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철 변호사의 '컨테이너 별장'에 가보니...

최종일 기자 | 2007.11.09 11:06

5월부터 양평 컨테이너에서 생활, 임시숙소 성격.."새 집 지을 계획있었다"

▲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 법무팀장)가 지난 5월부터 살고 있는 양평의 컨테이너 집.

"월~ 월~ 으르릉 월~ 월~"

진돗개 두 마리가 밤의 정적을 깼다. 몸집은 작지만 짖는 소리는 우렁찼다. 두 마리 누렁이가 짖자 옆집 흰둥이도 덩달아 짖어 댔다. 어둠속에 집에 접근조차 힘들었다. 게다가 두 놈은 목줄이 풀려 있었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두 마리 개와 한시간에 걸친 기싸움을 펼쳤다. 이유인즉, 이렇다.

지난 7일 오후 김용철 변호사의 양평집을 찾아갔다. 김 변호사는 최근 삼성의 비자금 불법 조성 의혹을 폭로해 현재 삼성과 공방을 벌이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지난 5월부터 삼성의 감시를 피해 최근까지 컨테이너에 숨어 살았다고 수차례 밝혔다.

의문은 단순했다. 특수부 검사 출신으로 삼성에서 수년 동안 수십억원을 받았던 사람이 남루한 컨테이너라니. 실제 그러한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게다가 양수리가 있는 양평은 돈 많은 사람들이 호화 별장을 지어놓고 살기에 제격인 곳이 아닌가.

주소 하나만으로 집 찾기란 무척 고된 일이었다. 양수리에서 십여킬로미터 떨어진 외진 곳이라 주민들 만나기도 쉽지 않았다. 가가호호 방문을 통해 주소를 확인해야 했다. 어렵게 마주친 주민들도 '그 변호사가 여기 살아요'라며 도리어 물어보기 일쑤였다. 주소를 들이대며 거의 구연동화식 설명을 해야 했다.

▲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 법무팀장)의 양평집 대문.

'아~ 그 집'. 다행이었다. '컨테이너로 대충 만들었을 것이고 지난 봄에 들어왔고..'라는 설명에 한 곳을 짚어주는 주민이 있었다. 두시간여의 헤맴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집에 가까이가자 마당에 있는 전등과 이층 방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누군갈 만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커지며 피곤이 싹 가셨다.

하지만 다른 복병이 앞을 가로 막고 있었다. 바로 개였다. 낯선 사람이라고 목이 터져라 짖어대는 게 아닌가. '초인종이 어디 있는지' 생각할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연방 짖어댔다. 옆집 개와 합세해 짖자 온 동내가 시끄러웠다. 개 소리 때문에 멀리 보이는 집에서 불을 켜는 게 보였다. 작전상 후퇴했다.

하지만 잠시 뒤 다시 찾아 짖든 말든 무시하고 대문을 부여 잡고 목청을 높였다. "계세요~", "아무도 없어요~". 대문과 30여 미터 떨어져 있는 집에서는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개 짖는 소리에 내 목소리가 묻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언성을 더 높였다. 개소리도 더 커졌다. 옆집 개도 짖었다. 한참 떨어진 곳에서도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별 수 없었다. 초인종이 없기 때문에 돌멩이를 들었다. 지붕이라도 맞춰 기자가 찾아왔다는 신호를 보낼 생각이었다. 불 켜져 있는 곳으로 작은 돌멩이 하나를 던졌다. 택도 없었다. 2미터 철제 대문을 간신히 넘긴 돌멩이는 마당 안에 '툭'하고 떨어졌다. 약한 어깨가 원망스러웠다.

이 때 의외의 상황이 발생했다. 돌멩이 소리에 두 마리 개가 멀찌감치 도망가는 게 아닌가. 맞힐 생각도 없었고 맞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완전한 제압이었다. 대문 근처로 오지도 못하고 안쪽에 있는 컨테이너 앞에서 꼬리를 내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정신 사납게 했던 개 소리가 들리지 않자 집안 모습이 눈에 찬찬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널찍한 마당 저편에는 컨테이너 두개를 쌓아놓은 집이 보였다. 기역자 형태로 컨테이너 하나가 더 옆에 붙어있는 구조였다. 김 변호사의 말이 맞았다. 컨테이너로 조립한 집이었다.

▲ 김용철 변호사의 집 마당. 개집, 장독대, 화단 등이 제법 잘 갖춰져 있다.
마당에는 개집과 거름더미가 보였다. 한 켠에는 장독과 파라솔에 딸린 테이블과 흰색 의자도 보였다. 규모와 외형은 딱 별장이었지만 집은 컨테이너였다. 우편함에는 '김용철'이 아닌 아들 이름이 적혀 있었다. 집 둘레는 철제 펜스가 둘러쳐져 있었다. 대문은 안쪽에서 걸어 잠그고 자전거용 열쇠로 이중으로 채워져 있었다.

