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끄면 유기농 밥상이 푸짐~”

글,사진=이경숙 기자 | 2007.08.10 12:55

[쿨머니,아름다운소비]<6 끝-1>황미희씨 가족에게 배우는 로하스 노하우

편집자주 | 돈, 아껴야 잘 삽니다. 하지만 잘 쓰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잘 살 수 있습니다. 머니투데이의 '쿨머니, 아름다운 소비' 캠페인이 여러분께 새로운 소비 스타일을 제안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이고 그보다 더 먼 여행은 '가슴에서 발끝'이라는 말이 있다. 아는 것을 가슴으로 느끼는 것은 매우 어렵고 느낀 것을 실천하는 건 더 어렵다는 뜻이다.

나를 위해, 사회를 위해 ‘소비할 때도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말엔 동의해도 생활 속에서 아름다운 소비를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초심자가 보기엔 친환경, 친사회적 제품은 찾기 어려운데다 비싸다.
↑황씨네 식탁의 80~90%는 생활협동조합의
유기농제품이다. 뚝배기도 생협 제품.

하지만 황미희(46)씨는 현명하게 가계부를 구조조정해 아름다운 소비를 실천하는 데에 성공했다. 비법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한 마디로, 에어컨 끄고 외식 줄이면 유기농 밥상을 차릴 수 있다. 전체 생활비는 오히려 줄일 수 있다.

황씨의 가족은 전형적인 도시근로자 가족이다. 고등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남편 이성진(48)씨, 중학교 2학년인 딸 동민(15)양,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 영주(13)군 등 4명의 가족이 서울시 도봉구 쌍문동의 한 아파트에 산다.

이들의 소비생활비는 월 평균 180여만원. 통계청이 조사한 근로자가계 평균 생활비가 240여만원이니, 다른 가족보다 매달 60여만원을 아껴 쓰는 셈이다.

그런데도 황씨 가족은 ‘그 비싸다’는 유기농만 먹는다. 해삼 등 유기농 제품을 구하기 어려운 일부 먹거리만 빼고 이 가족의 냉장고와 찬장은 거의 대부분 ‘한살림’ 제품으로 채워져 있다.

황씨 가족의 주식, 부식비는 근로자가계 평균보다 46만원 이상 많다. 한달에 쌀 등 주식비로만 12만원, 부식비로 30만원, 과일 등 간식과 음료비로 33만원을 쓴다. 평균적으로 근로자가계가 각각 3700여원, 12만6000여원, 10만여원을 쓰는 데 비교하면 유기농 식단은 비용이 2~3배 더 드는 셈이다.

그렇지만 외식비까지 합치면 차이는 24만원 남짓으로 줄어든다. 황씨 가족의 한달 외식비는 단돈 5만원. 근로자가계 평균이 26만8000여원인데에 비해 12만8000원 정도 적다.

황씨는 대체 어디에서 돈을 아껴 유기농 식단을 차리고 있는 걸까? 그의 노하우를 알아내고자 무례를 무릎 쓰고 그의 집에 들어가 냉장고, 화장실 문을 있는 대로 열어봤다.

# 의(衣), 미용용품
냉장고 안엔 올망졸망하게 작은 병, 큰 병들이 모여 있다. ‘자연의벗’, ‘물살림’ 브랜드의 천연 화장품과 황씨의 이웃들이 만들어줬다는 ‘수제’ 화장품들이었다.

황씨는 전에 생활협동조합 제품을 썼는데 요샌 다른 조합원들이 직접 알로에와 글리세린, 정종을 섞어 만들어준 스킨과 로션을 자주 쓴다. 돈도 안 들고 효험도 좋기 때문이란다.
↑황씨가 폐식용유로 만든 허브비누.

비누는 생협 조합원들과 함께 폐식용유를 모아서 만들어서 나누어 쓴다. 시중에서 1만여원 안팎에 판매하는 허브 비누를 원가 2000~3000원에 만들 수 있다.

머리는 물비누로 감고 식초 1~2방울을 넣어 헹군다. 처음 샴푸, 린스를 포기했을 땐 머리카락이 뻣뻣했는데 5개월쯤 지나니 머리카락이 적응해 윤기가 돈다.

표백제가 들었다는 생리대는 쓰지 않는다. 대신 대안생리대를 만들거나 옛 어머니들처럼 소창을 접어서 쓴다. 옛날에는 이것을 ‘개짐’이라고 했단다. 직접 만든 대안생리대는 선물로도 인기만점. 그러나 황씨는 딸아이가 중학교 진학 후엔 당최 쓰려고 들지 않아 걱정이다.

