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신뢰 무너뜨린 탐욕

머니투데이 정희경 금융부장 | 2007.08.23 10:54
최근 국제 금융시장을 뒤흔들어 놓은 미국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발 신용경색은 금융의 양면성을 재차 입증했다. 첨단 자산유동화 기법이 빚어낸 이번 사태는 한때 부동산 경기 활황에, 또 금융회사의 수익 급증에 큰 힘을 보탰으나 갑작스레 부메랑이 돼 세계적 투자은행과 헤지펀드, 급기야 경제까지 위협하고 있다.

경제의 '혈맥'으로 불리는 금융은 제대로 작동하면 성장촉진제지만 반대의 경우 독이 돼 스스로와 경제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간다. 금융이 경제에 순기능이 아닌 역기능으로 작용해 위기를 부른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금융위기가 끊이지 않는 데는 무엇보다 제어하기 힘든, 투자자들의 탐욕이 자리잡고 있다.

이번 사태의 경우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고, 과도한 '확장'이 화근이었다. 금융회사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유동화하는 과정에서 무리한 차입을 일으켰고, 학자금 대출이나 일반 신용대출 채권까지 편입하며 일종의 '세탁'을 했다. 그 결과 투자에 참여한 금융회사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최종 단계의 유동화 증권은 사실상 리스크(위험) 평가가 불가능했다.

감시자가 돼야 할 신용평가회사들은 오히려 이 증권이 '투자 적격'으로 인식되도록 돕기까지 했다. 이런 과정에서 키워진 위기 불감증은 도덕적 해이를 넘어 탐욕에 가깝다.

월가나 유럽의 투자회사들은 이전 같으면 의심했을 유동화증권을 위험이 아주 잘 분산돼 있다는 이유로 쉽게 사들이고 팔았다. 금리인하로 시중의 유동성도 풍부해 이를 다른 회사에 넘기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마치 언젠가 터질 수 있는 폭탄을 돌리면서도 자신은 안전하다고 자만한 셈이다.


사실 위험 분산은 금융의 중요한 순기능 중 하나다. 한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위험도 여러 사람이 거들면 쉽게 끌어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의 중개로 위험이 분산되면 창의적인 벤처기업이 굴지의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고,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기업들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진화하는 금융기법들은 위험을 효과적으로 분산하는 데 상당히 기여해왔다. 외환위기 직후 금융기관에 쌓인 부실채권을 신속히 정리할 수 있도록 도운 유동화도 당시 한국에는 선진기법이었다. 하지만 위험을 너무 쪼개면 더이상 위험이 아니다. 책임을 모두에게 물리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때 상호 신뢰까지 무너진다면 금융은 '파멸의 축'으로 돌변한다.

주요 투자은행들은 1998년 LTCM 사태를 교훈삼아 위기에 대비했다고 주장한다. 단기 부채를 줄이고 자금조달원을 다양화하는 한편 보유 자산이 부실화할 것에 대비해 자본도 늘렸다는 것이다. 이번에 '퀀트펀드'가 대규모 손실을 내면서 수모를 당한 골드만삭스도 언제든 유동화할 수 있는 자산 500억달러를 보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신뢰를 갉아먹는 탐욕을 제어하는 장치는 만들지 않은 것 같다. 각국 중앙은행이 대규모 자금을 긴급수혈하고 추가 조치를 검토하고 있어도 안심하지 못하는 것은 지나친 탐욕, 무너진 신뢰 때문이다. 향후 금융위기를 배제하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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