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패키지'로 7500억불 PF오일 캐라

마니바(바레인)·두바이(UAE)= 권화순 기자 | 2007.10.02 10:38

'은행IB' 해외로 뛴다<4> 제2의 홍콩으로 떠오르는 중동

'국내 건설사 수주 붐-수출입銀 대외채무보증'과 연계
전문인력 확보후 적극 공략땐 막강한 시너지 창출 기대

거칠 것 없는 사막 한가운데 바닷물을 끌어들이는 긴 파이프라인과 가스 터빈에 연결된 거대한 굴뚝. 지난달 11일 바레인 수도 마니바에서 20여분쯤 외곽으로 빠져나가자 히드 담수발전소가 위용을 드러냈다. 바레인 최대 민영화 사업인 300㎿급 발전소에서 생산된 식수는 바레인 전역에 공급된다.

우리은행이 이 발전소 리파이낸싱에 참여했다. 설비가 완공돼 초기 투자 리스크가 없어진 탓에 수익률이 낮아졌지만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포석이다. 중동지역의 거대 플랜트사업에 본격 뛰어들 수 있는 발판이 된 셈이다.

↑바레인 히드 담수발전소


◇'포스트 오일' 대비=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오만, 카타르, 예멘,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중동지역에선 대규모 프로젝트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 담수발전, 석유화학, 에너지 개발 등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은 앞으로 5년간 7500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이들 개발사업의 원동력은 역시 '오일머니'. 2003년 하반기부터 기름값이 상승하면서 '오일머니'가 크게 불어나자 중동 각국은 식수, 도로, 전기 등 각종 인프라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9·11테러사태 여파로 오일머니의 해외운용이 제약을 받자 중동지역에 남는 몫이 커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 현지에서는 "1조5000억달러의 오일머니가 떠돌고 있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로 넘이 넘쳐난다.

아울러 원유 고갈에 대한 위기감도 작용했다. 김현수 우리은행 바레인 지점장은 "오일머니가 풍부할 때 프로젝트를 끝내자는 분위기 속에 각종 사업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건설업체들은 특수를 누리고 있다. 세계 플랜트사업에서 중동지역이 차지하는 비율은 절반에 육박한다. 70년대 이후 중동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활약도 눈부시다. 하청업체로 진출했지만 지금은 원청업체로 지위가 상승했다.

두산중공업은 두바이 자발알리에 28억5000만달러 규모의 담수발전소를 짓고 있고, 현대건설은 쿠웨이트에서 100억달러 규모의 담수발전 플랜트 공사를 수주했다. 올 상반기 국내 기업이 중동에서 따낸 수주액은 161억달러에 이른다.

권탄걸 현대건설 전 두바이 법인장은 "이란이 수십억 달러짜리 공사를 계획하고 있고 두바이와 아부다비, 쿠웨이트, 카타르 등에서 물량이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커지는 PF시장=중동 PF시장은 현재 유럽계 BNP파리바, 도이치은행, HSBC와 일본 미즈호·미쓰비시은행 등이 장악하고 있다. 중동 PF의 주요 사업주인 미쓰비시, 스미토모, 마루베니, 수에즈와 탄탄한 네트워크 덕분이며, 이들의 시장점유율은 70%에 달한다. 영국 식민지였던 탓에 유럽계 은행이 두각을 나타내는 반면 미국계 은행은 문화적인 마찰로 진출이 더디다.
↑두바이 국제금융센터(DIFC)
‘금융자유지대’로 비과세, 외국인 100% 지분 소유권, 이익금 무제한 본국 송금 등의 혜택이 부여된다. 수출입은행이 입주했다.


 이태형 수출입은행 두바이사무소 부부장은 "홍콩이 포화상태에 도달했다고 판단한 세계 유수 은행이 중동을 제2의 홍콩으로 삼고 적극 공략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은행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현재 바레인에 우리은행과 외환은행 지점이 있고, 두바이에는 수출입은행과 외환은행 사무소가 진출한 정도다. 외환은행은 현지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보다 중동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을 지원하고 있다.

 투자규모도 유럽이나 일본계 투자은행(IB)에는 크게 못미친다. 산업은행이 오만의 석유화학공장과 사우디아라비아 담수발전사업에 1억달러, 신한은행은 사우디 담수발전사업에 5000만달러를 각각 참여했다.

 국내 은행들은 중동 PF시장 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우리은행은 2005년 이후 바레인 지점을 거점으로 PF시장을 공략해 현재까지 총 3억2800만달러를 투자했다. 특히 사우디 4대 민영화 프로젝트인 슈와이바, 슈콰이크, 마라픽, 라스알주르 담수발전에 참여해 보폭을 넓혀가는 중이다.

◇중동 공략 어떻게=우리은행이 중동 PF시장 진출을 위해 외국계 은행이나 현지 '디벨로퍼'와의 인맥 형성에 공을 들였다. IB간 경쟁이 뜨겁다보니 인적 네트워크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곤 하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이 LG상사가 디벨로퍼로 참여한 오만의 석유화학공장 신설에 참여 직전까지 간 데는 김현수 바레인 지점장과 LG상사 현지 임원의 친분이 힘이 됐다. 이 프로젝트 참여는 투자규모 조정 과정에서 성사되지 못했지만 중동 PF사업 추진에 밑거름이 됐다는 후문이다.

실제 우리은행은 이후 사우디의 라스알주르 담수발전 프로젝트에 단순 대출은행이 아니라 핵심 주관사로 참여하게 됐다. 그만큼 인지도가 높아졌다는 방증이다. 2005년 폐쇄 직전에 있던 바레인 지점에 부임한 김 지점장은 "바레인을 중동의 거점으로 삼고 핵심 주관사로 참여해 PF시장에서 우리은행의 인지도를 높여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후발주자인 국내 은행이 해외 유수 은행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금융패키지' 성안이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이를테면 중동에서 입지를 굳힌 국내 건설사가 원청자가 되고, 시중은행이 대출하면 수출입은행이 보증하는 방식이다.

 통상 대형 프로젝트는 사업주, 시공사, 상업금융, 정책금융, 중동 현지은행이 패키지로 참여한다. 바레인의 히드 담수발전소가 그 대표적 예다. 이 프로젝트는 스미토모상사 주관 아래 일본 수출입은행인 제이빅과 상업은행 미즈호가 공동 참여했다.

 유명재 LG상사 중동본부장은 "외국계 은행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자칫 수수료 등에서 큰 부담을 안을 수 있는데 국내 은행들이 참여하게 된다면 윈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수출입은행의 대외채무보증이 법적으로 보장되면서 '금융패키지' 저변은 확보된 상태다. 프로젝트 규모가 점점 커지는 추세여서 수출입은행의 보증시 장기 프로젝트에 따른 국내 기업들의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하지만 국내 은행들이 외국계 IB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아직 투자규모가 작아 큰 프로젝트를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유럽계 등이 선호되는 것이다.

20년 이상 장기 투자 리스크를 정밀히 관리하고, 중동지역 PF도 꿰뚫어 볼 수 있는 전문인력 확보도 시급한 과제다. 이태영 부부장은 "건설사, 시중은행, 수출입은행이 긴밀히 협력해 시너지를 발휘하면 앞으로 중동 PF시장에서 막강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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