순간, '빈집일 수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누렁이의 울부짖음이 한시간가량 계속 됐는데도 나와보는 사람도 없었으니. 시계는 벌써 아홉시를 향하고 있었다. 11월, 시골 밤 날씨는 제법 쌀쌀했다. 혹시 모르는 기대감에 한 시간여를 더 버티다 발길을 돌렸다.


다음날인 8일 아침, 구두끈을 바짝 묶고 다시 양평으로 향했다. 양수리를 거쳐 양평집까지 단박에 갔다. 대문 앞. 어제 봐서 그런지 짖는 소리가 확실히 약해졌다. 대문 앞에 서서 사진을 몇 장 찍을 수 있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언덕 위 집에서 내려왔다. 부근 논에서 일하는 주민이 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가가 집주인을 아는지 물었다. '오호..쾌재라..'. "평소 종종 만나 식사도 하고 일도 도와주곤 했다. 주변의 다른 분들과는 왕래가 거의 없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전날 밤 집을 찾아 헤매다 생긴 다리 근육통이 씻은 듯 사라졌다.

"김 변호사가 양평에 내려온 건 올 봄이었다"고 이 주민 김OO씨는 말했다. 그는 "김 변호사가 올 봄에 여기에 내려와 나무를 많이 심길래, 무슨 생각인지 물어봤더니 '서울은 복잡해서 싫다. 여기가 너무 좋다. 앞으로 살 생각'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는 이어 "(김 변호사가) 여기(컨테이너 집과 펜스 아래 돌담)를 다 헐어버릴 거라고 말했다"며 "내가 과거에 부동산을 했는데, 나한테 견적을 내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또 "'집을 새로 짓겠다'고 말했다"며 "주차장 공사는 이미 들어갔다"고 설명했다.그의 집 부근에 있는 값이 제법 나가보이는 빌라 형태의 전원주택이 연상됐다.

▲ 김용철 변호사 양평집 아래에 공사중인 주차장의 모습. 김 변호사는 주차장을 시작으로 새집을 세울 계획을 가지고 있다.

엉켜있던 의문의 실타래가 점차 풀리기 시작했다. 김씨에 따르면 김 변호사의 양평 집 대지는 면적이 990㎡(300평)이다. 매입한 시기는 10년전쯤이다. 3년 전쯤 팔려고 했지만 가격이 맞지 않아 단념했고, 지난 5월 무렵 내려와 컨테이너 건축물을 설치하고 살기 시작했다.

현재 김 변호사의 양평집 토지는 평당 100만원을 웃도는 수준이다. 또 컨테이너 세개로 만든 건축물 공사에는 6000만원 정도가 들었으며 주차장 공사에는 2000만원 이상의 비용을 쓸 계획이었다.

김씨는 또 김 변호사의 이 집에는 가족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고 말했다. 부인과 자식이 손자를 데리고 여러 차례 방문했다는 것. 특히 김 변호사가 '제일 무서운 게 와이프야'라며 엄살을 부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등 부인과의 관계가 좋아보여 이혼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부인과 2005년 8월 이혼했다. 2006년 2월 재결합했으나 2007년 1월 다시 갈라섰다.

그는 또 김 변호사가 이곳에 살면서 상추와 야생초 등을 키웠다고 했다. 또 손자가 좋아해 마당에 토끼, 닭, 새, 개 등도 키웠다고 전해줬다. 개는 두 마리 외에 치와와 한마리가 더 있었는데 앞 집 개에 물려죽었다고 했다. 닭들도 그 때 희생됐다 보상받았다고 했다. 어젯밤 요란하게 짖던 흰색 옆집 개의 모습이 떠올랐다. 김씨는 이 일을 계기로 김 변호사의 직업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김씨는 김 변호사와 겪었던 일화들을 연이어 소개해줬다. '야생초를 키우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말에 집안에 들어가 심어줬던 얘기나, 쓰레기 버리는 방법 등 일상의 소소한 일들도 자신에게 물어왔다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지금은 양평에서 잠시 떨어져 지내고 있다고 했다. 양평집에는 지난 7일 낮 일행 둘과 함께 잠시 들렀을 뿐이라고 했다. 김씨와 마주치자 김 변호사는 "나쁜 이웃 둬서 죄송합니다. 빨리 해결하고 내려오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현재 양평집은 관리자가 가끔 들러 개밥을 주는 등 집을 손보고 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김 변호사가 지난 5월 법무법인 서정에서 물러난 뒤 삼성의 감시를 피해 컨테이너 박스에서 숨어지내왔다'는 문장이 의미하는 바를 곱씹어 봤다. 분명, '컨테이너'는 맞았지만 '컨테이너'는 또 아니었다. 비바람 겨우 피할 수 있는 고립무원의 공간은 아니었다. '컨테이너'보다는 '컨테이너 별장'이 적당한 표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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