옷은 2년 전부터 생활한복으로 만들어 입는다. 시장에서 무명천 5000원어치를 끊어오면 시중에서 5만~10만원하는 웃도리를 만들어 입을 수 있다. 옷감은 밤껍질, 귤껍질로 색을 낸다. 집안일하면서도 바지는 하루, 웃도리는 5~7일이면 하나가 완성된다.

아이들 옷은 바자회에서 사거나 다른 조합원 가족의 것을 얻어 입혔다. 이것도 딸아이가 중학교에 간 뒤엔 실천하기가 쉽지 않아졌다. 어른이 되어가는 딸과 서로 차이를 알아가는 중이랄까.


# 식(食)

황씨의 친정어머니는 전화 통화할 때마다 “애들 고기 좀 먹여야, 너무 먹이지 않더라”라고 걱정한다. 황씨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답한다. 고기는 명절날, 생일날만 먹으면 된다는 게 황씨의 속맘이다.
↑황씨 가족의 간식.

그래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유산슬, 튀긴닭 등 튀김요리는 생협에서 재료를 사다가 가끔 해먹인다. 어디에서 어떻게 키운지 모르는 고기를 사랑하는 가족에게 먹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외식은 거의 하지 않는다. 이것도 딸아이가 중학교에 가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부터는 쉽지 않다. 황씨는 아이들에게 가급적 고기가 들어 있지 않은 분식만 사먹으라고 얘기해준다.

간식은 감자, 고구마, 옥수수 같이 찐 것을 많이 준다. 황씨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 중 붕어빵, 팥빙수 등 간단한 도구로 만들 수 있는 건 직접 만들어준다. 쌀가루를 빻아다 냉동시켜 놓고 수시로 콩설기, 단호박설기, 찰떡, 쑥인절미를 해주기도 한다.

공정무역 상품도 선호한다. 특히, 설탕은 조금 걸어가는 수고로움이 있더라도 옆동네에 있는 두레생협에 가서 사다 쓴다.

황씨는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생명의 기본인 먹거리를 오직 이윤 추구의 대상으로만 보고 만들어 파는 사람들의 배를 불리는 데에 내가 참여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고 말한다.
↑한살림 조합원인 황씨는 환경위원, 쌍문매장
판매자로도 활동한다.

그는 또 “내가 생협 물품을 쓰는 건 가족의 건강을 생각하면서 동시에 우리 땅, 우리 농산물이 살아남게 하려는 의지, 돈벌이가 목적이 아닌 가치가 담긴 물품에 대한 애정 때문”이라고고 말한다. 만약 생협이 없었다면 먼 곳에서 에너지 쓰고 오는 값비싼 수입 유기농보다는 농약을 친 것이라도 우리 농산물을 이용했을 것이란다.

# 주(住), 교통

이 가족이 쓰는 화장실엔 표백제나 청향제가 없다. 청소할 땐 유기농 세제와 물만 쓴다. 때로는 아이들 교육 삼아 '콜라'로 화장실 바닥을 청소한다. 반짝반짝 잘 닦인 바닥을 보면서 아이들은 "외국에선 콜라로 교통사고 현장의 피를 닦는다더라"는 엄마의 말을 몸으로 느낀다.

황씨가 결혼할 때 가져온 에어컨은 거의 켜지 않는다. 한 여름에 태어난 딸아이가 "에어컨 켜는 날은 내 생일파티 하는 날"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래도 열대야가 심한 밤엔 에어컨을 켠다. 설정온도는 26도.

황씨 가족이 애용하는 냉방용품은 선풍기와 천장에 단 팬이다. 방마다 놓아 지금 쓰고 있는 선풍기만 석 대다. 천장의 팬은 거의 매일 튼다. 장마철 습한 공기를 몰아내는데도 팬이 유용하다.
↑황씨네는 한여름에도 에어컨을 쓰지 않는다.
대신 방마다 선풍기를 놓았다.

남편 이성진 씨는 4년 전부터 걸어서 출근한다. 직장인 월계고등학교까지 1시간 이상 걸리지만 초안산 공원으로 걸어가면 머리가 맑아진단다. 헬스클럽에 따로 다니지 않았는데도 이씨의 배는 총각 때처럼 날씬해졌다. 황씨는 "남편이 나보다 젊어 보인다"고 투덜대면서도 마냥 싱글벙글 웃는다.

황씨는 "앞으로는 식탁, 아이들 침대도 내 손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목공은 지난해 가을에는 잠시 배워뒀다. "돈에 대한 만족 상한선은 없지만 나는 지금 나의 생활에 만족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의 탁자 위엔 "미래를 심는 사람",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란 책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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