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北투자, 내년이면 가능할 것"

[대담=홍찬선 경제부장, 정리=최중혁, 사진=임성균 기자 | 2007.10.22 09:12

[머투초대석]이봉조 통일연구원장 "韓美日 컨소시엄 고려할 만"

 통일의 길이 험해서일까. 통일연구원으로 가는 길도 그다지 수월치가 않았다. 생긴지 10년이 넘었고, 건물도 3개동이나 쓴다고 들었지만 택시기사는 위치를 몰랐다. 신호 대기 중인 음식배달원의 도움을 받아 거의 비포장인 것 같은 수유동 2차선 도로의 끝에 닿으니 '통일교육원'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통일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떨어지는 요즘, 시내 한 복판도 아니고 이런 외딴 곳에 자청해서 통일교육 받겠다고 오는 이들이 있을까 싶었다. 얼마 전 모 여론조사에서 '통일이 불필요하다'고 답한 대학생 비율은 12%나 됐다. 하기야 남북정상회담이 없었어도 통일연구원장 인터뷰에 나섰을까에 생각이 미치니 대학생들 의식을 문제 삼기도 민망한 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환경문제처럼 통일문제 역시 우리에게는 '불편한 진실'임에 분명하다.

 여러 가지 복잡한 심정으로 원장실 앞에 이르니 '分久必合(분구필합)'이란 네 글자가 쓰여진 액자가 일행을 맞았다. '나뉘어 오래되면 반드시 합한다'는 뜻. 삼국지에 나오는 말로 원문에는 댓귀로 합구필분(合久必分), 즉 합하여 오래되면 반드시 나뉜다는 말이 있다. 통일과 분열이 반복된 중국의 역사를 표현한 것이지만 액자에는 8자 가운데 애써 4자만 적혀 있었다. 그만큼 통일에 대한 절박함이 묻어나기도 했다.

 올 1월 취임한 이봉조 제9대 통일연구원장을 만나 잠시 동안만이라도 그런 절박함을 공유하며, '불편한 진실'을 똑바로 쳐다보는 시간을 가져 보았다.

"3통 문제, 개성공단서만큼은 해결될 듯"

 -이번 정상회담의 결과로 남북간 경제협력이 남포, 해주, 백두산, 안변 등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제대로 되려면 군사적 보장, 투자 보장이 반드시 필요할텐데 국방장관, 부총리급, 총리 회담에서 잘 해결될 것으로 전망하나.
 ▶ 개성공단, 금강산, 백두산 사업 등은 금방 할 수 있다. 문산-봉동간 화물열차 운행도 크게 어렵지는 않다고 본다. 그러나 통행, 통신, 통관 등 이른바 3통 문제는 군사적 보장 문제가 걸려 있다. 다음달 쌍방 국방장관들이 만나 협의하면 제 생각에는 모든 경협에 적용되지는 않더라도 개성공단 적용에는 합의에 이를 것으로 본다.
 
 - 6.15 선언 이후 북한이 많이 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더디고 미흡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은데….
 ▶ 북한이 좀 더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는 데는 공감한다. 그러나 2000년 회담 이후 북한 군부도 많이 변했다. 금강산 관광만 해도 북한 군부가 원한 것은 해로 관광이었다. 그러나 육로관광이 가능해졌다. 개성공단 조성 과정에서도 군 부대가 통째 이동했다. 경협이 더 나아가려면 군부의 보다 적극적인 협조가 있어야 가능한데 이에 대해 이번 정상회담에서 국방장관 회담 내용을 담았다. 다만 예전부터 늘 말해 온 것이 있는데 북한과의 협상에서 합의내용 중 숫자는 믿지 말라는 것이다.
 
"북한과의 합의에서 숫자는 믿지 말라"
 
-이번 방북에 4대그룹 총수가 나섰지만 나타난 성과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대기업 진출을 위해 어떤 것들이 해결돼야 하나.
 ▶ 아무래도 투자 안정성 측면에서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테러지원국 삭제, 적성국 교역법 적용 해제 등 북미관계가 개선돼야 대기업들이 움직일 것으로 본다. 올 연말 북핵 불능화 2단계가 이뤄지면 미국도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상한다. 내년 중 대기업들이 투자를 검토할 수 있는 상황으로 변하고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기업들이 미국이나 일본 기업들보다 좀 더 빨리 움직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우리 기업들이 미국, 일본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들어가는 것도 효율성과 안정성을 높이는 한 방법일 것이다.

