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기술 제일주의가 부메랑?

최명용 기자 | 2007.10.18 11:45
종합주가지수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연초 1430.06(1월 2일 종가)을 기록하던 코스피지수는 12일 2058.87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삼성전자 주가는 코스피 지수와 상관없이 역으로 가고 있다. 연초 62만5000원 수준이던 주가는 17일 현재 51만5000원으로 뒷걸음질쳤다.

우리나라 대표 기업이라던 삼성전자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첨단 기업과 첨단 기술을 뽐내던 삼성전자는 굴뚝 회사인 포스코에 따라잡혔다. 주가뿐 아니라 시장 영향력도 포스코가 삼성전자보다 앞서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삼성전자의 빛이 꺼졌다고 평가했다.

삼성전자에 무슨일이 일어난 것일까. 세계 반도체 시장을 호령하고, 전자 산업 넘버 원의 깃발을 높이던 삼성전자가 왜 갑작스레 힘을 잃었을까.

◇하늘만 바라보는 천수답 신세=삼성그룹의 60%는 삼성전자가 책임지고 삼성전자의 60%는 반도체가 책임진다는 말이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의 힘이 삼성을 이끄는 힘이다. 삼성전자 반도체가 힘을 잃은게 첫번째 요인이다. 삼성전자는 지나치게 반도체에 의존했다. 삼성전자의 분기 매출은 14~15조원 가량이다. 이중 반도체총괄이 차지하는 비중이 4~5조원 가량이다. 전체매출의 1/3을 반도체가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영업이익에선 60~70%가 반도체의 몫이었다. 2006년 2분기 삼성전자가 거둔 영업이익이 1조4200억원이었는데 이중 9800억원이 반도체에서 거둔 것이었다.

그런데 반도체는 천수답 시장이다. 하늘에서 비가 내려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천수답처럼 시장 가격에 따라 움직이는 시장이다. 따라서 반도체 시장의 가격 왜곡이 나타나면서 삼성전자의 비극이 시작됐다는 지적이다.

◇반도체값 곤두박질=반도체라인은 투자금액을 대규모 투자를 한 뒤 매년 20~25%씩 감가상각을 해야 한다. 감가상각이 되는 만큼 제품 가격을 내릴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그러나 1분기에 30%~50%씩 가격이 떨어지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 올 들어 반도체 값 폭락은 계속됐다.

대표적 D램 반도체인 DDR2 512Mb 533MHz의 가격은 지난해 말 6.12달러였다. 그러나 올 2월엔 4.88달러, 3월엔 3.9달러까지 떨어졌다. 40%가량 폭락한 셈이다.
반도체값 폭락세는 하반기까지 이어져 10월엔 2달러 밑에서 거래되고 있다. 6월 들어 1.66달러를 바닥으로 7~8월에 2달러 위까지 회복됐으나 9월 하반기엔 1.75달러로 다시 내려왔다.

◇시장예측에 실패=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시장상황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의 실책은 두가지다. 수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공급 확대와 신기술 적용에만 집중했다.

삼성전자는 올 상반기에 D램 셀 최소 면적을 8F스퀘어에서 6F스퀘어로 바꾸는 신공정을 도입했다. 이렇게 되면 같은 웨이퍼에서 생산할 수 있는 반도체의 규모가 10~15%가량 늘어난다. 8F스퀘어에서 F스퀘어는 반도체의 최소 면적을 말한다. 가로길이 4F와 세로길이 2F를 곱한 셀면적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개발한 50나노 D램 공정에 6F스퀘어 구조를 적용하는데 성공했다. 가로 4F를 3F로 전환해 셀 면적을 줄인 것이다. 그만큼 반도체 생산량을 늘릴 수 있게 됐다.


이같은 공급 확대 전략은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예측 때문이었다. 올 상반기부터 도입된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비스타 효과로 D램에 대한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같은 예측은 빗나갔다. 윈도비스타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고 과잉 공급으로 반도체 가격이 오히려 더 떨어지는 악순환을 초래했다.







◇기술 제일주의가 만든 비극=시장 예측이 실패한 데에는 기술 제일주의가 한 몫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 황창규 사장은 매년 메모리 집적도를 두배씩 늘린다는 황의 법칙을 주장했고, 이를 매년 실현해 냈다. 시장 수요 보다 우선 집적도를 두배로 늘리는 기술 개발에 전력했다는데 업계의 중론이다. 가장 먼저 가장 앞선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장 수요보다 앞선 기술을 적용하면서 시장 대응에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야심차게 내놓았던 8기가 낸드플래시메모리가 주력으로 자리잡지 못한 것이 단적이 예다. MP3플레이어들이 점차 용량이 큰 메모리를 원할 것이란 예측이었지만 음악 파일은 4기가면 충분하다는 인식이 자리잡으면서 낸드플래시 메모리의 수요는 늘지 않았다.

◇회복은 언제쯤 가능할까=4/4분기까지는 어렵다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시장조사기관 아이서플라이는 D램 가격이 4/4분기에 11%까지 급락할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하지만 내년은 다소 희망적이다. 반도체 값이 내려가면서 반도체에 대한 수요가 늘고 윈도비스타 효과가 본격화 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아이서플라이는 올해는 D램업체들에게 힘든 시기였으나 내년 1/4분기부터 D램 공급이 타이트해지면서 시장 균형을 찾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푸르덴셜증권 박현 연구원은 "D램 고정거래가격 하락세는 메이저 PC업체들과 반도체 메이커들이 스페셜 딜을 체결했기 때문이다"며 "D램 재고에 도움을 줘 수급엔 긍정적이고, 성수기 수요 확대등으로 10월 하반기 부터 가격반등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시장 상황에 좌지우지 되는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삼성전자의 비극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 삼성전자의 과감한 변신이 시급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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