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소리와 思秋期, 흔들리는 정치

머니투데이 홍찬선 경제부장 | 2007.10.26 13:30

[홍찬선의 대선 관전법]사추기 신드롬에서 벗어나 대선 진지하게

2007년 10월은 흔들리는 위험한 계절이다. 박철-옥소리 부부의 이혼에 이어 터져 나온 이영하-선우은숙 부부의 결별 소식이 장안을 강타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사람들의 눈과 손을 독점하고, 술자리에서도 단연 화제를 압도한다.

연예인의 결혼과 이혼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거의 매일 연예계 뉴스를 장식하는 것이 연예인의 결혼 및 헤어짐이다. 하지만 박철-옥소리 부부와 이영하-선우은숙 부부의 연이은 이혼 소식은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이들 부부가 견실한 가정생활을 해온 ‘모범 연예인 부부’로 평가받아왔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의 헤어짐은 한국 사회에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는 ‘사추기(思秋期) 신드롬’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사추기 신드롬이란 제2의 인생을 준비해야 하는 ‘40대에서 50대의 불안한 감정상태’를 가리킨다. 10대 중반에 성년으로 발돋움하면서 겪는 ‘사춘기(思春期)’에 빗댄 말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사추기라는 말조차 없었다. 먹고 사는데 바빠 제2의 인생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연공서열과 종신고용 및 두툼한 퇴직금은 노후를 걱정할 필요가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서면서 경제적인 문제보다는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30~40대에 가정과 회사와 나라를 위해 자신의 청춘과 인생을 희생하면서 죽도록 일만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회사를 그만두라(많은 직장에서 정기 인사할 때 **년 이상은 모두 희망퇴직자로 한다)고 하는 상황에서 심한 배반감은 물론 상실감을 짙게 느끼고 있다.

그 틈에 ‘사추기 신드롬’이 끼어들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애인을 사귀어 보자’는 유행이 확산되고 있다. 2개월 이상 뉴스의 초점이 됐다가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변양균-신정아’ 사건도 권력형 비리의 이면에는 이런 ‘사추기 신드롬’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추기 신드롬은 ‘들키지 않으면 된다’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지만, 들키면 자신의 인생이 망가지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가정을 파탄시키는 위험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착각을 가진 사람들을 오늘도 이 신드롬으로 유혹하고 있다.

사추기 신드롬의 위험성은 대통령 선거를 50여일 앞두고 있는 한국 정치를 흔들리게 하는 후유증도 갖고 있다. 바로 정치에 대한 무관심으로 대표되는 탈정치화(脫政治化)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고 유력 후보들이 속속 확정됐지만, 유권자들의 관심은 아직도 바닥권이다. 새로운 선거혁명이라고 주장하며 도입됐던 국민경선에서 투표율이 겨우 15%선에 머물렀다.

소득이 높아지고 개인들의 관심이 다양화됨에 따라 탈정치화는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사회적 현상이다. 정치를 안주로 삼지 않더라도 술자리를 즐겁게 만들 수 있는 화제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 혐오증과 정치 무기력에 따라 탈정치화가 과도하게 빨리 진행되는 것은 문제다. 아직도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국정방향이 크게 바뀌고, 그 결과 우리의 삶도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정책 방향이 크게 변하지 않는 정치 선진국의 탈정치화와 우리는 사정이 다르다.

물론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유권자들의 관심도 높아질 것이다. 대선 투표율도 적어도 70%는 넘을 것이다. 지금 유권자들이 대선보다 사추기 신드롬에 빠져 있는 것을 우려하는 것은 기우(杞憂)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인생에 대해 앞으로 5년 동안 큰 영향을 미칠 2007년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고, 그 후보가 제시하는 공약(公約)이 무엇이며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를 심각하게 따져볼 때다.

진지함과 심각함이 중요한 시대는 끝나고 즐거움이 중요해지는 게 시대의 흐름이지만, 진지해야 할 때는 심각해지는 것도 중요하다. 인생은 즐거움(Fun)만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다. 토끼 꼬리만큼 짧아진 가을, 우리의 삶과 국가의 장래를 위해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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