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백기사펀드 '아랫돌로 윗돌 괴기'

뉴욕=김준형 특파원 | 2007.10.16 06:55

[의미와 전망]SIV손실 현실화 선제조치..'신뢰'가 관건

씨티그룹, JP모간체이스, 뱅크오브 아메리카 등 3개 은행이 15일 신용경색 해소를 위해 800억달러 공동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다.
SIV(구조화 투자회사:Structured Investment Vehicle)의 채권을 매입해줄 'M-LEC(Master-Liquidity Enhancement Conduit)펀드(가칭)가 단기적인 시장안정의 열쇠를 쥐고 나섰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대형은행들이 어차피 자신들에게 돌아올 손실을 피하기 위해 미리 선수를 치고 나선 측면이 있다. 또, 공동펀드 구성이 시장의 신뢰를 강화하기 보다는 오히려 불안감을 조성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 "어차피 돌아올 매, 생색내고 미리 맞자"

투자은행들이 '공동펀드'를 구성하기로 한 것은 신용경색이 지속되고 SIV의 문제점이 부각되면서 대형 은행들의 SIV관련 손실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는 시점과 맞물린다.

대형은행들의 SIV 투자내역은 현재는 '부외자산'으로 분류돼 재무제표상의 '주석'에만 기재될 뿐 손익계산서에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금융회사들의 수익에 미칠 영향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이때문에 대형은행들이 SIV자산을 '부외자산'으로 분류하는게 옳은지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미 제기되고 있는 상태이다. 회계법인들의 모임인 'CAQ(감사 품질관리 센터)'는 "은행들은 주기적으로 (SIV투자와 같은 위험자산을) 재평가해야 하며, 투자위험을 줄이기 위한 행동을 취하지 않을 경우 SIV를 합병하는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SIV 투자규모가 절대적인 씨티그룹이 '펀드' 구성을 먼저 제안한 것이나, 전년대비 57% 수익감소 발표 당일 펀드구성 발표를 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SIV자산 부실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현재는 '부외자산'으로 분류된 SIV자산을 대형은행들이 고스란히 장부에 반영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이 경우 대형은행들은 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일반 대출까지 급격히 줄여야 하고, 이는 미국시장은 물론, 세계 금융시장 전반의 패닉을 불러 일으킬수도 있다. 미국정부로서는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다. 결국 '월가 손목비틀기'에 나선 것이다.

정부는 한푼도 지원하지 않고, 순전히 민간 부담으로 공동펀드를 구성하도록 한 정부의 요구를 씨티그룹 등 대형은행이 순순히 받아들일수 밖에 없었던 것도 이같은 배경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로버트 스틸 재무부 국내금융담당 부차관은 "펀드에는 공적자금이 투입되지 않을 것"이라며 "펀드의 목적은 시장이 제기능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 관건은 '신뢰'회복

어느 시장이건 '신용경색'이 심화되는 가장 큰 이유는 '불신'이다.
숨겨진 부실이 어느정도인지, 누가 먼저 자금을 회수할 것인지 불안한 상황에서는 먼저 현금을 확보하는 쪽이 늘 승자가 된다. 따라서 금융회사들이 보유채권을 앞다퉈 내다팔아 채권값이 급락(금리 급등), 부실규모가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막히는 악순환이 지속되는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발발을 계기로 8월 이후 심화돼온 미국 시장의 신용경색 역시 다르지 않다. 10일 현재 ABCP(자산담보부 기업어음) 발행잔액은 8990억달러로 신용경색 발발 직전인 6월말의 1조1400억원에 비해 21%나 줄어든 상태이다.


이 과정에서 설정규모 4000억달러, 투자자산 3200억달러에 달하는 SIV들이 '시한폭탄'으로 부상했다. 신용경색이 심화되면서 보유자산의 건전성이 악화된 SIV가 파산을 피하기 위해 앞다퉈 채권을 매각하게 되면, 살얼음판을 걸어온 금융시장 질서가 붕괴될 위기에 처하게 되기 때문이다.
대형 투자은행들이 출자해 만든 SIV는 자체신용으로 저금리 단기채권을 발행하고 이를 통해 모아진 자금을 모기지증권, 중소기업들의 어음(CP) 등 고위험 고수익 자산에 투자해왔다.

SIV의 채권을 사들여줄 '메가 펀드'를 만듦으로써 SIV를 포함한 시장 플레이어들의 '매도 패닉'을 막아보자는 것이 '공동펀드'의 아이디어이다.
SIV 채권매입은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가 맡아야 할 '유동성 공급'기능을 민간에서 일부 분담하는 역할도 하게 된다.
무디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마크 잔디는 "펀드구성이 CP시장의 신뢰를 재구축하고 대형 은행들의 여신위축을 방지하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 "800억불로 부족할수도..."

하지만 투자자들이 대형은행들이 백기사펀드를 조성해야 할 정도로 시장이 취약하다는데 초점을 맞추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수도 있다.

은행들이 추가 자금을 투입할 것이라는 점을 믿고 SIV들이 채권이나 기업어음(CP)등 자산을 매도할수 있다. 실제로 이달초 발간된 무디스의 SIV평가 보고서는 "SIV의 파산이 가져올 은행들의 신뢰 붕괴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라며 은행들이 SIV 보호에 적극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여타 기관투자자들도 보유 자산가치 하락에 대한 우려때문에 매도대열에 합류하고 SIV 발행 채권을 기피할 경우 결국 SIV가 파산하든지 투자은행들이 모든 부실을 떠안든지 둘중의 하나가 될 가능성도 있다.

씨티그룹 등 대형은행은 800억달러의 자금은 '백기사펀드'의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JP모간의 채권분석가 알렉스 뢰버는 "800억달러는 막대한 자금이지만 SIV 전체 보유 자산에는 여전히 2400억달러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선순위채를 매입할 수 있는 정도는 되지만 모든 채권을 감당하기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결국, 투자자들의 매도공세를 받아내는데 800억달러의 자금을 소진하고도 신용경색이 지속되고, 금융권의 자산 가치 동반급락으로 이어진다는게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씨티등 주가 하락..시장반응 "싸늘"..

시장의 첫 반응은 싸늘하다.
15일(현지시간) 미국 증시에서 씨티그룹의 주가는 전날에 비해 3.41% 떨어진 46.24달러로 마감했다. 씨티와 함께 펀드구성에 나서기로 한 JP모간 체이스와 뱅크오브 아메리카 주가도 각각 1.17%, 1.25% 떨어졌다.

800억달러에 달하는 공동펀드를 구성, 신용위기 진정에 나선다는 발표가 투자심리를 오히려 악화시켰다는 분석이다.
리만 브라더스 자산운용의 포트폴리오 전략팀장 아론 거위츠는"(공동펀드 구성은) 투자자들에게 금융시장 경색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상기시켜줬으며, 생각보다 많은 금융회사들이 더 큰 손실을 입을 수 있을 것이라는 불안감을 키워줬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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