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 버린 땅, 자비 씨앗 뿌리는 한국인

둥게스와리(인도)=희망대장정,정리=이경숙 기자  | 2007.11.19 09:55

[젊은 아시아, 빈곤을 넘어]<7-1>JTS가 봉사하는 인도 둥게스와리 탐방기

편집자주 | 2달러, 우리돈으로 약 1800원. 이 돈으로 아시아 인구 중 9억명이 하루를 삽니다. 21세기 이후 아시아 경제성장률은 연 평균6.3%로 다른 지역의 2배에 가깝습니다. 아시아는 과연 빈곤을 넘어설 수 있을까요? 그 답을 찾아 김이경, 윤여정, 주세운 등 세 젊은이로 구성된 '희망대장정'팀이 지난 9월, 아시아 최빈국의 빈곤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80일 동안 이어질 이들의 희망대장정을 머니투데이가 전해드립니다.

↑고락푸르역의 철로. 쓰레기를
창문 바깥으로 던지는 게 '인도 방식'
탑승문화다.
11월 2일, 인도 첫 도착지인 고락푸르역에 도착했을 때 우리를 맞이했던 건 역 주변의 소음과 수많은 사람, 소, 원숭이들이었다.

새벽이든 밤이든, 사람들은 기차역에서 소와 함께 잠을 청했다. 그 뒤로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원숭이들이 새끼를 하나씩 품에 안은 채 먹이를 찾아다녔다.

사람들은 차를 마셨던 토기 찻잔을 누가 지나가든 상관 없이 던져 깨뜨렸다. 또, 대수롭지 않다는 듯 기차 선로에 용변을 봤다.

연착을 밥 먹듯 하는 인도의 기차 사정 탓에 우리는 고속열차를 포기하고 완행열차를 타고 목적지인 '가야'로 가야 했다.

완행열차 안은 인생의 축소판 같았다. 우는 아기에게 젖을 물린 어린 엄마는 슬픈 눈으로 우리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했다. 아동노동자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씩씩한 남자 꼬마는 힘찬 목소리로 물을 팔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수많은 군상 속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짐을 든 채 어쩔 줄 모르고 서 있었다. 한 인도 청년이 우리에게 선뜻 자리를 양보해줬다.

원래 예정보다 하루 더 걸려 도착한 가야역에서 우리가 본 건 넓은 평야에 선 헐벗은 바위산이었다. 그 바위산 넘어 우리의 목적지, '둥게스와리'가 있다. 인도말로 '버려진 땅'이란 뜻이다.

↑부처가 6년간 수행한 인도의 전정각산.
노인과 여자들이 순례자와 관광객들에게
돈을 구걸하고 있다.
◇'버려진 땅'의 짓밟힌 사람들

예전에 둥게스와리는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버리는 '시타림(공동묘지)'이었다. 그곳에서 12명의 한국인 활동가들이 급여는 물론, 아무 대가 없이 자원봉사하고 있다. 소위 '명문'학교,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들어온 사람도 있다고 했다.

우리는 그들을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바위산 가운데로 뻗은 시멘트 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길가에 앉아 있었다. 어른들은 흙먼지가 뒤덮힌 허름한 옷을 걸쳤고, 아이들은 맨발로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몇 명의 여자들이 우리에게 '루피(인도 화폐)'를 외치며 구걸했다. 그외 사람들은 구걸할 힘도 없는 듯 무기력하게 앉아 우리를 쳐다봤다. 무서워진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산 중턱에 오르자 하얀 건물의 불교 사원이 나타났다. 우리나라에는 '전정각산 성지'로 알려진 곳이다. 싯타르타 고타마, 즉 부처가 이 사원 뒤 동굴에서 6년 동안 수행을 했다.

'자비의 종교', 불교가 시작된 곳이지만, 둥게스와리의 현실은 자비롭지 못하다. 이곳 인구 1만2000명 중 대부분은 '달릿(Dalit)' 즉 불가촉천민(untouchable) 출신이다.

'달릿'은 산스크리트어로 '깨진', '짓밟힌'이란 뜻이다. 이들은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등 카스트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1950년 법적으로 카스트제도가 철폐됐지만 달릿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광범위하게 남아 있다.

인도 경제는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지만, 달릿 출신이 많은 둥게스와리는 마치 외딴 섬처럼 변함이 없다. 문맹률은 90%에 이른다. 땅은 척박하여 연중 3개월 정도만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주민 대부분이 하루 1달러 미만의 생계비로 하루하루를 이어간다. 정부나 외부의 지원은 거의 없다. 그 흔한 전기나 도로조차 들어오지 않는다. 이 곳의 삶은 마치 부처가 다녀갔던 2500여년전 그대로인 것 같았다.

93년, 일반 인도인조차 들어오길 꺼리는 이 곳에 한 무리의 한국인들이 찾아와 함께 살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한국의 국제기아ㆍ질병ㆍ문맹퇴치기구인 'JTS(Join Together Society)'의 자원활동가들이 그 주인공이다.
↑수자타 아카데미 저학년 학생들. 둥게스와리 마을의 아이들은 전정각산을 넘어 1시간 동안 걸어서 학교에 온다.

◇수천년간 '교육' 없던 땅에 학교를 세우다

이들의 활동은 거리의 만남에서 비롯됐다. 91년, 인도를 방문한 법륜스님은 캘커타 길거리에서 아이를 안고 우유값을 구걸하는 한 여인을 만났다. 빡빡한 일정에 쫓겼던 그는 그 여인을 그냥 지나쳤다.

