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살린 '큰 손' 만덕할망을 아세요

머니투데이 이경숙 기자 | 2007.08.13 12:24

[당당한부자2007]<2>고두심씨가 말하는 김만덕

↑지난달 28일, '김만덕의 나눔쌀 천섬 쌓기' 행사 전 김만덕을 기리는 제례가 제주시에서 열렸다. 왼쪽 사진은 김만덕 영정. ⓒ이경숙 기자, 김만덕기념사업회

그는 평민의 딸. 11살에 고아가 됐다. 기생의 양녀로 자라 기생이 됐다. 23살에 제주목사를 설득해 양인의 신분을 되찾았다. 객주를 차렸다. 무역으로 큰 돈을 벌었다.

그의 인생이 여기서 끝났다면 우리는 김만덕(1739~1812년)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56살 되던 1796년, 제주에 큰 흉년이 들어 사람들이 굶어 죽게 되자 그는 전 재산으로 육지에서 쌀 500섬을 사 와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만덕 할망(할머니)은 크게 벌어 크게 쓰신 분이에요. 대장금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 한 줄 있는 것 가지고 그런 엄청난 이야기가 나왔는데, 우리 할망(김만덕)은 넉 줄이나 나와요, 넉 줄이나!"

김만덕기념사업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탤런트 고두심(56)씨는 '넉 줄'을 힘 주어 말했다. 역사적으로 김만덕이 대장금보다 의미 있는 인물이라는 뜻이다.

김만덕의 통 큰 기부 소식을 들은 정조는 그를 기특히 여겨 소원을 물었고, 김만덕은 "임금을 뵙고, 금강산에 가고 싶다"고 답했다. 정조는 그의 소원을 들어줬다. 평민인 그를 궁에 불러 들이기 위해 의녀반수(醫女班首)라는 벼슬까지 내렸다.

그때만 해도 국법은 제주여자가 육지로 나가지 못하도록 했다. 제주 인구를 유지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김만덕은 당시 제주여자로선 불가능했던 일을 세 가지나 해낸 것이다. 육지로 나간 것, 임금을 만난 것, 금강산에 다녀온 것.

조선시대 지식인들도 김만덕의 기개를 칭찬했다. 다산 정약용은 "기녀로서 과부로 수절한 것, 많은 돈을 기꺼이 내놓은 것, 바다섬에 살면서 산을 좋아한 것"이 기특하다고 했다. 추사 김정희는 김만덕의 은덕이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며 '은광연세(恩光衍世)'라는 글씨를 남겼다.


이런 김만덕을 제주 사람들은 '할망'이라고 친근하게 부른다. 제주도가 고향인 고두심씨 역시 '할망'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그가 1976년 드라마 ‘정화’에서 만덕 역을 맡았던 적이 있어서만은 아니다.
↑고두심씨
ⓒ이경숙 기자

"할망이 우리 조상에게 쌀을 나눠주지 않았다면 우리 조상이 굶어죽었을 거에요. 나도 태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르지요."

그는 올해 만덕 할망이 정조대왕을 만나 금강산 유람한 나이, 우리 나이로 57살이 됐다. 그와 김만덕기념사업회는 만덕 할망 이야기를 영화나 드라마로 되살리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 시나리오도 세 작품이나 확보해뒀다.

"할망은 크게 벌어 크게 쓰신 분이에요. 사람은 함께 어우러져 나누고 베풀면서 살아야 한다는 걸 보여줬어요.국내에선 그동안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제라도 세계에 알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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