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의 孫, 졌지만 다음엔?

머니투데이 이새누리 기자 | 2007.10.15 17:34
'수처작주(隨處作主·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

대통합민주신당 손학규 후보의 좌우명이다. 그러나 이번 경선에서만큼은 그의 좌우명을 지키지 못했다. 한나라당을 나와 척박한 시베리아의 개척자가 되길 꿈꿨지만 승리의 신은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의 삶은 '의외'의 연속으로 요약된다. 건장한 체격에 걸맞지 않는 감수성은 둘째치더라도 그간 보여준 정치 행보들은 사람들의 예상, 그 위에 있었다.

그의 의외성은 학창시절부터 고개를 들었다. 반듯한 모범생이었을 것 같은 손 후보는 학창시절, 소위 '날라리'였다. 전적(?)도 화려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밴드부에 들어가서는 트럼펫 부는 법은 물론 음주가무도 함께 배웠다.

연극이 하고 싶어 '빳다'로 30대를 맞으면서까지 밴드부를 탈퇴, 연극에 심취하기도 했다. 대학시절 "미팅하면 춤을 잘췄는데 어찌나 힘이 센지 마루가 꺼져버렸다"(박형규 목사)는 한 선배의 회상은 좀처럼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1965년 서울대 정치학과 1학년 시절, 한일회담 반대 단식농성이 열렸다. 다른 학생들은 빵으로 허기를 채웠지만 그만은 4일동안 '진짜' 단식을 했다. 그후로 '독종' 소리를 들으며 학생운동에 발을 담궜다.

무기정학, 수배, 투옥…. 79년 고문을 받다가 10·26사태로 죽을 고비를 넘긴 그는 영국 유학길에 오른다. 88년 옥스퍼드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 귀국한 손 후보는 얼마간 교수로서의 삶을 산다.

93년 '손 교수'의 정계 데뷔는 주위 사람들에겐 큰 '이변'. 학생운동의 선봉에 섰던 그에게 정계 입문을 제안했던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기 때문. 그러나 그는 제자들에게 "내가 무엇이 되는지 보지 말고 어떤 일을 하는지 지켜봐달라"고 말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당시 경기 광명 보궐선거에 당선, 금배지를 달게 된 그는 14·15대 국회의원을 거쳐 96년에는 중진의원들도 부러워한다는 장관(보건복지부)직을 맡았고 2002년에는 경기도지사를 역임, 도민들의 신뢰를 얻었다.

2006년 6월 그는 또 한번 파격을 시도한다. 바로 100일간의 '민심대장정'. 정치적'쇼'라는목소리도 있었고 북핵사건이 터져 묻힌 부분도 없잖지만 그는 탄광에서, 농촌에서, 공장에서 민심의 삶을 목격했다. 그때의 기록이 담긴 수첩과 노트북 파일은 그에게 소중한 자산이 됐다.

그가 만든 이변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대선을 앞둔 올 3월, 정치생명을 걸고 탈당을 감행한 것. "한나라당을 위해 순교하기보다 국민을 위한 순교를 택하겠다"며 시베리아 벌판에 뛰쳐나온 그는 '제3지대'를 표방, 대통합민주신당에 합류한다.

불법선거 공방이 치열했던 9월 중순, 돌연 경선중단을 선언하며 칩거에 들어간 것은 가장 최근의 돌발상황. 당에서는 물론 캠프 측근들조차 예상치 못했던 이변이었다.

비록 경선엔 패했지만 그의 행보가 주목되는 건 바로 이같은 이변이 언제 어느때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경기도 시흥군(61세) △경기고·서울대 정치학과 △옥스퍼드대학원 정치학 박사 △인하대·서강대 정외과 교수 △14대~16대 국회의원 △보건복지부 장관(1996~1997) △경기도지사(2002~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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