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군자 할머니의 외로운 투쟁과 의로운 기부

예종석 한양대 경영대학장 | 2007.08.07 12:51

[쿨머니칼럼]위안부 배상금, 지원금 등 1억1000만원 기부


최근 미국 하원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해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인정 및 사과와 책임 이행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그 소식을 접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 바로 김군자 할머니였다. 할머니의 가슴속 깊이 맺혀있는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 드릴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다는 생각에서였다.

김군자 할머니는 어려서 양친을 여의고 열여섯의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의 종군위안부로 끌려가 3년 동안 성 노리개로 죽을 고생을 다했다. 그 당시의 괴로움에 대해 할머니는 미 하원 외교위의 아시아태평양환경소위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다음과 같이 토로한 바 있다.

“내 몸에는 너무나 많은 흉터들이 남아있고 죽지 않을 만큼 매를 맞았다. 하루에도 수십 명을 상대해야 하는 고통을 참지 못해 도망치다 붙잡혀 호되게 폭행당했으며 3년 동안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해방된 조국에 가까스로 돌아와서도 할머니의 생활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몸을 의탁할 곳이 없어 이곳저곳을 떠돌며 가정부 생활, 술집 생활로 힘들게 생계를 이어왔다. 1998년에야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주자는 취지로 설립된 ‘나눔의 집’에 겨우 입주할 수 있었다. 위안부 생활 당시 일본군에 맞은 후유증으로 청력장애를 겪고 있는 김 할머니는 6∼7년 전부터는 거동이 불편하여 외출조차도 쉽지 않은 형편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가 할머니께 해드린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할머니가 열세 살의 어린나이에 고아가 되어 소녀가장으로 갖은 고생을 다 할 때에도 그 누구도 할머니를 돕지 않았고 일본군에 정신대로 끌려갈 때나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조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할머니의 고난을 덜어주는 따뜻한 손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일본의 공식사과를 받기 위해 나선 할머니의 외로운 투쟁도 마땅히 관심을 가져야 할 정부조차 외면했다. 조국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한 김 할머니는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에 한때 국적포기까지 시도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그것조차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할머니는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받지 못한다면 도저히 눈을 감을 수 없다"며 병구를 끌고 미국전역을 돌며 종군위안부들의 피해를 설명했으며 미국하원에 증인으로 출석해서 마음속에 맺혀있는 분노의 응어리를 터뜨리기도 했다. 그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미 하원의 결의안이 통과된 것이다. 할머니는 "우리 정부가 못한 걸 미국이 해줬다"며 기뻐하기도 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우리 사회로부터 이토록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평생 뺏기기 만한 김 할머니가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다는 것이다. 2000년 아름다운재단이 출범할 때 할머니는 “배우고 싶고, 공부하고 싶은데 집안환경이 어려워 그럴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써 달라”며 거금 5000만원을 기부하였다. 그 돈은 할머니의 전 재산이었으며 정부의 뒤늦은 배상금과 지원금을 고스란히 모은 돈이었다.

할머니의 이웃사랑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2006년에도 또 1000만원과 5000만원을 각각 나눔의 집 요양시설 건립비와 고아들을 위해 써달라며 쾌척했다. 그 돈 또한 그동안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받은 생활안정지원금을 차곡차곡 모은 것이었다. 김 할머니는 항상 일본정부로부터 꼭 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 배상금도 받게 되면 개인적으로 쓸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 돈 역시 생활이 어려워서 공부하기 힘든 학생들을 돕는 데 쓸 계획이다.

할머니의 자아를 초월한 선행은 우리들을 부끄럽게 하는 동시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할머니의 덕행은 기부가 꼭 부자나 이 사회로부터 혜택 받은 사람들만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뜨렸으며 세상에 나눌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증명한 것이다. 김군자 할머니는 살아 있는 천사다. 할머니의 만수무강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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