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4막 박근혜, '조연'이 된 그의 5막은?

머니투데이 이새누리 기자 | 2007.08.20 16:50
박근혜 후보의 인생은 '4막'으로 구성된다. '1막'은 모친인 육영수 여사를 여의기 전까지의 청와대 시절. 22년 동안 나라운영을 어깨너머로나마 지켜볼 수 있던 시간이었다.

"수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전자산업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는 김완희 박사의 말에 대학에서 전자공학과를 선택한 것도 이때다. 대학졸업 후에는 대학교수가 되겠다는 목표로 프랑스 유학을 떠났다.

평화롭기만 했던 인생 1막은 그러나 '총성소리'와 함께 산산이 깨졌다. 1974년 8월 15일 육 여사가 문세광의 흉탄에 숨진 것. 프랑스에서 비보를 전해 듣고 급히 귀국하면서 박 후보의 인생 2막은 시작됐다.

이때부터 5년간 박 후보는 퍼스트레이디 역을 대신한다. 슬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빠듯한 일정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힘든 시간은 반대로 배움의 시간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일거수일투족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기 때문. 지금 대통령을 바라보는 박 후보에겐 그 5년이 큰 자산이 됐다.

박 후보의 인생 3막은 또다른 총성으로 시작됐다. 1979년 10월 26일 부친은 김재규가 쏜 총탄에 목숨을 잃는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전한 박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지금 전방의 상태는 어떻습니까"라던 박 후보의 말은 유명한 일화다.

청와대에서 양 부모를 잃은 박 후보는 11월 신당동으로 이사한다. 그리고 20여년이 가까운 세월 동안 육영재단 등 사회활동에 전념한다.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독서와 글 쓰는 일에도 몰두했다. 박 후보는 공직에 있으면서 누리지 못한 자유로 인생 3막을 채웠다.

4막은 외환위기에서 촉발됐다. 98년 박 후보는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라며 '달성대첩'으로까지 불리는 보궐선거전에서 당선, 정계에 입문한다.



정당개혁을 부르짖던 박 후보, 2002년 2월 한번의 위기가 찾아온다. 그가 내놓은 '정당개혁방안'을 당에서 거부한 것. 박 후보는 "당이 변하지 않고 지지해달라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일"이라며 탈당을 감행한다.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한 박 후보는 노무현 후보 등과 손을 잡으라는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성향과 정체성이 다른 후보와는 함께 갈 수 없다는 이유 때문.

이후 2002년 당시 이회창 대선후보가 박 후보에 사과, 당에서 정치개혁방안을 수용키로 하면서 이 후보의 선대위원장으로 복귀한다.

2004년 탄핵역풍 속에 당 대표직은 떠안은 박 후보는 천막당사를 거치면서 무너진 한나라당을 살린 일등공신이 됐다.

그리고 2007년 당내 경선에서 대통령직에 출사표를 던진 박 후보는 제5막을 꿈꿨다. 그리고 그는 온 힘을 다해 그만의 가진 저력을 그대로 보여줬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했던 것과 약간 달랐다. 이제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 '주인공' 자리 대신 보조하는 '조연'으로 자신을 낮춰야 한다. 그의 5막 인생은 여전히 궁금하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베스트 클릭

  1. 1 계단 타고 2층에 배달한 복숭아 2박스…"한박스는 택배기사님 드세요"
  2. 2 끔찍한 '토막 시신', 포항 발칵…"아내 집 나가" 남편은 돌연 배수관 교체[뉴스속오늘]
  3. 3 [단독]의협 회장 반발에도…"과태료 낼라" 의사들 '비급여 보고' 마쳤다
  4. 4 손흥민, 부친 손웅정 감독 앞에서 "은퇴 후 축구 일은 절대 안 해"
  5. 5 "냄새난다"…50대 직장동료 세탁기에 넣고 돌린 일본 30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