부처가 수행했다는 전정각산을 오르는 길. 법륜스님과 정토회 불자들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줄지어 앉아서 아무 희망 없이 구걸하며 사는 모습을 봤다. 불자들은 "왜 학교에 안 가고 다 여기 있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학교가 없다"고 말했다.

법륜스님과 정토회 불자들은 구걸하던 여인에 대한 미안한 마음으로, 캘커타에선 구호사업을 시작했다. 전정각산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으로, 둥게스와리에선 학교를 세웠다.


둥게스와리 마을주민들이 땅과 노동력을 제공했다. 자재와 재료비는 JTS가 댔다. 93년부터 1년 동안 4칸짜리 단층건물을 지었다.

94년, 이렇게 문을 연 '수자타아카데미'는 지금 초등, 중등, 고등 과정에 700여명의 아이들이 다니는 규모로 발전했다. 16개 마을의 수자타 유치원생은 1800명이 넘는다.

수자타아카데미는 2001년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소년소녀가장들을 위해 일하면서 배우는 노동학교를, 2004년엔 졸업 후 취업을 못하는 학생들을 위한 기술학교를 열었다.

2001년엔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의 도움으로 지바카 병원을 세웠다. 지역에서도 손 꼽히는 시설을 가진 이 병원에선 5루피만 등록비를 내면 평생 무료로 의료 혜택을 제공한다. 이 모두 헌신적인 JTS 활동가들의 노력한 결과다.

↑한 여성이 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래가며
힌두어 수업을 받고 있다. JTS는 조혼풍습,
혹은 집안일 때문에 수자타아카데미
학생이 되지 못한 여성들을 위해 매일
2~3시간씩 힌두어와 기초산수를 가르친다.
자원봉사자 중 한명인 김혜원 수자타아카데미 교장(31)을 5일 만났다. 4년 전 이곳에 온 그는 '수천년 동안 공부를 해본 적 없는' 불가촉천민을 가르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몸으로 느꼈다.

"이곳 불가촉민들은 '교육' 자체를 생소하게 여깁니다. 수천년간 공부를 해 본적이 없고, 제대로 된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으니까요. 교육이 왜 중요한지도 알지 못했어요. 어느 누구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죠."

수천년간 교육 받은 경험도,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한 경험도 불가촉천민들. 그들이 받은 소외와 차별을 우리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수자타 아카데미'라고 적힌 가방을 메고 하나둘씩 하교하는 학생들을 보는 우리의 마음은 흐뭇하면서도 답답했다.

7일, 우리는 수자타 아카데미 맞은 편에 위치한 지바카 병원을 찾아갔다. 이 병원의 운영자, 김정준씨는 잘 다니던 외국계 의료계 회사를 그만두고 1년반전에 이곳으로 왔다. 지바카병원은 둥게스와리 주민의 유람에서 무덤까지 의료를 책임진다.

"지역 주민이 아이를 출산하고 이곳에 등록하면 5가지 예방 접종을 해요. 그리고 죽는 사람이 생기면 저희가 장례비용으로 쌀을 지원하죠. 이렇게 지원하다 보니 구호에 너무 치우친 것은 아닐까 하는 내부 비판도 있어요. 저희는 주민들의 의료 자립을 추구하지만, 주민의 기초생활여건이 나빠 말처럼 쉽지만은 않아요."

◇헌신이 일으킨 작은 기적

병원을 나오니 새까만 얼굴의 한 남자가 웃통을 벗은 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건축담당 김재령 활동가였다. 그는 4년째 이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를 따라 작년 1월부터 짓기 시작한 수자타 아카데미 기숙사 공사장을 둘러봤다.

우리 눈에는 그저 평범한 기숙사 건물인데 이곳에서는 20년 시대를 앞서가는 건물이란다. 시대를 앞선 건물을 제대로 된 중장비도 없이 짓고 있는 그는 벌써 미래를 고민하고 있었다.

"지금은 이 지역 사람들이 먹을 것도 가진 것도 없으니 자연을 오염시킬 일도 없어요. 그러나 10년, 20년이 지나고 마을이 개발되면 상황이 달라지겠죠. 사람들이 점점 많은 물을 원하고 더 많은 물자를 사용하게 되면 이 지역 생태계는 감당할 수 없을 거에요."

기숙사 옥상에 올라서니 주위 전망이 한눈에 들어왔다. 뿌연 안개 속 마을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둥게스와리의 과거과 미래를 상상했다.

14년전, 길거리에서 구걸밖에 할 줄 몰랐던 아이들이 보였다. 이들은 지금 어느덧 다른 아이들을 가르치는 마을의 리더로 자라나 있었다. JTS 활동가들의 헌신적인 희생과 마을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만들어낸 작은 기적이었다.

다른 국내 구호단체에 비하면 JTS는 역사도 짧고 사업 규모도 작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헌신이 있었다. 기술이 아니라 헌신이 '신도 버린 땅' 둥게스와리에 자비의 씨앗을 싹트게 하고 있었다.
↑사진 가운데 개량한복을 입은 이가 JTS의 장영주 사무국장, 그의 오른편이 희망대장정팀 윤여정씨다. 희망대장정팀 주세운씨는 맨 왼쪽, 김이경씨는 오른쪽에서 두번째에 서 있다.


◇희망대장정팀은?
△김이경(22, 한양대 경제금융 04학번, ODA와치 단원, 한국공정무역연합 자원활동가)
△윤여정(22, 아주대 경영 04학번, 지구촌대학생연합회 전 회장,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기획단)
△주세운(22, 서울대 지구환경공학 04학번, 서울대 CSR연구회, 한국공정무역연합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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