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뷰]노무현 대통령다웠다

머니투데이 박형기 국제부장 | 2007.10.05 11:31
"하루 더 있다 가시지요"
"의전실과 경호실과 의론을 해봐야 합니다."
"대통령이 결심 못 하십니까. 대통령이 결심하시면 되잖습니까"
"큰 것은 제가 결정하지만 작은 것은 못합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백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하루 더 묶고 가라는 돌출 발언과 이를 침착하고도 재치 있게 넘긴 노대통령의 대응이었다.

김위원장은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와 거리가 먼 지도자다. 국가의 이름을 걸고 회담을 하는 자리에서 자기 맘대로 회담 연장을 제의한 것은 세계 외교사에 유래가 없는 일이다. 비례도 이런 비례가 없다. 무한 권력을 행사하는 김정일 위원장만이 할 수 있는 돌출 행동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방어는 한 수 위였다. 일단 “나보다 쎈 데가 두 곳이 있는데, 의전실 경호실과 의론을 해봐야 한다”면서 예봉을 피해갔다.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은 힐난하는 투로 대통령이 그 만한 것 하나 결정하지 못하느냐는 취지로 다시 한번 노대통령을 압박했다.

노대통령은 순간 큰 것은 내가 결정하지만 작은 것은 그렇지 못하다고 응수했다. 그러자 북측 배석자가 끼어들었고, 김위원장은 회담 말미에 결국 회담 연장 요청을 철회했다. 노대통령은 자칫하면 어색해 질 수 있는 자리를 부드럽게 넘겼고, 김위원장이 제의를 철회하게 해 압승을 거뒀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 해먹기 어렵다”는 등 수 많은 충격화법으로 스스로 대통령의 격을 떨어트린 지난날의 잘못을 만회하기에 충분한 대목이었다.

이번 회담의 성과도 적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이행이 중요하지만 경제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합의를 이끌어 냈다.

일부에서는 5개월 밖에 남지 않은 정권이 얼마나 많은 것을 실행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 대기업 총수들은 대부분 마지못해 방북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특히 대기업들은 기자들의 채근에 못 이겨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논평을 내놓는 등 이번 정상회담에 시종일관 방관자적 태도를 보였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줄기 희망을 보았을 것이다. 한국 제조업의 기지 역할을 했던 중국은 최근 3년 사이 임금이 30~50% 급등했다. 수출 위주의 경제 성장을 추구했던 중국 정부가 대미의존도가 너무 높아지자 수출에서 내수로 정책의 중심을 옮김에 따라 중국의 임금은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 몰려간 것은 순전히 저임금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메리트가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대기업이야 거대 자본과 브랜드 파워가 있기 때문에 중국의 임금인상 한파를 피부로 덜 느끼지만 자본력과 브랜드 파워가 부족한 중소기업은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들 중소기업의 돌파구는 북한 이외에 없다.

한나라당이 다음 정권을 잡더라도 중국을 대체하는 저임금 생산 기지로서의 북한에 대한 매력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에 남북경협 확대라는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남북경협이 더욱 수월해 질 수도 있다. 진보적인 노대통령이 FTA를 추진함으로써 진보진영은 비수를 맞은 꼴이 됐지만 FTA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만약 한나라당이 대북 정책의 이니셔티브를 쥔다면 보수진영에 비수를 꽂는 일이 되겠지만 소모적인 남남 갈등을 상대적으로 쉽게 극복할 수 있다.

이외에 남북경협은 북한의 중국 식민지화를 막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확대되어야 한다. 북중 교역규모는 급증하고 있는데 비해 남북 교역규모는 더디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00년 중국의 대북 교역액은 4억8800만 달러로 우리나라의 대북 교역액(4억2500만 달러)과 비슷했다. 하지만 2005년 북중 교역액은 13억8000만 달러로 늘어난 반면 우리나라는 6억9700만 달러에 그쳤다. 5년 만에 배가량 차이가 벌어진 셈이다.

중국은 북한의 최대 무역국으로 올라섰다. 북한의 전체 대외 교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38.9%로 19.6% 수준인 우리나라의 교역비중에 비해 배가량 높다. 전문가들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 중국의 대북 지원물자를 합하면 북한의 대중 교역 의존도는 40%를 훨씬 넘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에너지 기갈이 들려 있는 중국은 북한의 지하자원을 싹쓸이 하다시피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의 유일한 유전으로 추정되는 압록강 하구의 유전 탐사권을 갖고 있다. 북한이 중국의 경제 식민지로 전락하기 이전에 남한의 자본이 북한에 침투해야 한다.

경제 문제에 집중한 노무현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상당한 성과와 국가원수로서 부족함이 없는 내공을 보여주었다. 그 덕분인지 한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3일간의 정상회담 기간 노대통령의 지지율이 9% 급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무현, 이번에는 대통령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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