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대출 받아 일어서는 사람들

방글라데시=희망대장정팀  | 2007.10.09 08:55

[젊은 아시아, 빈곤을 넘어]<1-2>한국 세 젊은이의 그라민은행 체험기(하)

편집자주 | 2달러, 우리돈으로 약 1800원. 이 돈으로 아시아 인구 중 9억명이 하루를 삽니다. 21세기 이후 아시아 경제성장률은 연 평균6.3%로 다른 지역의 2배에 가깝습니다. 아시아는 과연 빈곤을 넘어설 수 있을까요? 그 답을 찾아 김이경, 윤여정, 주세운 등 세 젊은이가 지난 9월, 아시아 최빈국의 빈곤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80일 동안 이어질 이들의 희망대장정을 머니투데이가 전해드립니다.

(앞에서)다음날 아침, 우리는 실제로 그라민 멤버(대출자) 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센터를 방문했다. '센터'라지만 마을 멤버의 집 앞마당 한 귀퉁이에 간이로 의자와 책상을 놓은 것이 전부였다.

여기에 30여명의 여성들과 은행원이 둘러 앉아 대화하고 있었다. 은행원과 멤버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대출금을 조금씩 상환하고 일상생활의 고민을 나눈다고 한다. 우리가 들어서자 주민 한 명이 일어났다.

"하나, 모두 일어나세요." "둘, 경례."
↑대출금 상환을 위해 그라민멤버 그룹 리더들과
그라민 은행 직원이 정기회의를 하고 있다.

빈민들은 으레 어둡고 움츠러든 모습일 것이라고 상상했던 우리는 그들의 당당한 눈빛과 표정에 오히려 놀라고 말았다. 그들은 허름한 양철지붕 집 사이 진흙 밭을 맨발로 걸어 다니면서도, 깔끔하게 차려 입은 외부인을 오히려 위축되게 만드는 당당함을 지니고 있었다.

직원이 보여준 그라민의 대출신청서에는 담보를 적는 난이 없었다. 대신 집은 무슨 재료로 만들어졌는지, 식수는 어떻게 구해서 먹는지, 집안에 의자는 몇 개나 있는지 등 신청자의 생활 형편을 물어보는 질문이 4면 가득 채워져 있었다.

대출을 원하는 여성이 그라민은행에 문의하면 은행원이 직접 신청자의 집을 방문해 신청서를 작성해준다. 문맹이 대부분인 마을 사람들을 배려한 조치다.

신청서 마지막 장은 은행이 제시하는 16가지 결심을 충실히 이행할 것을 묻는다. 16가지 결심이란 깨끗한 집으로 보수하기, 채소 심기, 깨끗한 물 마시기, 아이들 학교 보내기, 가족 계획 같은 것들이다.

그라민 멤버인 마로티(34)씨는 "그라민은행에서 제시한 16가지 결심에 대해서 마을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일상생활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라민 멤버인 자신의 어머니, 도이보티(55)씨의 권유로 그라민 멤버가 되었다. 마로티씨는 집에서 소쿠리 만드는 수공업을 하고 있다.

그는 "어머니가 그라민은행을 만나기 전에는 하루 세끼 먹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자신은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동생들은 학교를 졸업하여 좋은 일자리를 구했다"며 자랑스러워 했다.
↑그라민멤버 자하나라(오른쪽)씨의
딸 모쉬미(왼쪽)양은 그라민장학생이다.

그라민멤버, 자하나라(45)씨의 딸 모쉬미(14)양은 장학금 수혜자다. 모쉬미양은 올해 매년 마을에서 12명에게만 주는 그라민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1년에 3000다카, 우리돈 4만원 정도의 돈을 받아 학업에 필요한 책, 학용품 등 물품을 사는 데 쓴다.

모쉬미의 꿈은 의사가 되는 것이다. 자하나라씨는 "딸이 원하는 꿈을 이루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며 대견스러워 했다.

탐방 마지막 날 만난 조비타(52)씨는 그라민은행에서 '무이자' 대출 지원을 받고 있는 수혜자였다. 그가 받은 극빈자 대출(Beggar loan)은 마이크로크레디트(무담보소액대출)의 이자조차 갚기 힘든 극빈층을 위해 그라민은행이 2003년 새롭게 시작한 프로그램이다.

다른 그라민 멤버들처럼 생활이 향상되었을까 기대를 품고 조비타씨 댁을 찾아갔다. 그러나 우리는 차마 카메라를 꺼내들 수 없었다. 궁핍한 그의 생활에 함께 동행했던 은행원들조차 말을 잊을 정도였다.


조비타씨는 그라민 지점 앞에서 견과류 따위를 팔아 하루에 20~30다카, 270~400원을 번다. 이 정도 수입으로는 음식을 구할 길이 없어 이웃집에 허드렛일을 도와주고 남은 음식을 얻어먹는다. 함께 사는 딸은 지불하지 못한 지참금 때문에 남편에게 이혼을 당해 친정으로 쫓겨왔다.

그에게 거처를 물었을 때 통역관은 '집(house)'가 아니라 '작은 쉼터(tiny shelter)'라고 통역해줬다. 잠시 후 거처를 확인했을 때 이 두 단어의 차이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웃이 소유한 간이 외양간에 한 켠에 마련된 그의 '쉼터'는 나무토막으로 얼기설기 엮은 단상에 볏집으로 덮혀진 움막 같은 곳이었다. 인터뷰 도중, 우리는 움막에 배설을 하는 소를 보며 놀랐지만 조비따씨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눈물을 애써 참았다. 그가 겪어내고 있는 삶 앞에서 우는 것조차 미안했다.

마이크로크레디트는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꿨지만 빈곤은 여전히 존재한다. 최소한의 자본도 가지지 못한 극빈층에게는 이 또한 버거운 선택이다.

마을에서 만난 대학생 도히드(21)군은 "마이크로크레디트를 통해 가난에서 벗어난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며 "마이크로크레디트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3박4일 간 우리와 동행했던 지점장, 나연씨는 자신의 일을 '명예로운 직업(honorable job)'이라 표현했다. 우리가 만났던 모든 그라민 직원들이 그렇게 말했다.

처음에 우리는 그들의 말이 겉치레 말이려니 하고 흘려 들었다. 그러나 나연씨가 편안한 차림으로 마을을 거닐 때 마을 사람들이 건네던 진심 어린 미소를 보며,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희망대장정팀의 김이경(왼쪽)씨가
500타카를 계좌에 예치하고 그라민
멤버가 됐다.

그들이 나누던 인사에는 우리가 보통 아는 은행원과 대출자의 관계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따뜻함이 들어 있었다.

한 시골대학 교수의 머리에서 마이크로크레디트라는 아이디어가 탄생한지 30주년. 우리가 둘러본 현장에선 그라민의 도움으로 학교를 다니고, 높은 의식을 갖게 된 젊은 세대가 탄생하고 있었다.

30년 전에는 한 사람의 꿈일 뿐이었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이라는 아이디어는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한국의 세 젊은이, 80일간 아시아 대장정
"하루 1弗로 사는 빈곤 퇴치 희망을 찾아"
이메일 한 통으로 시작된 희망대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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