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함께 씻겨내려간 현대차의 '근심'

장시복 기자 | 2007.09.06 18:43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던 6일 오후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입을 다문 채 서울고등법원에 모습을 드러냈다.

실형을 선고받을 경우 바로 구치소행이 될 수 있었기에 그의 축처진 어깨는 흐린 날씨 속에서 더욱 무거워 보였다. 403호 법정에 들어선 그는 두손을 모은 채 방청석에 앉아 어떻게 될지 모를 불안감에 젖어있었다.

'대형 사건'을 감당하기에는 다소 작아 보이는 403호 법정. 이곳은 현대차 직원들과 취재진들로 가득 붐벼 마치 러시아워 시간대의 지하철을 방불케 했다. 법원과 현대차 소속의 경호원들도 혹시나 벌어질지도 모를 사태에 대비, 더욱 감시의 눈길을 놓지 않았다. 재판 시간이 가까워지자 정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을 포함해 현대기아차 주요 임원들이 속속 방청석에 자리를 잡았다.

시간에 맞춰 입정한 서울고법 형사10부 이재홍 수석부장판사는 피고인석으로 자리를 옮긴 정 회장에게 말을 걸었다.

"피고인 기분 어떠세요. 착잡하시죠? 저도 착잡합니다."

물음에는 재판부가 그동안 사건을 심리하며 했던 고민이 그대로 묻어나 있었다.

택시기사 등 주변의 서민들을 직접 만나보며 의견를 물어보기도 했다는 재판장은 정 회장의 '실형'과 '집행유예'를 주장하는 양측의 입장을 각각 소개하고 그 합당성을 인정하기도 했다.


방청객들은 도대체 재판장의 의중이 무엇일까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어 재판장은 "한명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 회장의 실형선고로) 우리나라 경제를 위험에 빠트리게 하는 것이 꺼려졌다"고 말하며 집행유예 쪽으로 가닥을 잡아갔다.

취재진들이 앞다투어 휴대 전화기를 들고 '1보'를 전하기 시작했다. 당사자인 정 회장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평정심을 유지했다.

다만 법원은 "아무리 그래도 집행유예 만으로는 무엇인가 부족하다고 느껴져 사회봉사를 명령하게 됐다"고 말하며 "여수박람회 유치 활동이 많이 참고가 됐으며 사회 기여를 위해 노력을 다해달라"고 정 회장에게 재차 당부했다. 정 회장은 연신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며 적극적인 협조 자세를 나타냈다.

30분동안의 '인생 롤러코스터'를 탄 정 회장은 재판부가 퇴정한 뒤 사회봉사명령서를 직접 교부받고 자신의 차량으로 향했다. 쏟아지는 취재진의 질문 속에서도 그는 앞만 보며 걸어갔다.

가을비와 함께 정 회장, 그리고 현대차의 오랜 근심이 씻겨 내려간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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