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공무원 늘리며 규제완화 한다고?

머니투데이 홍찬선 기자 | 2007.09.06 11:16

소가 웃고 소금이 쉴 노릇이다

살다보면 황당한 일이 적지 않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길 정도로 정신 나간 사람은 없다. 하지만 지내놓고 보면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을 수없이 저지르면서 사는 게 인생이다. 부부 싸움 하면서 입에 담아서는 안 될 얘기를 한다든가, 술을 너무 마시고 하지 말아야 할 주정을 한다든가, 직장 동료들에게 심각한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을 한다든가….

사람이 합리적인 ‘이성적 동물’이라면 이런 황당한 일을 하지 않고 살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이성적’이기에 앞서 감정의 ‘동물’인 탓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평생 가슴에 한을 품고 산다.

참여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규제완화 정책도 우리를 황당하게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8월에 ‘민관 합동 규제개혁기획단’을 설치했다. 1998년에 대통령 직속으로 규제개혁위원회가 만들어져 있었으나 ‘대한민국은 규제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 규제를 확실히 철폐하거나 완화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참여정부 출범 이후 규제는 오히려 늘어났다. 감사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신설되거나 강화된 규제수가 1102건으로 폐지되거나 완화된 규제 수(468건)보다 634건이나 많았다. 규제가 줄어도 시원찮을 판에 시계바늘이 거꾸로 돌아간 셈이다.
게다가 규제개혁위원회는 규제 신설을 억제하기 위해 행정규제법에 규정된 규제 등록 의무, 규제 일몰제, 규제 영향분석 등의 제도를 부실하게 운영해 오히려 규제를 늘리는 결과를 낳았다. 규제 일몰제에 따라 모든 규제에 존속기한을 설정해야 함에도 규제개혁위원회가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심사한 6567건의 규제 가운데 존속기한이 설정된 규제는 전체의 0.6%인 39건에 불과한 식이다.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는 기업과 사업체의 변화 속도가 시속 160km인 반면 정부와 관료조직은 40km라고 했다. 학교(16km)와 정치(4km)보다는 빠르지만 시민단체(144km)보다는 훨씬 느리다. 빛의 속도로 변하는 21세기에 굼벵이처럼 굼뜬 정부와 관료조직이 갈길 바쁜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으니 한국의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규제는 당하는 사람이 보기엔 귀찮고 발목 잡는 것이지만 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해야 하는 밥값이다. 교육인적자원부 공무원들은 자신들이 없으면 한국의 교육이 무너진다고 걱정하고(정말 소금이 쉴 노릇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공무원들은 그들이 있어야 공정거래가 지켜진다고 확신한다. 환경부 공무원들은 자신들이 없으면 대한민국 전국토가 오염과 난개발로 황폐화될 것이라고 믿으며, 재경부와 금감위 공무원들은 자신들이 있어야 금융질서가 건전하게 유지된다고 여긴다.


규제를 확실히 완화한다면서 제를 만들고 집행하는 공무원 수를 늘리는 것은 백년하청(百年河淸)이다. 그런데도 노무현 정부 들어 공무원 수는 증가하고 있다. 장관급 자리만 해도 참여정부 초기 33개에서 현재는 40개로 7개나 늘었다. 중앙 공무원수도 57만6223명에서 60만4091명으로 4.8% 증가했다. 지자체 공무원을 포함한 전체 공무원수는 88만5164명에서 95만1141명으로 7.5% 늘었다.

행정자치부는 얼마 전에 전국 2166개 동사무소 명칭을 9월1일부터 주민센터로 바꾼다고 밝혔다. 대치동을 대치동 주민센터로 한다는 것이다. 지난 7월부터 동사무소가 복지·문화·고용·생활체육 등 주민생활서비스를 주민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통합서비스기관으로 전환된데 따른 것이란 게 행자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동사무소 기능이 바뀌었다면 규모를 줄일 일이지 이름을 바꿔 존속시킨다는 것은 어부성설이다. 이름만 바뀌는 게 아니라 규모도 오히려 커지고 있다. 요즘 동사무소 건물을 보면 그 화려함에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모두 국민들의 피 같은 세금으로 일종의 부동산 투기를 하는 셈이다.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 국민들의 경제활동을 보다 자유롭게 해주려면 공무원 수를 줄여야 한다. 자리를 지키며 밥값을 해야 하는 공무원이 늘어나는 한 규제 완화는 밑 빠진 독에 물 채우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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