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어떻게 성사됐나?

머니투데이 박재범 기자 | 2007.08.08 17:59

종전협상 발언 등 정부 노력 주효…美측 적극적 움직임도 한몫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고려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7월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 후다. 미사일 시험 발사에 이어 핵실험까지 진행되면 정세가 걷잡을 수 없다는 판단 때문.

우리가 북측에 정상회담을 제안한 때는 8월. 그러나 북측의 답이 없었다. "북측은 상부에 보고하고 답을 주겠다고 했지만 호응이 없어 무산됐다"(이종석 전 통일부장관)는 설명이다. 그러던 중 북한의 핵실험이 터졌다.

이때부터 남북 공식 라인이 폐쇄됐다.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씨가 등장하는 것도 이 시점. 안 씨는 지난해 10월 20일 대북사업가인 권오홍씨의 주선으로 중국 베이징으로 날아가 북한 아·태평화위원회 이호남 참사를 면담했다. 비선 라인을 통한 정상회담 논의 의혹이 제기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안 씨는 정상회담 등의 제안 없이 쌀과 비료 지원 재개 등만 논의했다고 부인했다. 이화영 열린우리당 의원도 "안 씨가 당시 북측과 접촉한 것은 맞지만 곧 빠졌다"고 말했다. 안 씨는 '비공식 창구'를 마련하는 역할까지 담당했으며 이후에는 다른 투수들이 맡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안 씨를 이어 등장한 게 이화영 의원. 이 의원은 노 대통령의 의지를 북측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북측에서 노 대통령의 대북관을 러프하게 생각했던 것 같은데 여러 계기를 통해 노 대통령의 진정성이 전달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노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간 하노이 회담에서 나온 종전협상 발언, 올 2.13 합의때 보여준 한국정부의 노력 등이 가장 큰 계기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의원의 물밑 분위기 조성에 이어 이해찬 전 총리가 방북하면서 북측의 믿음은 한층 더해졌다.


이 의원은 "이해찬 전 총리가 사실상 특사 역할을 수행했다"고 평가했다. 이 전 총리는 미국을 방문, 남북정상회담으로 가는 마지막 걸림돌을 처리하는 업무도 맡았다. 여권의 핵심 인사는 "지난 1차 남북정상회담때는 미국의 뜻과 상관없이 돌파하는 형태를 취했지만 이번에는 미국 등 관련국들의 의지를 모아가면서 성사시켰다"면서 "북한이 정상회담에 응한 이유도 여기 있다"고 말했다.

우리 뿐 아니라 미국측의 움직임도 분주했다. 6자 회담 틀 내에서 논의하는 한편으로 북미 대화도 밀도있게 진행했다. 크리스토퍼 힐 미 아태담당 차관보가 지난 6월 북한을 방문한 것도 긍정적 '신호'였던 셈. 남북정상회담과 함께 남.북.미.중이 참여하는 4자 정상회담설이 계속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권 인사는 "북한과 미국 모두 부시 정부 임기 내에 문제를 해결하자는 입장인데 대략 시점을 내년 5월로 보면 남북 회담을 먼저 열어 김정일 위원장의 의지를 천명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고 해석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정부의 '물밑 접촉'이 본격 가동됐다. 정부는 지난달 초 김만복 국정원장과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간 고위급 접촉을 제안했으며 북한은 이달초 김 원장의 비밀 방북을 초청, 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논의했다. 이때 북측은 28일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제안을 했다.

김 원장은 3일 서울 노 대통령에게 이를 보고했다. 노 대통령이 북측 제안을 수용할 것을 지시하자 김 국정원장은 4일 재차 방북, "북측의 남북정상회담 개최 제안을 수용한다"는 대통령의 친서를 김양건 부장을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달했다.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마지막 절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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