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에세이]참을 수 없는 기다림

머니투데이 김영권 정보과학부장겸 특집기획부장(부국장대우) | 2007.11.06 11:50

이번엔 이것만(2) : 기다림을 마음 다스리는 기회로

우리는 하루에도 오만가지 생각을 하면서 산다. 쉐드 헴스테더라는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가 정말 그런지 실험했다. 결과는 하루에 5만에서 6만가지 생각을 한다는 것.

하루에 깊이 자는 4시간을 빼고 20시간동안 5만가지 생각을 한다면 1시간에 2500가지, 1분에 42가지 생각을 하는 셈이다. 내 경우를 보면 과장된 수치도 아니다. 당신의 경우는 어떤가.

동서양 가릴 것 없이 이렇게 오만가지 생각을 하면서 사니 얼마나 고단한가. 더구나 그 오만가지 가운데 85%가 부정적인 생각이라고 한다. 잘될 것이라는 믿음보다는 안될 것이라는 생각, 불신, 불만, 시기, 질투, 의심 등등.

이런 것들이 모두 스트레스다. 그것이 나의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한다. 그러니 그걸 줄이는 것이 바로 평화와 행복을 늘리는 길이다.

오만가지 생각을 덜어내고 한번에 한가지만 집중해서 하면 평소에 지겹던 일도 신나게 할 수 있다. 청소도 재밌고, 다림질도 재밌다. 설거지도 묘미가 있다. 밥 맛도 다르다. 지루한 회의도 할 만하다. 음악도 새롭게 들린다. 거리 풍경도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설거지를 할 때 그대는 살아 있고,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 접시를 닦는 것은 수단이면서 동시에 목적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접시를 깨끗이 하기 위해 설거지를 할 뿐만 아니라 접시를 닦는 매순간 완전히 살아 있기 위해 그 일을 하는 것이다." 틱낫한 스님의 말씀이다.

한번에 한가지에 집중하는 연습을 버스 정류장에서 해보자.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보면 한사람도 예외없이 버스가 오는 쪽을 바라보고 서있다. 어쩌다 고개를 돌려보면 모두 나만 노려 보는 것 같다. 버스가 늦으면 그들의 얼굴에 짜증이 배어난다. 모두들 기다림을 참지 못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버스 기다리는 시간을 '죽은 시간'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는 게 목적인 만큼 기다리는 시간은 수단일 뿐이다. 그러니 짧을수록 좋다.

그러나 버스는 내 의지와 관련 없이 온다. 내가 마음을 조린다고 빨리 올 리 없다. 그렇게 온 버스를 1등으로 타도 바로 앞 정류장에서 마지막으로 버스에 오른 사람보다 빠를 수 없다. 이번 정류장에서 꼴찌로 버스에 올라도 다음 정류장에서 가장 먼저 타는 사람보다 빠르다.

어쩌다 운좋게 빨리 온 버스를 1등으로 탔다고 해도 그때만 기분이 좋을 뿐이다. 이제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은 수단이 되고 집에 빨리 도착하는 것이 목적이 된다. 나는 버스가 쏜살같이 달리지 않은 것을 탓하기 시작한다.

우리의 일상은 대체로 이러하지 않은가. 느긋하게 해도, 한두번 양보해도 큰 차이 없는데 너도나도 앞뒤 재지 않고 서두른다. 마음을 조리고, 우르르 몰려다닌다. 늘 여러가지 일로 부산하다.

요즘처럼 바쁜 시대에 속도는 경쟁력이라고 한다. 생존을 가름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마음까지 바쁘면 항상 손해다.

그러니 버스 기다리는 시간을 바쁜 마음을 다스리는 기회로 활용한다. 마음이 달려가면 고삐를 당겨 잡는다. 틈만 나면 앞서가는 마음을 붙잡는데 집중한다.


버스는 알아서 오고, 알아서 달린다. 할 일 많고, 시간 없는 나와 아무 상관없이 오고 간다. 그런데도 쓸데없이 마음이 앞달린다. 나는 지금 그 마음을 붙잡는다. 지금은 버스를 타기 위한 시간인 동시에 달리는 마음을 움켜잡는 시간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나는 조급함과 기다림을 잊고 평화로와진다. 정류장에서 '무심'을 배운다. 이 순간은 깊어진다.
 

  
☞웰빙노트

깨어 있는 사람은 시간을 놓치지 않는다. 이런 사람에게 잃어버린 시간이란 있을 수 없다. 이들에게는 매 순간이 충만하다. 일을 하든 하지 않든, 책을 읽든 음악을 듣든, 산책을 하든, 아이들과 함께 놀든,이런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하는 일 그 안에 있다.
<안젤름 그륀,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
 

많은 이들이 이미 주어진 삶을 붙들 생각은 하지 않고, 정말 잘살 수 있을 '언젠가'를 위해 스스로를 다그치고는 한다. 그들에게는 오늘이 그날을 위한 준비 기간일 뿐이다. 하지만 삶이란 매 순간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사는 사람은 현재도 이미 잘살고 있는 사람이다. 살아가는 매 순간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로저 하우스덴, 지친 내 삶에 찾아온 특별한 행복, 오아시스>
 

숲은 오늘도 내게 속삭인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라. 그것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이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
<한상경, 아침고요 산책길>
 

 
 

이 기사의 관련기사

베스트 클릭

  1. 1 나훈아 '김정은 돼지' 발언에 악플 900개…전여옥 "틀린 말 있나요?"
  2. 2 "욕하고 때리고, 다른 여자까지…" 프로야구 선수 폭로글 또 터졌다
  3. 3 동창에 2억 뜯은 20대, 피해자 모친 숨져…"최악" 판사도 질타했다
  4. 4 "390만 가구, 평균 109만원 줍니다"…오늘부터 자녀장려금 신청
  5. 5 차 빼달라는 여성 폭행한 보디빌더…탄원서 75장 내며 "한 번만 기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