亞, 신흥시장 넘어 세계경제 구세주로

머니투데이 엄성원 기자 | 2007.10.11 13:50

낙관론자들 "서브프라임 충격 완충역할 기대"

서브프라임 사태에 이은 신용위기로 세계 경제 둔화 우려가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 인도 등 이머징마켓의 거침없는 고속 성장은 계속되고 있다.

지금처럼 이머징마켓이 글로벌 경제의 하향세 속에서 견조한 움직임을 보인 적은 단 한차례도 없었다. 물론 이머징마켓이 지금처럼 세계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했던 적도 없다.

이 같은 이머징마켓의 안정성은 다가오는 침체의 시기 세계 경제에 긍정적이고 적절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세계 경기 낙관론자들은 이머징마켓의 지속적인 수요 증가가 세계 경제가 받게 될 서브프라임 충격을 반감시켜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낙관론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또 모두가 바란다고 해서 반드시 기대가 현실이 되는 것도 아니다.

◇ 이머징마켓 만능시대 오나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칼럼니스는 마틴 울프는 경기 낙관론이 두가지 전제에서 출발한다고 설명했다. 첫번째는 미국 국내 소비의 완만한 감소세, 두번째는 이머징마켓-특히 중국, 인도 경제가 세계 경기 둔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견조하다는 것이다.

낙관론자들은 두가지 전제 모두 맞아떨어질 경우, 다가올 세계 경기 둔화가, 국제경제의 소비 중심이 미국에서 이머징마켓으로 옮아가는 이른바 '글로벌 경제 불균형의 온화한 조정'의 실현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선 미국의 9월 경제지표는 첫번째 전제를 지지해준다. 지표상으로 볼 때 미국 경제가 올해 2%대 성장으로 선방한 뒤 내년 2.4% 성장으로 완연한 경기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긍정 지표에도 불구, 미국 경기에 대한 전망은 여전히 제각각이다. JP모건은 내년 2.8% 성장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제시한 반면 골드만삭스는 1.8% 성장의 후퇴론을 폈다.

미국 경기 전망에는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여파가 예상보다 심각할지 아닐지, 연준(FRB)이 금리를 추가 인하할지 안 할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진 장담할 수 없는 내용들이 너무 많다.

불확실한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첫번째 전제의 검증은 이쯤하고 두번째 전제로 넘어가보자.

싱가포르 DBS그룹은 미국 경기가 약세를 보인 이후 아시아 경제 성장은 오히려 가속화됐다고 지적했다.

또 골드만삭스는 이머징마켓 경제가 그 어느 때보다 외부 충격에 탄력적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주요국 금융시장은 얼어붙었지만 이 기간 아시아 증시는 이전 어느 때보다 강력한 회복성을 보여줬고 채권 스프레드 확대도 완만하게 진행됐다.

이 같은 이머징마켓 경제의 탄력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은 보다 의미심장하다.

외채/국내총생산(GDP) 비중이 낮아지고 경상수지 흑자가 이어지면서 이머징마켓의 외환보유고는 급격히 늘어났다.

한때 외환위기로 신음했던 남미 이머징마켓 국가들까지 채권국 반열에 올라섰을 정도다.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의 고공 행진 속에서도 남미 이머징마켓의 물가상승률은 오히려 안정됐고 채무 불이행 비율은 낮아졌다. 2002년 13%였던 채무 불이행 비율은 지난해 5.8%까지 떨어졌다.

◇ 미 경기 침체에 기댄 성장
최근 신용경색 초기 이머징마켓은 국제 자본의 피난처로 인식됐다. 국제 자본은 앞다투어 이머징마켓으로 몰려들었다.

이처럼 이머징마켓의 재정 확충은 미 금융시장 불안의 '미러 이미지'(거울에 비춰지는 것처럼 정반대로 움직이는 모습)다.

미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 질수록 역설적으로 이머징마켓의 재정은 불어난다.

이 같은 견해는 세계 경제의 돈 흐름이 '제로섬'이라는 데서 출발한다. 한쪽이 기울면 다른 한쪽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마찬가지로 무역수지에도 제로섬 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 이머징마켓이 꾸준히 경상수지 흑자 확대를 거듭해왔다면 누군가는 적자를 기록해야만 한다.

익히 알다시피 2000년대 무역수지 적자의 단골 손님은 미국이다. 대중무역에서 엄청난 적자를 입은 미국은 경기 회복세 중에서도 무역수지 개선을 달성하지 못했다.


