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o Big To Fail' 월가 백기사 재등장

뉴욕=김준형 특파원 | 2007.10.16 05:31

[등장배경·운용방향]3개월간 우량채 매입..'자율'명목 정부주도

월가의 초대형 투자은행들이 또다시 금융시장의 '백기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씨티그룹, JP모간체이스, 뱅크오브 아메리카 등 3개 은행이 15일 신용경색 해소를 위해 800억달러 공동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다.

'시장실패'로 인한 위기상황에서 미국 시장을 지배하는 초대형 금융사들이 호주머니를 털어 '백기사'를 자처하고 나서는 것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멀리는 1929년 대공황당시 JP모간이 1억달러를 내놓았던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월가의 전통이 이번에도 되풀이 된 것이다.

◇ "Too Big To Fail...공룡 SIV 넘어지면 큰 일"

씨티 등 3개 대형 은행들이 구성키로 한 '공동 펀드(가칭 M-LEC, Master-Liquidity Enhancement Conduit)'의 결성과 운용은 향후 90일간 한시적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전체 자금 규모는 750억-800억달러로 출발하지만 추가로 금융회사들이 참여하면 최대 1000억달러까지 확대될 것으로 알려졌다.

펀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을 시장에서 직접 매입하는 것이 아니라 SIV가 보유한 자산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운용한다. 펀드 결성에 참여하 금융권 관계자는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펀드는 신용등급 상위 우량채권을 우선적으로 매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이 800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규모를 갹출하기로 한 것은 공룡화된 SIV가 부실화됐을 경우 미칠 파장이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이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운용하고 있는 SIV(Structured Investment Vehicle)는 전 세계에 36개가 설립돼 있다. 무디스 집계에 따르면 8월말 현재 SIV의 전체 자금규모는 4000억달러(370조원). 보유 투자자산은 3200억달러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SIV 손실을 촉발했지만 실제로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직접 투자된 부분은 극히 일부분이다.
UBS증권에 따르면 SIV의 서브프라임 투자는 전체 투자자산의 2% 밖에 되지 않는다. 대부분인 전체 자산의 41%는 금융채에, 22%는 프라임 모기지증권에, 자산담부보 증권에 16%가 투자돼 있다. 12%는 채무 보증 재원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신용경색과 이로 인한 채권가격 급락으로 자산가치가 급락했다. 신용평가사 피치에 따르면 SIV들은 8월 이후 자산매각을 통해 평균 액면가 대비 1.3%의 손실을 입었으며 일부 SIV는 손실률이 액면가 대비 14%에 달한다 .

펀드 조성에 앞장선 씨티그룹이 보유한 7개 SIV 역시 자산가치 급락으로 곤경에 처한 것으로 알려졌다. 씨티 계열 SIV가 보유하고 있는 자금은 1000억달러로 전체의 4분의 1에 달한다.

뱅크오브 아메리카와 JP모간은 SIV를 운영하고 있지 않지만 '시장안정'이라는 명분에 동참키로 했다. 시장경색이 지속되면 SIV 보유 여부를 떠나 직접적인 여파가 미칠 것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들 두 은행은 또 펀드에 참여하는 대신, 펀드 구성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수수료를 받게 될 것으로 전해졌다.


◇ 외형상 '자율', 막후엔 정부

펀드에는 정부자금이 전혀 투입되지 않고, 펀드참여 역시 외형상 자발적인 것이지만, 실제 펀드의 산파역은 미 정부이다.

헨리 폴슨 재무장관은 최근 씨티그룹의 찰스 프린스 회장, JP 모간의 제미 디몬 등 금융권 최고 경영자들을 만나 직접 펀드 구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앞서 9월 16일 로버트 스틸 재무부 국내금융 담당 부차관이 미리 이들 CEO를 만나 '밑그림'을 마련한 바 있다.

1998년 롱텀 캐피탈이 러시아 채무불이행으로 인해 40억달러의 손실을 입고 파산 직전에 몰렸을 당시에도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이 금융회사 CEO들을 직접 소집, 긴급 구제자금을 조성했던 것과 판박이다.

RBS그리니치 캐피탈의 투자전략가 케네스 해켈은 "1998년 파산위기에 몰렸던 롱텀 캐피털과 마찬가지로 SIV는 (파산하기에는) 덩치가 너무 크기 때문에 정부가 나설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재무부는 15일 성명에서 "국내외 금융회사들과 증권사, 투자자들이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 시장의 유동성을 개선하기 위한 근본적인 장치를 마련했다"며 '구조조정펀드'구성을 환영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가 나서서 SIV의 위기를 해결해주려는데 대한 비판적 시선을 의식한듯
헨리 폴슨 재무장관은 SIV에 대한 정부규제가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국립공원 지도자 회의에 참석하고 있던 폴슨 재무장관은 'SIV 구조조정펀드'구성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최근의 금융시장 동요는 규제당국이 SIV와 같은 펀드들을 보다 투명하게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줬다"고 말했다.

그는 비슷한 위기가 재발하지 않기 위해 다양한 규제장치와 회계 원칙이 연구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정부가 이같은 펀드구성을 주도한데 대한 비판을 의식한듯 "펀드구성은 민간부문의 지도자들이 먼저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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