 -대기업 총수들만 둘째 날 공식 일정에서 모두 빠졌다. 별도 만남을 가졌다고 봐야 하나.

 ▶ 제가 듣기로 북한 투자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얼굴 익히기다. 저 사람이 2007년에 와서 김정일 위원장하고 같이 식사도 했다는 식의 의미가 북한에서는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다.
 
"경협서 '얼굴익히기' 제일 중요...韓美日 컨소시엄 구성 고려할 만"

 -남포, 해주, 안변 등은 기존 신의주 특구나 나진선봉 특구와 공통점이 별로 없어 보인다. 비교를 해 본다면?
 ▶ 북한 입장에서는 신의주를 중국과의 협력 구조로, 나진선봉은 러시아와의 협력 구조로 검토할 것이다. 이번 합의에서는 빠져 있지만 철도 연결이 보장될 때 신의주는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때문에 우리도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다만 북한 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남한과 하겠다 이런 뉘앙스를 중국과 러시아에 주는 것은 부담이었을 것이다.

 -10.4 합의를 모두 이행하려면 많은 비용이 들 것이다. 재경부는 사회간접시설 부분 외에는 민간 주도로 진행될 것이기 때문에 큰 돈이 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야당에서는 60조원 등 천문학적 비용을 주장하고 있는데.
 ▶ 비용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얼마나 들 것인가 계산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나와 있는 것은 최대치 계산이다. 합의된 모든 것이 다 이뤄지고, 투자비용 전액을 우리가 부담하며, 최대한 빨리 진행시킨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일이 실제 그렇게 진행되지는 않는다. 인프라 부분만 해도 전부 정부 지출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북핵 문제가 해결돼 국제금융기관들로부터의 지원 자격을 갖추게 되면 유엔개발계획(UNDP) 등으로부터 상당 부분 자금 조달이 가능해진다. 우리는 '보장자 역할' 정도만 맡으면 된다. 이와 함께 편익 부분도 고려돼야 한다고 본다. 북핵 문제가 해결돼 국가신용등급이 올라가게 되면 편익을 크게 누릴 수 있을 것이다.
 
"北에게 개혁개방은 목표 아닌 수단"

 -편익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는 말씀에는 충분히 공감이 간다. 하지만 정부는 비용이 많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접근방식을 좀 달리해야 하지 않나.
 ▶ 어차피 대북 지원이라는 것이 기금 확보 범위 내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예산보다 더 쓰려면 국회의 별도 동의절차를 거쳐야 한다. 결국 내년 비용은 협력기금 예산 7500억원을 넘기 어렵다. 다만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음을 국민들에게 정확히 설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통일 관련 업무만 20년 넘게 맡으면서 중요한 역할을 많이 하셨는데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 북한이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1998년부터 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속도가 느렸지만 만약 북미 관계가 정상화되면 속도가 매우 빨라질 것이다. 다만 유념해야 할 부분도 있다. 중국 후진타오 주석은 최근 '개혁 개방이 목표'라고 연설한 바 있지만 북한에 있어 개혁, 개방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에 불과하다. 중국, 베트남, 러시아 등은 모두 시장친화적으로 정책을 바꿨지만 북한은 계획경제를 보완하는 역할 정도로 인식하고 있어 한계가 있다.

 -남북 경협에서 아쉬운 부분이 기본 데이터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인데.
 ▶ 연구원 홈페이지에서 자료를 제공하고 있지만 북한 스스로 만든 데이터는 아니다. 북한 데이터는 하나라도 안놓치고, 과거 북한과 가까웠던 나라를 통하든 어떻게든 모두 수집하려 하지만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현재는 남녀구성비, 1~3차 산업 비중 등 기초적인 자료도 없는 상태다. 국제금융기관으로부터의 지원을 위해서라도 데이터 확보와 공개는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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