을 제기한 전례는 없다. 그러나 직장 내 여성비중, 시민의 인권 의식이 높아질수록 소송 위험은 높아진다.

올해 4월, 미국의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성차별 소송 합의금으로 4600만 달러, 우리돈으로 약 430억원을 물었다. 주식중개 담당 여직원 6명이 지난해 6월 다른 2700명의 여직원을 대표해 소송을 낸 데 따른 것이다.

이 여직원들은 "회사가 2005년 8월 대대적 해고 때, 승진인사 때 여성을 차별했으며 수익이 많이 나는 계좌도 남자 직원들에게 우선 배정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신규채용에서 여자를 제외할 것인가? 잘 교육된 인재를 포기하는 것 혹은 타금융사에 뺏기는 것 역시 금융사엔 대내외적 리스크다.

정수영 에코프론티어 지속가능금융센터 팀장은 "금융사 내 여성직원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금융업종은 인력이 주된 자원"이라며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충성도를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인력개발, 복지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시민의식 성숙으로 더 다양한 분야에서 인권을 인식하게 되면 금융사엔 또다른 리스크가 생긴다. 소외층 등 금융소외층이 '금융서비스 접근권'을 요구하고 나설 수도 있다.

미국 지역재투자법(CRA)도 그래서 제정됐다. 1970년대 미국 은행들은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이 모여사는 지역에 빨간 선을 긋고 대출을 해주지 않았다. 주택담보대출 기회도 주지 않았다. 소위 ‘레드라이닝(Red lining)’ 관행이었다.


진보적 학자와 소외층 시민이 뭉쳤다. 이들은 정부와 은행에 "소외층도 주택담보대출로 집 살 권리를 달라"고 요구했다. 금융사의 레드라이닝을 감시하는 '그린라이닝(Green lining)'이라는 단체로 결성됐다. 이에 1977년 CRA가 제정됐다.

한국에도 레드라이닝은 짙어지고 있다. 개인신용평가(크레디트뷰로)에서 신용등급 7~8등급 즉 '주의'로 분류되는 인구는 380만명에 이른다. 소득이 없어 정부 보조를 받는 기초생활수급자는 167만여명이다. 이들은 신용등급 7~8등급에도 들기 어렵다.

올해 10월 경제활동인구는 2448만명(통계청 자료)이다. 즉, 한국의 경제활동인구 10명 중 2명은 제도권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릴 수 없다는 뜻이다.

최근 UN 등 국제사회는 '금융서비스 접근권'을 '인권'으로 해석한다. 또, 2005년을 마이크로크레디트, 즉 무담보소액대출의 해로 정하고 전 소득계층이 금융서비스를 받게 하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국내인의 인권 의식도 바뀌고 있다. 금융전문가와 시민활동가, 일부 서민금융기관 종사자들은 올해 7월 '금융소외연구포럼'을 결성했다.

그러나 금융산업의 가장 크고 장기적인 리스크는 시장 자체에서 온다. 출산율 저하와 경제성장율 저하가 동시에 오면서 자산시장은 큰 변화기에 들어갔다.

지난해 한국의 출산율은 1.08명. 현재 인구구조 유지를 위해 필요한 출산율인 2.1명보다 현저히 낮다. 한국은 2019년이면 인구 중 14%가 65세 이상인 '고령사회'가 된다. 이에 자산시장의 구조도 바뀌어 이미 국민연금 등 연금자산은 급증하고 있다.

자산성장율은 2045년 이후 하락세에 들어간다. 한국은행이 7월 발표한 '출산율 저하가 인적 투자 및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는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2010년 이후 3.56%로, 2045년 이후 0.9%로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2010년 이후에도 5%대를 유지하던 총 자산증가율도 2045년 이후 마이너스로 돌아선다.

국내 시장 한계를 목전에 두고 금융사들은 해외시장 진출을 꾀하지만 아직 이들은 국내 시장에서조차 경쟁력이 낮다.

이준재 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은 "한국 경제 규모가 세계 12위인데 국내에서 가장 큰 국민은행은 세계 순위로 50위에도 들지 못한다"며 "금융산업에 신성장동력을 얻기 위해선 M&A, 대형화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또 다른 사회적 리스크의 씨앗이다. 금융산업엔 성장동력인 인수합병(M&A), 정보기술(IT) 발전은 인력 감축, 즉 노사관계 악화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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