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한국에 부자가 없는 이유

머니투데이 홍찬선 기자 | 2007.10.18 13:18
한국에는 부자가 거의 없다. 물론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 이르는 선진국이어서 소득 규모만으로는 부자가 적지 않다. 금융자산만 100만 달러(약 9억4000만원) 이상인 부자만도 9만9000명이나 된다.

하지만 자신이 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재산이 10억원이 넘고 연봉이 1억원에 이르는 사람도 부자라고 느끼지 못한다. 아들과 딸의 사교육비로 소득의 절반 가까이를 쓰고, 집을 사기 위해 은행에서 빌린 대출금의 원리금을 갚고 나면 꼭 하고 싶은 일에 쓸 돈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자녀 1명을 대학교 졸업시킬 때까지 필요한 돈이 2억3000만원이나 된다. 전체 가구의 월평균 자녀양육비는 158만5000원으로 소득의 절반 수준(46.4%)이다. 또 전체 가구의 46.9%는 빚을 지고 있으며 가구당 평균 부채는 2746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빚을 지는 가장 큰 이유는 주거비(50.1%)다. 사업자금이 필요해 빚을 지는 경우(27.5%)보다 훨씬 많았다.

높은 사교육비와 주거비로 대표되는 고비용 구조는 한국에서 중산층 형성을 방해하고 건전한 소비를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중산층이 사교육비와 주거비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하층민으로 떨어짐으로써 부와 소득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또 음악회나 전시회 같은 문화소비와 부모들의 은퇴 이후 생활을 설계하기 위한 사회교육 등과 같은 건전한 소비를 위축시킨다. 해마다 경제가 4~5%씩 성장해 소득규모는 늘어나지만 실질소득은 증가하지 못함으로써 삶의 질은 오히려 떨어지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각종 규제에 따른 경제적 지대(Economic Rent)를 독식하는 층이 적지 않다는 사실도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요인이다. 경제적 지대란 의사나 변호사, 그리고 운동선수나 연예인처럼 자격시험이나 자질 등으로 인해 공급이 제한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 비해 높은 소득을 가져가는 것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변호사 연봉이 3억원이라고 할 때, 그가 일반 회사원으로 근무할 때 얻을 수 있는 연봉(5000만원)의 초과금액인 2억5000만원이 경제적 지대다. 서울 강남 아파트 값이 서울의 다른 지역이나 지방보다 훨씬 비싼 것도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제한돼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경제적 지대의 일종이다.


교육부가 2009년에 문을 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정원을 1500명으로 결정한 것에 대해 시민단체 등에서 3000명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변호사 수 제한에 따른 경제적 지대를 줄임으로써 국민이 받는 법률서비스의 질을 높이자는 뜻이다. 현재 우리나라 변호사 1인당 인구는 5785명으로 OECD 회원국(멕시코 제외) 평균인 1482명보다 4배 정도 많다. 인구 10만명 당 변호사 수도 17.4명으로 미국(352.1명), 독일(153.7명) 등 선진국보다 크게 부족한 형편이다.

경제적 지대는 규제를 철폐해 진입장벽을 낮춤으로써 최소화할 수 있다. 의사와 변호사 회계사 정원을 대폭 늘리는 게 그런 것이다. 강남 아파트 공급을 늘려 희소성을 떨어뜨려야 경제적 지대가 줄어든다. 중-고등학교 교사 자격 요건을 완화하고 교육시장을 개방함으로써 교육의 질을 높이고 사교육비 부담을 낮춰주는 것도 시급히 해야 할 일이다.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에 나설 후보가 거의 확정됐다. 이번 대선에서 어떤 후보에 낙점할 것인가는 경제적 지대를 최소화하고 한국의 고비용 구조를 파괴할 수 있는 공약을 제시하는가로 결정하면 어떨까. 천정부지로 치솟는 사교육비와 주거비 및 경제적 지대를 해결하지 못하면 한국에는 명목상 부자는 있되 실제로는 부자가 없는 빛 좋은 개살구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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