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후보는 11일 박 전 대표를 '정치적 파트너, 국정의 동반자'로 규정하는 예우를 취했다. 내년 총선 등 공천권과 관련 깊은 '당권·대권분리' 규정의 준수 의지도 확인했다.
날이 갈수록 갈등의 골만 깊게 패고 있는 박 전 대표측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박 전 대표측은 대선 직후의 어지러운 당내 역학관계 속에서 이 후보측에 의해 자칫 '정치적 배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
이 후보의 '구애'의 이면에는 "박 전 대표의 협조없이는 대선승리도 없다"는 현실적 판단도 깔려 있다.
무소속 출마로 강력한 경쟁자가 된 이회창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이박제창(以朴制昌)'의 전략 외엔 '묘수'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후보는 김경준씨의 귀국 후 이어질 BBK 의혹에 또다시 맞서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 본격 대선전(戰)을 앞두고 '외부의 적'들이 득실거리고 있는 상황인데다 '대세론'까지 위협받고 있는 처지다.
더 이상 '집안' 문제에 발목잡혀 시간을 허비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라는 의미다. 결국 핵심은 이 후보가 내민 손을 박 전 대표가 잡아주느냐에 달렸다. 당 화합은 물론 대선판 자체가 박 전 대표의 손으로 넘어갔다는 얘기다.
박 전 대표는 뚜렷한 입장 표명을 미룬 채 여전히 '침묵' 중이다. 측근들 역시 굳게 입을 다물고 "지켜보자"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한 측근은 "지금으로서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고, 다른 측근은 "박 전 대표께서 직접 언급을 하지 않으신 마당에 일단 지켜보자는 게 우리(친박)의 입장"이라고만 했다.
다만 박 전 대표는 조만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한 핵심 측근은 "공식 발표는 없다"면서도 "외부 일정을 시작하는 내일쯤 기자들이 물어오면 답을 하실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박 전 대표가 이 후보의 화해 손길을 마냥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박 전 대표가 현재의 '스탠스(침묵 속 관망)'를 유지하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적잖다는 점에서다.
이 후보에 대한 지원 의사 표명 보류는 현재의 대선 정국에서 '역설효과'를 낳고 있다는 게 당 안팎의 시각이다.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박 전 대표의 '침묵'이 이회창 후보에게 유리한 정치적 환경을 조성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당 지도부들이 총출동해 이 후보에 대한 박 전 대표의 지원을 압박하고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박 전 대표가 이미 '경선승복'을 통해 '백의종군'을 선언하고 정권교체 협력 의지를 밝힌 바 있다는 점도 이런 분석을 가능케 한다.
따라서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의 정권교체'에 힘을 보태겠다는 정도의 원칙적 입장 표명을 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수용'이냐 '거부'냐의 이분법을 피하되,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하는 수준의 의사 표명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박 전 대표는 특정한 화합 방안을 이 후보에게 요구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면서 "대표의 입장은 '백의종군'으로 정권교체를 위해 노력한다는 것에서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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