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이 대선에 출마한다고?

머니투데이 홍찬선 경제부장 | 2007.10.29 18:32

[홍찬선의 대선 관전법]이회창의 대선 출마라는 유령

17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50일 앞둔 2007년 10월말, 한국 정치에 유령이 떠돌고 있다. 바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2007년 대선 출마설’이라는 유령이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의 출마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고, 이른바 그의 측근이라는 사람들은 그의 출마설을 흘리고 있다.

언론에서도 이 전총재의 유령에 따라 춤을 추고 있다. 그가 결국 출마할 것이라는 시나리오에서부터 역사적 명분을 갖고 이는 그가 출마라는 자충수를 쓰지는 않을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이 전 총재가 출마설에 대해 ‘그렇다’거나 ‘아니다’라고 한마디 하면 유령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질 것을, 이 전 총재가 이런 유령을 즐기는 양상이다.

이 전 총재가 그의 출마설이라는 유령을 즐기는 것은 그의 이상하고 공허한 셈법에 따른 듯 하다. ‘한나라당 경선을 통해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이명박 후보가 지금은 지지율이 50%를 넘을 정도로 압도적인 우세를 기록하고 있지만, 여러 가지 의혹을 받고 있어 대선이 가까울수록 지지율이 떨어질 것이며, 그에 따라 대안론이 부상할 것이다. 이럴 때 한나라당 경선에 참여했던 박근혜 전 총재는 출마를 할 수 없을 것이나 경선에 참여하지 않았던 이 전 총재는 대선에 나설 수 있으며 이명박 후보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2002 대선에서 다 이겨놓은 것을 병역비리나 세풍 등에 따라 억울하게 졌다. 대선 이후 법원 판결로 이런 일들이 사실무근임이 밝혀진 이상 이 전 총재가 대선에 나서 10년 동안 뺏겼던 정권을 되찾아 와야 하며, 이 전 총재는 충분히 그럴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전 총재의 이런 셈법은 1997년에 치러진 13대 대선의 쓰라린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6?10 민주화 운동’의 결실로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한 직후, 30년 가까이 이어진 군사정권을 끝내고 문민정부가 들어설 것이라는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하지만 ‘4자 필승론’(민정당 민주당 자민련 및 평민당에서 대선 후보를 내면 김대중 평민당 총재가 필연적으로 이긴다)’에 따라 민주세력이 분열됨으로써 노태우 민정당 대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어부지리를 챙겼다.

이회창 전 총재는 이미 1997년과 2002년에 2번이나 대선에 나와 떨어졌다. 한번은 집권당 후보로서 김대중 야당 후보와 싸워 졌고, 한번은 야당 후보로서 노무현 여당 후보와 싸워 졌다. 두 번 다 대통령 선거일까지 유리한 지지율을 기록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지고 말았다. ‘상대방에서의 말도 안되는 마타도어 때문에 졌다’는 억울함이 있겠지만, ‘다 이긴 대선에서 진 것은 이 전 총재 탓’이라는 평가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한국에는 ‘대선 재수 및 삼수’라는 좋지 않은 악폐가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4수만에 대통령이 된 뒤에 이인제 민주당 대선후보가 삼수에 나섰다. 이회창 전 총재가 이번 대선에 나선다면 역시 삼수다.

두 번이나 세 번에 걸쳐 대선에 나온다는 것은 어찌 보면 ‘국민(유권자)에 대한 모욕’이다. 두 번에 걸쳐 ‘국민의 심판’을 받은 사람이 그런 심판을 무시하고 다시 심판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4수를 한 사람도 있지 않느냐?’며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4수가 정상적이 아니었다는 것은 대부분 수긍하는 일이다.

이회창 전 총재가 이번 대선에서 출마하는 것은 그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출사표를 아무리 미사여구로 장식하더라도 대한민국 역사에 큰 죄를 짓는 일이다. 이 전 총재의 대선 출마는 그에게 두 번의 패배를 안겨준 사람들에게 어부지리를 안겨줄 가능성이 크다.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가을이 왔음을 아는’ 것은 지도자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역사인식이다. 이 전 총재가 2007년 대선에 출마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거스르며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그런 오류를 되풀이한다면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패한 이유가 바로 이 전 총재 자신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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