부동산 투자 열풍이 불면서 국내 부채도 빠른 속도로 불어났다. 2000년대 들어 일반 가정을 중심으로 급증한 국내 부채는 집값 하락과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을 만나면서 국가 전체 누적 채무 구조를 완전히 선로에서 이탈시키는 계기가 됐다.

◇ 이머징마켓, 세계 경제 구세주가 돼라
미국의 적자 폭 확대는 이머징마켓이 미국발 충격에 원만하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줬다.

물론 이 같은 현상이 모든 이머징마켓에서 똑같이 나타나진 않았다.

터키나 중부유럽의 헝가리같은 경우,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에도 불구,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며 이렇다 할 구매력 강화를 달성하지 못했다. 이에 터키 헝가리 경제는 여전히 외부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들은 예외에 불과하다. 중국, 인도 등 주요 이머징마켓은 막대한 대미 무역 흑자를 자양분으로 경제 내실을 다졌다.

문제는 외부 충격에 쉽사리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 성장한 이머징마켓이 국제 경기 상승 반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느냐이다.

주요국의 무역 적자가 경제성장의 자양분이 된 만큼 이머징마켓이 반대로 안정적인 국내 소비를 기반으로 범세계적인 소비 부활을 이끌 수 있을까?

대답은 '아직까진 노(No)'이다.

세계은행은 지난해 2500억달러를 기록했던 중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올해 3800억달러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의 올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말 그대로 경이적이다. 경상수지 흑자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12%다. 잘 나가던 시절 일본이 기록했던 경상수지 흑자 대 GDP 비율은 약 6%였다.

세계은행은 하지만 이 같은 흑자 급증이 나머지 세계 경제의 GDP 증가에 미치는 영향은 0.75%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남아도는 중국의 외화가 나라 안에 그대로 고여 있다는 말이다.

좀 더 분석적인 관점에서 보면 미국의 소비 둔화를 되돌리기 위해선 미국을 제외한 주요국들의 세계 소비 증가가 보다 가속화돼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미국 경기 둔화에 따른 전세계 고용시장의 축소와 생산력 감소를 상쇄하기 위해선 세계 경제의 성장 속도가 더욱 빨라져야 한다. 하지만 이머징마켓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중국의 성장 속도는 아직 이런 수준엔 미치지 못한다.

◇ 경제 패권?..아직은 불안
일단 결론은 간단하다. 하지만 불안한 내용이다.

일부 예외가 있긴 하지만 이머징마켓은 미국 경기 둔화와 국제 신용 경색에 그 어느 때보다 견실하게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이머징마켓이 직면한 난제는 세계 경제 전체를 침체 위기에서 구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서부유럽은 물론 일본도 현재 세계 경기의 구원투수가 될 만큼의 여력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 소비가 감소하고 서부 유럽과 일본의 소비가 현 추세를 유지한다면 세계 경기는 낙관론이 바라는 것보다 크게 뒤쳐질 수밖에 없다.

이에 이머징마켓의 중심에 서 있는 중국의 역할이 보다 중요해진다.

그러나 중국의 국내 수요 증가는 수출 증가세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고속 성장은 온전히 해외 수요 증가에 힘입은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같은 구조적 특성으로 인해 중국은 세계 경기 침체의 경우,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울프는 공급이 국내 수요를 뛰어넘는 지금의 중국 경제가 세계 경기 둔화로 입게 될 피해가 재앙 수준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결국 중국은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국내 소비를 촉진하고 경상수지 흑자폭을 줄이는 근본적인 경제 정책 변화를 꾀해야 한다.

앞선 미국 경기 침체는 곧 전세계적인 불황으로 이어졌다. 중국은 지금 또 다른 세계 경제 패권국가로 발돋움하는 단계에 서 있다. 기존 패권국가인 미국에서 시작된 경기 둔화 우려에 중국이 어떤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베스트 클릭

  1. 1 "몸값 124조? 우리가 사줄게"…'반도체 제왕', 어쩌다 인수 매물이 됐나
  2. 2 [단독]울산 연금 92만원 받는데 진도는 43만원…지역별 불균형 심해
  3. 3 점점 사라지는 가을?…"동남아 온 듯" 더운 9월, 내년에도 푹푹 찐다
  4. 4 "주가 미지근? 지금 사두면 올라요"…증권가 '콕' 집은 종목들
  5. 5 '악마의 편집?'…노홍철 비즈니스석 교환 사건 자세히 뜯어보니[팩트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