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두산과 효성을 보라

머니투데이 성화용 시장총괄부장 겸 산업부 부장급기자 | 2007.08.03 07:53
고색 창연한 정장 차림으로 무겁게 걷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화사한 캐주얼로 갈아 입고 달리는 모습을 보면 눈길이 가기 마련이다. 한국 재계에 그런 기업이 둘 있다. 두산효성이다.

두산그룹은 2000년대 들어 10건의 M&A를 성사시키며 기업가치를 20배 이상 키웠다. 30대그룹 평균치의 6배 가까운 초고속 성장이라는 점도 놀랍지만 소비재와 서비스 매출이 70%를 차지하던 전형적인 내수기업이 산업재 비중 80%의 중공업그룹으로 변신했다는 점이 더욱 놀랍다.

대개 '먹고 마시고 노는'업종의 기업은 보수적이다. 캐시플로우가 안정적이어서 변화에 인색하다. 그런 두산이 주수입원인 맥주와 음료를 팔고 중후장대 제조업을 사들인 건 파격을 넘는 모험이었다.

그러나 결단은 옳았다. 두산의 변신을 촉구한 매킨지 보고서의 힘이 아니라, 보고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냉정한 경영감각의 승리였다. 여기서 박용만(두산 인프라코어 부회장, 오너일가 5남)이라는 걸출한 40대(2000년 당시 45세)경영자가 두각을 나타낸다. 최근 49억달러 짜리 잉거솔랜드를 인수하기까지 박용만은 두산 M&A의 전략가 겸 결정권자로 맹활약했다. 오너 형제들은 다섯째를 신뢰했고, 그와 두산은 승승장구했다.

글로벌 M&A시장에서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는 또 하나의 중견그룹이 효성이다.
미국 굿이어의 타이어코드 공장을 인수하고 중국 변압기업체인 남통우방에 이어 독일 아그파 자산을 사들였다. 지난 6월에는 3000억원을 들여 금융회사인 스타리스를 론스타로부터 인수했다.

처음에는 국내에서 실패의 연속이었다. 2004년 대우종합기계(두산인프라코어), 2005년 대우정밀(현 S&T대우) 인수전에서 있따라 고배를 마셨다. 그래도 조석래 회장은 "가치가 있다면 어떤 기업도 인수할 수 있다"며 의욕을 보였고 결국 여러 건의 딜을 성사시켰다.


효성의 보수적인 경영컬러가 달라지기 시작한 건 조석래 회장의 아들 3형제가 경영 전면에 나선 것과 무관치 않다. 일각에선 3형제에 대한 사업 배분 구도와 효성의 기업 인수를 연계시키기도 하지만, 선후가 어떻든 3명의 후계자들이 효성의 M&A 동력이 된 건 사실인 듯 하다. 실제로 스타리스 인수는 3남인 조현상 전무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두산과 효성의 공통점은 글로벌 감각이 있는 '젊은피'가 오너그룹에 수혈됐고, 이들이 사실상 전권을 쥔 채 기업사냥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젊은 게 전부는 아니다. 강덕수 STX그룹 회장(1950년생)과 최평규 S&T그룹 회장(1952년생) 등 M&A를 통해 그룹을 일군 기업인들이 벌써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다. 그러나 이들은 맨땅에서 스스로의 노력과 네트워크로 사업을 일으킨 자수성가형이다. 이들은 처음부터 작업복과 캐주얼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좀체 변할 것 같지 않던 두산이나 효성이 달라진 것은 역시 경영진에 변화가 왔기 때문이다. M&A 같은 중대한 결단은 전문경영인의 몫이 아니다. 오너 경영 기업이라면 오너가 달라지는 길 밖에 없다.

아직도 다수의 국내 대기업들은 글로벌 M&A시장을 서슴없이 넘나드는 두산과 효성을 흉내낼 준비가 덜 돼 있다. 이들이 검은색 정장을 입고 옛날 방식으로, 안정적으로, 천천히 걷는 동안 캐주얼 감각의 자본주의 전투복을 갈아입은 몇몇 기업은 때로 산을 넘고 물을 건너며 맹렬히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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