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권력의 조건

김형진 기자 | 2007.11.19 12:13

[머니위크 book]

"역사상 위대한 리더는 누군가요?" 1908년 오지 여행을 하던 톨스토이는 한 부족 추장의 이색 질문을 받는다. 톨스토이는 몇 시간에 걸쳐 알렉산더, 시저, 프레더릭 대왕, 나폴레옹의 일대기를 재미있게 풀어줬다. 그런데 얘기를 다 들은 추장이 반문한다. "왜 가장 위대한 지도자 링컨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으시지요?"

오지 원주민이 다 알 정도로 링컨은 세계적인 민주주의 영웅이다.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노예해방을 이룬 대통령. 지구촌 어느 가정이든 전기 한권쯤은 구비돼 있고 국내에선 현직 대통령이 리더십 연구 서적을 내기도 했다. 이렇게 이미 유명한데, 퓰리처상에 빛나는 사학자는 무슨 할 말이 많아 장장 800여쪽의 책을 냈을까. '권력의 조건(21세기북스 펴냄)'은 링컨 개인의 위대함을 넘어 권력 자체의 본질과 생리를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결론부터 말하면, 권력의 핵심은 '포용 리더십'이다. "마음을 얻는 것이 권력의 시작"이란 얘기다. 촌구석의 오두막집 출신 무명 변호사가 기라성 같은 워싱턴맨들을 꺾고 '백악관의 꿈'을 이룬 것은 '아우르는 힘' 덕분이었다. 링컨은 좀처럼 적을 만들지 않았다. 미국 헌법과 함께 세익스피어 저작을 탐독했던 그는 문학적이면서도 신중한 언어 구사로 보수와 진보 모두에게 만족감을 줬다.

저자는 링컨의 '넓은 어깨'가 특히 대통령 취임 후의 용인술에서 빛을 발한다고 간파했다. 절대권력을 쟁취한 대통령이 자신과 피터지게 싸운 라이벌을 곁에 두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링컨은 해냈다. 공화당 공천 때의 최대 경쟁자를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국무장관에 임명하고 틈만 나면 '대통령 병'이 도져 자신에게 두번씩이나 반기를 드는 또다른 이를 재무장관과 대법원장 자리에 잇따라 앉혔다.

또 링컨은 자기보다 국가를 먼저 생각하는 사나이였다. 꼭 필요한 인재라는 판단이 서면 아무리 감정을 건드리는 인사라도 대통령직을 걸고 자리를 보전해 줬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대통령의 인사권에 맞장을 뜬 전쟁장관이나 몇 차례에 걸쳐 '임전유퇴'를 실천한 북부군 총사령관은 '진짜 재능'을 펴보지 못하고 목이 달아났을 것이다. 링컨에겐 타인을 이해·배려하는 특별한 재능이 있었기에 역사상 가장 기이한 내각을 구성하고도 '연방 보전'의 대의를 관철시켰다.


둘러보면 우리도 5년만에 맞는 '권력의 계절'이다. 밤10시 드라마가 끝나도 사람들이 TV를 끄지 않고 후보초청 토론을 본다. 신문 역시 1면이 정치뉴스로 도배되는 날이 다시 많아졌다. 수십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미국조차 '존경하는 대통령'이 늘 '링컨'인걸 보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권력은 쉽게 만날 수 없는가 보다. 하지만 12월 19일은 그래서 더더욱 중요하다. 국민이 뽑아주지 않는다면 포용 아니라 포용 할아버지 리더십이라도 빛을 발할 수 없는 게 바로 민주주의다.

사족 하나 저자가 '권력의 근원'을 분석하는 데 걸린 기간은 10여년. 활용한 편지글만 수만 통이고 신문기사는 짤막한 문구 하나까지 세심하게 메모해 인용했다. 그래서 책을 읽다보면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은 '뉴 페이스' 때문에 헷갈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등장인물이 많은 건 결정적인 흠이 될 수 없다. 저자의 글 풀어가는 솜씨는 가히 '삼국지 저리가라'다.

권력의 조건/도리스 컨스 굿윈 지음/이수연 옮김/831쪽/2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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