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밑바닥 탈출, 동력은 의지와 리더"

강원도=이경숙 기자 | 2007.08.29 10:18

[쿨머니,사회적벤처를 찾아서]<3>노동자생산협동조합 강원임업

금방이라도 짙푸른 등허리를 펴고 일어설 듯 힘찬 기세, 태백산맥이다. ㈜강원임업의 동업자 9명에게 이것은 '푸른 젖줄'이다. 이들은 나무를 키워 산을 살림으로써 자신과 가족을 살렸다.

전국 509개 자활공동체에서 강원임업은 전설적 성공사례로 꼽힌다. 정부로부터 일당 3만2000원을 받던 공공근로자들이 매출 5억여원, 자본금 1억5000만원짜리 기업의 어엿한 주인이 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 월급은 150여만원으로, 동종업계 최고 수준이다.

인력도 최고 수준이다. 직원 중 3명이 산림기사 1급을, 6명이 산림기능사 자격을 땄다. 특히, 산림기사 자격은 임학 전공자들도 몇번씩 떨어지는 어려운 시험이다. 정부의 지원을 받던 취약계층이 이 모든 일을 해냈다.

◇"목구멍이 성공 비결"= "비결요? 생존이죠, 생존. 네 식구 목구멍이 걸려 있으면 안 할 수가 없어요. 최후의 희망인데." 서기원(41, 사진) 강원임업 대표는 '생존'이라는 단어를 힘주어 말했다.

한림대 경영학과를 나와 가평에서 제일 큰 입시학원을 운영하던 그는 1997년 외환위기 때 학원 문을 닫았다. 불황으로 학원생이 급감한 탓이었다. 그는 10개월여 동안 백수로 지내다가 결국 부인, 두 아이와 함께 태백으로 옮겨왔다.

"1998년 3월 17일이었죠. 울면서 왔어요. 광부라도 해서 돈을 모아야겠다고 결심했는데, 면접에서 떨어졌어요. 광산이 없어지던 때라 광부도 '빽'이 있어야 할 수 있었는데, 그런 걸 몰랐던 겁니다."

그는 당시 일어난 일을 죄다 사진으로 찍은 듯 날짜까지 기억했다. 그만큼 상황이 절박했다. 사정은 강원임업의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4명은 폐광광부 출신이었고, 나머지는 청년실업자였다. 다른 길이 없었다.

처음에 이들은 정부 지원을 받은 '자활영림단'으로 출발했다. 태백자활후견기관의 원응호 관장(당시 국장)이 개인적으로 꿔준 돈 1500만원이 종잣돈이었다. 이들은 산림청의 숲 가꾸기 용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국유림 사업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2002년 태풍과 잦은 비, 폭설로 일거리가 끊기자 수입도 끊겼고 생활고도 높아졌다. 몇몇 사람은 자활영림단을 떠났다.

남은 이들은 결단을 내렸다. 민유림사업을 하는 주식회사를 별도로 설립하기 위해 다 함께 연대보증으로 대출을 받아 자본금을 마련한 것이다. 강원임업은 2002년 10월, 직원들이 회사 자본을 공유하는 노동자 생산협동조합으로 새출발했다.

한국의 자활공동체들은 임금, 경영을 정부로부터 지원 받아 출발했다가 3년이 지나면 별도 법인으로 자립해야 한다. 취약계층으로 구성된 공동체로선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 5년 동안 온갖 우여곡절 속에서 회사를 이끌어온 서 대표는 '의지'와 '리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의지를 버리지 마세요. 저는 옛날 생각을 많이 해요. 더이상 떨어질 곳이 없었던 시절을 생각하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어요. 리더를 찾으세요. 없으면 내부에서 키워야 합니다. 자활공동체에도 기업체처럼 반드시 리더가 필요합니다."

◇사회적기업 위한 장기투자자본 필요= 지금 서 대표와 강원임업은 새로운 위기에 부닥쳤다.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지계법)' 개정으로 현재 경영구조를 유지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강원임업은 국유림을 관리하는 '영림단'과 민유림을 관리하는 '주식회사' 두개 사업체로 구성된다. 이중 주식회사쪽은 전 직원이 4대 보험의 적용을 받는 정규직이다.

반면, 다른 산림업체들은 일거리가 있을 때만 일용직으로 인력을 충당한다. 이들은 인건비를 아끼는 만큼 이익을 얻는다. 그런 점에서 전 직원이 정규직이자 주주인 강원임업의 고용구조는 임업계에서 매우 혁신적이다.

따라서 일시적 적자는 불가피하다. 강원임업은 일거리가 없을 때에도 임금을 지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정된 지계법은 적자기업엔 사업 입찰 자격을 주지 않는다. 그 탓에 강원임업은 8월 중순 실시된 강원도의 민유림 사업 입찰에 참여하지 못했다.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제정돼 취약계층을 고용하는 사회적기업을 지원한다고 하지만 법인세 감면 같은 지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처럼 지계법 등 다른 법의 영향을 받는 곳을 위해 다른 관련 법규정도 바꿔야 합니다."

국내에선 자활공동체 토대 사회적기업의 원조로 꼽히지만, 강원임업은 노동부의 사회적기업 인증신청에 참가하지 않기로 했다.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단다. 대신 겨울철 약초 재배 등 수익원 다각화에 힘쓰기로 했다.

강원임업 설립을 견인한 원응호 관장은 "다양한 업종의 사회적기업을 키워내려면 사회적 펀드를 활용한 새로운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원 관장은 "혼농임업을 하려고 해도 투자 후 최소한 3년은 기다려야 성과물을 얻을 수 있다"며 "오래 기다려줄 수 있는 사회투자자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엄형식 춘천노동복지센터 운영위원은 "경제민주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강원임업처럼) 소유구조와 운영원칙에서 올바른 기업이 체계적으로 육성되고 제도적으로 지원됨으로써 경제전반의 건강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의 민주주의 학교이듯, 건강한 소유구조의 기업들도 노동자와 시민들에게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훈련할 수 있는 중요한 교육의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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