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체제냐 미국체제냐" 눈치보면 늦어

워싱턴,서울=황국상 기자 | 2007.10.10 12:22

[기후가 기업을 바꾼다]<2-1>'온실가스 의무감축' 추세 속 달라지는 기업환경

편집자주 | 기후변화 시대의 기업에 '기후는 기회'다. 소비시장엔 온난화를 염려하는 친환경 소비자군이, 투자시장엔 기업의 단기이익보다는 이익의 지속가능성을 보는 투자자군이 부상하고 있다. 시장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일부 대기업들은 벌써 기후에서 기회를 잡고 있다. 머니투데이는 탄소정보공개, 포스트교토 등 달라지고 있는 기업 환경과 그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은 기업들의 사례를 5회에 걸쳐 전한다.

미국의 진용은 화려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을 비롯해 헨리 폴슨 재무장관, 카를로스 구티에레즈 상무장관 등 장관급만 6명이 동원됐다.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직접 나섰다.

지난달 27일부터 이틀 간 열린 '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 주요국 회의'. 이 자리엔 한국, 미국, 중국, 인도 등 17개국 장관급 이상 대표들이 모였다. 이들을 한 자리에 모은 건 부시 대통령이었다. 그는 말했다.

"온실가스 감축이 경제성장을 해하는 방식이 되어선 안 됩니다. '청정에너지 기금'을 조성해 기술을 중심으로 한 지구온난화 대응전략을 모색합시다."

미국은 중국과 함께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이다.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자 군사대국, 이른바 '패권국'이다.

이러한 미국이 주요산업국들이 다 함께 지구온난화 대응을 위한 새로운 전략을 만들자는 야심찬 제안을 내놓은 것이다. 이미 미국은 2001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온실가스 감축에 관한 국제협약인 교토의정서를 탈퇴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제 기업들은 더 이상 온실가스 저감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걸까? 기업, 경제 중심의 '포스트 교토' 체제가 만들어지는 걸까? 결론부터 말해 대답은 '노(NO)'다.
↑27일 헨리 폴슨 미국 재무장관이
'기후변화 주요국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황국상 기자

◇포스트교토 샅바싸움, 미국 '패(敗)'=교토의정서의 수호자로 자처하는 유럽연합(EU) 국가들의 반응은 당연히 냉랭했다. 독일 대표로 참가한 지그마르 가브리엘 환경장관은 "배출권 거래제도 등 시장 메커니즘을 통한 온실가스 저감방법이 이미 효과를 거두고 있는데 왜 굳이 (미국이) 청정에너지 기금을 도입하려드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중국, 인도 등 개발도상국 대표들도 미국의 제안에 시큰둥했다. 개도국은 교토체제 아래서도 청정개발체제(CDM)를 통해 최첨단 청정기술이 유입되는 등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눈 앞의 이익을 두고 불확실한 '청정에너지 기금'만 믿고 미국을 두둔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EU 중심국 중 하나인 프랑스가 두번째 17개 주요국 회의를 자국에서 개최하겠노라고 나섰다. 이렇게 되면 제2차 회의의 의제나 회의 내용을 미국의 당초 의도대로 끌고 가기엔 더욱 어려워진다.

국내 전문가들은 포스트교토 체제가 미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갈 것 같지는 않다고 조심스레 내다본다. '의무감축량 강제할당', '배출권 거래'라는 교토의정서 1차 이행기의 방식이 2012년 이후, 즉 1차 이행기가 끝난 후에도 존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지속가능성평가자문사인 에코프론티어의 여민주 선임연구원은 "교토 체제가 쉽사리 붕괴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주장하는 '자발적 감축목표'도 장기적으로 온실가스를 대폭 삭감해야 한다는 대전제 안에서 유의미한 것으로 완전한 의미에서의 '자발성'으로 이해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돌변'이 더 큰 위험변수= '경제 성장에 충격이 가지 않는 전략'을 내세우는 미국의 속내에 대해서도 국제사회는 의심하고 있다. 미국이 준비가 됐다고 판단하면 갑자기 '온실가스 의무감축량 수용'이라는 선언을 내놓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미 미국은 청정기술 개발에 180억 달러 이상을 쏟아부은 상태다.

한 정부 관계자는 "과거 미국의 행태를 봐도 '미국의 안이 반드시 기업에 부담이 적은 쪽'이라고 이해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오존층을 파괴하는 물질의 제한을 규정한 몬트리올 의정서에 줄곧 반대했던 미국이 자국의 기술 기반이 갖춰지자 마자 돌연 '강한 규제'로 돌아섰던 전례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경제국인 미국이 온실가스 의무감축을 받아들이면, 여기에 준비하지 않은 기업이 입을 타격은 예상보다 클 수 있다.

삼성그룹의 기후변화 전략을 구상하는 지구환경연구소 박찬우 책임연구원은 "기업에 규제보다 무서운 것은 앞으로의 불확실성"이라고 우려한다.

"기업활동에 있어서 예측가능성은 필수입니다. 최소한 40~50년을 내다봐야 하는 기후변화 대응전략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2012년 이후 우리나라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 감축목표는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면 기업 입장에서도 참 좋을텐데요."

그는 외국에서는 10여년 전부터 지구온난화 완화와 온실가스 배출 저감을 위한 논의가 본격화됐지만 우리 정부는 그동안 '상황을 지켜보자는 식'으로 일관해왔고, 기업들도 긴장을 푼 채 '손을 놓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한국정부의 모호함이 기업엔 더 고통"= 한국 정부는 미국이 주도한 이번 주요국 회의에서 지난 8월 내놓은 '기후변화 대응 신국가 전략'을 주로 소개했다. 그러나 한국이 '교토체제'와 '미국체제' 중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지 여전히 불명확하다.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은 회의 첫날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이 제안하는 온실가스 저감방안이 결코 약한 것이라고 이해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입장이 미국의 안을 지지하는 것이냐는 물음에는 "회담이 진행돼 봐야 알 것"이라고 얼버무렸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지구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는 큰 원칙은 동의하지만 우리 산업계에 충격이 덜 갈 수 있는 방안이 돼야 한다"는 모호한 원칙만 강조했다. 미래 리스크에 대비해야 하는 기업들에 이같은 모호함은 고통이다. 한 기업의 전략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확실히 노선을 정해주면 기업도 그만큼 충실하게 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기업에 부담을 줄 수 없다'라며 기후변화 협상에서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는 게 기업에게는 더욱 부담일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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