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뷰]한국 언론의 참담함

머니투데이 박형기 국제부장 | 2007.08.02 10:34
1일 로이터의 뉴스 한 줄에 온 나라가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로이터는 이날 밤 8시50분께 '아프간 군 한국 인질 구출작전 개시'라는 기사를 긴급 뉴스로 타전했다. 아프간의 영자매체 '아프간 이슬라믹 프레스'도 같은 내용을 보도해 순식간에 한국은 공항상태에 빠졌다.

국제부 야근기자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고, 나는 다른 국제부 기자를 빨리 수배하라고 지시했다. 나는 이 뉴스를 접하고 '그럴 리가 없는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로이터의 기사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 아프간 인질 사태에서 아프간 이슬라믹 프레스와 로이터는 비교적 정확한 보도를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보도의 신뢰성에 대한 의구심은 가시질 않았다. 인질들이 한 곳에 모여 있다면 모를까. 인질이 분산되어 있는 마당에 인질 구출 작전은 너무도 위험한 도박이기 때문이다.

내가 탈레반이라면 아프간 군 또는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 군이 인질을 구출하기 위해서 작전을 개시한다면 인질을 곧바로 죽이거나 인질을 방패로 극렬한 저항을 할 것이다.

그러나 일단은 로이터의 기사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모든 한국 언론이 로이터를 추종보도하는데, 이를 거스릴 용기도 없거니와 우리가 독자적인 소스, 즉 취재원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백컨대, 나는 스스로를 국제전문기자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번 사태를 통해 신데렐라처럼 떠오른 아프간 이슬라믹 프레스라는 언론을 처음 알았다.

기자는 아프간 이슬라믹 프레스를 인용한 연합뉴스의 보도를 보고서야 이 언론의 존재를 알았다. 도대체 이슬라믹 프레스가 어떤 매체이길래라는 생각이 들었고,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았다. 이슬라믹 프레스의 보도는 대부분 정확했고, 빨랐다. 사실 로이터의 보도도 이슬라믹 프레스를 인용한 것이 많았다.

이후 기자는 이슬라믹 프레스를 즐겨찾기 목록에 추가해 놓고 매 시간 이 사이트를 들어가보고 있다. 요즘 기자의 주요 일과는 이슬라믹 프레스를 체크하는 것이 되 버렸다.


기자의 그럴리가 없는데 라는 의구심은 맞아 떨어졌다. 로이터는 이날 밤 10시50분쯤 '아프간 군 한국 인질 구출 작전 개시' 보도가 오보이며, 기사 전문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순간 '그럼 그렇지' 하는 안도감과 함께 허탈감, 자괴감이 밀려왔다. 이번 아프간 인질 사태에서 기자가 한 일이라고는 오보일 가능성이 큼에도 외신을 따라가는 것 뿐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기자는 외신의 장단에 춤을 추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보다 뼈 아픈 것은 한국 언론의 취재력이 일본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일본 언론이 한국 언론보다 비교적 정확한 보도를 하고 있다.

일본 언론은 로이터보다 오보가 많았지만 우리가 다루지 못한 인질의 상태를 처음으로 보도하는 등 나름대로 적극적인 보도를 해 한국언론이 일본 언론을 인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일본언론이 한국언론을 인용해야 하는데, 한국언론이 일본언론을 인용하는 참담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일본이 아프간 지역에서 독자적인 취재원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취재력 또한 국력이다. 한국의 GDP는 얼추 1조 달러 정도다. 일본은 우리보다 약 5배 많은 5조 달러 정도다. 한국 대부분 언론이 중동에 특파원을 파견하지 못하지만 일본의 대부분 언론은 특파원을 파견한다는 이야기다.

최근 두바이가 뜨면서 두바이에 특파원을 두고 있는 한국 언론사가 늘고 있지만 자체 취재원을 확보하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한국의 두바이 특파원들은 이라크전을 계기로 중동의 CNN으로 자리매김한 알자지라 방송을 인용하는데 그치고 있다.

언력(言力, 언론의 힘) 또한 국력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이번 사태가 발생한 이후 기자는 한국 국제부 기자의 무기력을 확인하고 있다. 더 이상 무기력과 참담함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 하루빨리 인질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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