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인류의 운명 바꾼 기후의 힘

김형진 기자 | 2007.11.01 16:37

[머니위크]기후, 문명의 지도를 바꾸다

2007년 노벨평화상은 여러 사람의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놨다. 평화상이라면 전쟁 억제나 사형제 폐지 등이 단골 이었다. 그런데 환경 운동가 앨 고어(Al Gore)와 정부간 기후변화위원회(IPCC)가 수상자로 결정되니, "언제부터 세계평화가 기후랑 연관을 맺었지?" 의아해 하는게 당연했다.

"기후 변동은 과연 인류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가." 한번이라도 이런 의구심을 품은 적이 있다면 '기후, 문명의 지도를 바꾸다(예지 펴냄)'를 읽을 자격은 충분하다.

책은 초장부터 통념의 수정을 권고한다. '지구 온난화'하면 '산업화의 폐해'부터 떠올리는 게 일반적이다. 매년 애리조나주 크기만한 삼림이 사라지고 영화 '토네이도'의 초특급 허리케인이 내일이라도 당장 올 것만 같다. 백옥같은 '눈옷'을 벗어던지는 킬리만자로와 물에 빠져죽는 백곰과 펭귄들을 보며 사람들은 무차별 도시화의 그늘을 걱정한다.

하지만 인류학과 지구과학에 두루 정통한 저자는 '빙산의 일각'을 보았을 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지구는 1만5000년 전부터 이미 뜨거워지고 있었다. 늪지에서 나온 미세 꽃가루와 하천의 자갈 샘플, 나무의 나이테에 현미경을 들이대 보면, 기후는 이미 78만년 전부터 지구 환경의 절대인자였다.

저자는 환경결정론을 대놓고 지지하진 않지만, 역사를 움직이는 진짜 힘이 정치나 화폐가 아닌 기후라고 주장한다. 아홉 차례의 긴 빙기와 간빙기 이후 인류가 농경을 시작한 것은 대략 1만2000년 전의 일. '따뜻한 지구'는 인류 확산의 도우미도 됐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일례로 역사상 최장 제국을 건설한 로마의 쇠락 요인으로 전문가들은 북부 게르만족의 발흥을 꼽는다. 그런데 이는 지중해성 기후와 대륙성 기후를 가름하는 추이대의 이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로마는 추이대가 북상한 시기에 번영을 누렸지만, 추이대와 함께 게르만족이 남하하자 천년제국의 영광을 포기해야만 했다.

저자는 '기후 다루기'의 애로를 태평양을 예로 들며 친절하게 설명한다. 정상적일 때 태평양은 동쪽은 춥고 서쪽은 따뜻한 성질을 보인다. 동쪽은 따뜻한 무역풍이 심해 한류에 막혀 아메리카의 서해안을 길고 긴 건기에 빠뜨린다. 반대로 태평양 동쪽에선 온난한 바다가 거대한 비구름을 만들어 동남아시아에 호우와 몬순을 선사한다.

하지만 때때로 이 영구기관은 지킬에서 하이드로 급변한다. 지구과학의 역사를 들춰보면 무역풍이 아예 멈춰버린 경우도 있었는데 이렇게 되면 서쪽 난류가 역류해 동쪽 해수면의 온도를 크게 높인다. 동남아엔 가뭄, 동쪽 해안에 비구름이 형성되는 기후 대재앙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면 홍수방지 관개시설에 공들인 아시아인이든 가뭄 대비용으로 식량창고 쌓기에 열중한 아메리카 원주민이든 치명적인 뒤통수 한방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저자는 "문명이란 기후의 이상충격에 적응하는 과정"이라고 정의 내린다. 얌전히 잘 있던 동네 뒷산이 갑자기 용암을 분출한다면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엄청난 열과 재는 대기 흐름을 왜곡하고 이어 가뭄이 수백년간 이어진다면, 짐을 싸는 수밖에 없다. 무리 전체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든지 무리의 일부를 나눠 다른 지역으로 보내야 한다.

하지만 '중이 절을 떠나는' 해법도 도시화의 흐름 속에서 무력해진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농토 주변에 항구적인 정착촌이 일단 건설되면 인간의 기동성은 현저히 줄어든다. 홍수가 나도, 가뭄이 기승을 부려도 임자없는 새 땅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왕조는 또 찬란한 문명을 뽐냈던 마야는 역사 속으로 가뭇없이 사라졌다. 현대사회라고 다를 리 없다. 과학기술을 동원해 단기 흉년과 이례적 호우 등에 대한 대비책을 키워온 인류지만, 드물게 일어나는 대규모 재앙 앞에선 여전히 벌거숭이일 뿐이다.

올 여름엔 유난히 여름휴가를 망친 사람들이 많았다. 직장 상사 눈치 봐가며 겨우 며칠 손에 쥐었는데, 야속한 비는 8월의 절반을 '햇볕 못보는' 날로 만들었다. 이 '불편한 진실' 앞에서 "제대로 못 놀았다"는 푸념만 늘어놓을 것인가.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음울한 비유로 인류의 안타까운 상황을 묘사한다.

"우리가 탄 배는 거대한 폭풍우 속으로 빨려들고 있다. 구명정이 열 명당 한 척뿐인데 그걸 얻어낼 능력이 없다면, 할 일은 명확하다. 조타수에게 키를 돌리라고 요구하든지, 엔진 성능을 높이는데 앞장서야 한다."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한가? 벌써 서점가에 관련서적이 쫙 깔려 있다.

기후, 문명의 지도를 바꾸다/브라이언 페이건 지음/남경태 옮김/예지 펴냄/398쪽/1만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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