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iN]은퇴 준비, 돈이 전부가 아니에요

머니투데이 황숙혜 기자 | 2007.09.19 12:46
# 50대 후반, 평생 직장으로 생각하고 다니던 공기업에서 퇴직한 A 씨. 일에서 손을 놓고 2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몸은 쇠약해지고, 백발에 가까울 정도로 흰머리가 늘어났다.

은퇴와 함께 업무 스트레스와 잦은 술자리, 만성 피로에서 벗어났지만 외모는 오히려 부쩍 늙어버린 기분이다.

요즘 같아서는 하루가 1년 같다는 A 씨. 평균 수명만큼 산다고 가정하면 20년 가량의 인생 황혼기를 꾸려가야 하는데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하다.

회사를 떠난 직후에는 저녁이나 술자리, 주말 산행에 불러주는 직장 후배와 동료들이 있어 적적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인생 잘 못 살지 않았다는 생각에 스스로 흐뭇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들의 '초대'는 1년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바쁜 업무에 쫓겨 뒤로 미루기만 했던 독서도 하고 청계천에서 산책도 하고 아내를 도와 집안일도 거들겠노라며 나름대로 자유롭고 낭만적인 은퇴 생활을 꿈꾸기도 했다. 적지 않은 퇴직금도 받았고, 평소 남달리 은퇴 이후의 경제적인 문제에 대비를 해 둔 터라 아쉬울 것 없는 노후가 펼쳐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불거졌다. 한 시간 가량의 산책과 독서, 조간 신문에서 읽을거리를 찾는 일까지 모두 끝내도 시계바늘은 정오를 넘기지 않는다.

집안일도 소일거리로 마땅치 않기는 마찬가지. 평소 해 본 적이 없었으니 손에 익지 않아 엉성하기만 하다.

온종일 아내와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눈을 마주치는 일도 불편하다. 30년 가까이 가장으로서 열심히 일한 후 당당하게 맞은 은퇴지만 온종일 집안에서 시간을 죽이자니 뭔가 잘못이라도 한 듯 눈치가 보일 지경이다.

# 작지만 탄탄한 개인 사업체에 부동산 임대업으로 수 십억 원의 자산을 일군 B씨. 은행에서나 증권사에서나 깍듯이 모시는 VIP 고객이다.

평생 큰 재산을 모았고,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흐트러짐 없는 외모를 과시하는 B씨의 고민거리는 다름아닌 두 아들이다.

대학 졸업 후 제대로 직장 생활을 해 본 경험이 없는 큰 아들은 성공적인 사업가를 꿈꾸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앞길이 어둡기만 하다. 불혹을 넘긴 나이지만 안정적인 사업 기반을 닦지 못했을 뿐 아니라 걸핏하면 B씨에게 사업자금이 필요하다며 손을 벌린다.

큰 아들이 손을 댔다가 접은 사업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인터넷 게임 업체, 시행사에 이르기까지 업종에 제한이 없었다. 큰 아들에게 기대를 접은 지도 오래다. 아버지가 아니라 성공한 사업가의 눈으로 볼 때 무엇보다 한 분야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의지와 목표가 없어 보인다. 될 성 싶지 않은 사업에 자금을 대 달라는 아들과 실랑이를 하는 것도 이제 기력이 달린다.

그에 반해 안정적인 직장에서 비교적 성실하게 일하는 둘째 아들. 적어도 헛된 욕망을 갖지 않는다는 점은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둘째 아들의 문제는 분수에 맞지 않는 씀씀이에 있다.


외벌이로 네 식구가 살아가려면 허리띠를 힘껏 조여도 빠듯할 것 같은데 수입에 걸맞지 않은 고급차에 웬만한 샐러리맨 초봉 수준의 사교육비가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이유는 다르지만 때때로 B씨에게 손을 벌리기는 작은 아들도 마찬가지다. 40평대 아파트로 집을 옮길 때 뭉칫돈을 받아갔던 둘째 아들은 생활이 쪼들릴 때마다 B씨의 '원조'를 바라는 눈치다.

두 아들을 남 부러울 것 없이, 부족한 것 없이 키운 것이 오히려 독이 된 것 같다는 B 씨. 어릴 때부터 아껴야 할 필요성을 느끼거나 소득과 지출에 대한 교육을 받은 일이 없었으니 가계 재정을 꾸리고, 탄탄하게 장기적인 재무 계획을 세우는 데 생각이 못 미칠 수밖에 없다. 경기와 경제정책, 유동성 흐름을 읽어내지 못하니 투자한 만큼 사업이 번창하기를 기대하기 힘들다.

# 퇴직을 앞둔 40, 50대 직장인 뿐 아니라 20대 초반의 대학생들까지 노후대비 재테크에 높은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 금융회사 PB의 얘기다.

이들이 찾는 솔루션은 십중팔구 은퇴 이후 경제적으로 넉넉한 생활을 하기 위한 대비책이다. 고정적인 수입 없이 살아가야 할 20~30년을 위해 당장의 소비를 절제하며 연금펀드나 보험 상품에다 노후자금을 불린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자산관리를 실행에 옮기는 것은 분명 장려할 일이다. 하지만 실제 은퇴를 맞은 고객을 자주 접하는 은행이나 보험사 PB들은 한결같이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은퇴 이후 '무엇을 하며 여생을 보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하는 문제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경제적으로 부딪혀야 하는 현실 뿐 아니라 은퇴 이후 생활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짜고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고 재무 컨설턴트는 권고했다.

희망재무설계의 임형노 컨설턴트는 "노후에 필요한 생활 자금 뿐 아니라 은퇴 이후 원하는 생활이 어떤 것인지 폭넓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며 "취미나 관심사가 은퇴 이후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은퇴 전부터 미리 준비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우자와 함께 하는 여가 생활이나 자녀와의 친밀한 대화, 직장 업무 만큼 몰입할 수 있는 취미는 하루아침에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은퇴 준비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

국내 한 생명보험사의 지점장은 자녀 경제교육도 은퇴 준비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노후를 위한 여윳돈이 없는 경우는 물론이고 충분한 자금을 마련해 두어도 자녀가 예상밖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밖에 행복한 노후를 위해 빼놓을 수 없는 문제가 건강이다. 건강을 잃으면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부딪힐 수 있을 뿐 아니라 삶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건강한 노후를 위해 평소 건강을 지키는 일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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