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성공한 '쇼', 실패한 '규제'

머니투데이 정희경 금융부장 | 2007.08.02 10:05
2002년 7월 말 뉴욕 맨해튼. 케이블TV 업체 아델피아의 창업자인 존 리가스 전 회장이 이른 새벽 두 아들과 함께 회계부정 혐의로 검찰에 긴급 체포됐다. 당시 분식회계 스캔들이 불거진 터여서 리가스 부자가 수갑이 채워져 연행되는 모습은 미 전역에 생중계됐다.

때 맞춰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정부가 앞으로 부정한 기업이나 기업은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논평했다. 하지만 다른 한켠에선 '쇼를 한다'는 볼멘 목소리도 나왔다.

미국 기업 총수들의 수난시대를 연, 이 장면은 그 보름 전 부시 대통령이 월가를 방문했을 때 어느 정도 예고됐었다. 그는 "기업들의 부정이 근로자와 투자자들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한 후 특별수사팀을 꾸려 기업 부패를 발본색원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아울러 "주요 신문의 경제면이 스캔들 면으로 간주돼서는 안 된다"며 업계의 자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5년 후 미국에서 분식회계 얘기는 쑥 들어갔다. 회계 감독기준과 제재 수위를 높인 사베인-옥슬리법까지 제정되면서 기업인들은 회사 문을 닫을 '각오' 없이는 분식을 엄두조차 내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고강도'의 규제는 회계 투명성 및 투자자 신뢰를 높인다는 본래 목표는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베인-옥슬리법 시행 5년의 평가는 그리 긍정적이지만 않다. 한마디로 '소탐대실'(小貪大失)했다는 비판이 적잖다.

우선 개별 기업의 회계처리 비용 부담이 커졌다. 리스크를 감수하는 '기업가 정신'의 약화였다고 한다. 부적절한 회계처리에 가혹한 형사처벌까지 따르게 되자 아예 상장을 철회하는 기업이 나타났고, 연구·개발(R&D) 투자를 기피하는 경향도 두드러진 게 이를 뒷받침한다.


해외 상장을 타진하던 외국 기업들이 뉴욕이 비해 규제가 적은 런던으로 발길을 돌렸다. 신규 상장이나 상장 유지가 까다로와 진 것은 일반 투자자 대신 사모펀드의 활동반경을 넓혀주었다. 그 결과 런던은 뉴욕을 제치고 세계 금융 1번지로 올라섰다. 세계 금융도시 가운데 뉴욕은 여전히 투자은행(IB) 부문에서 1위를 달리고 있지만, 기업공개(IPO)나 파생금융상품 부문에서 런던에 밀리고 있다.

'과감한' 조치가 없었다면 투자자 신뢰가 이처럼 빨리 회복되지 못했을 것이란 반론도 있고, 사베인-옥슬리법에 대한 평가는 10년 후 달라질 여지는 남아 있다.

그러나 최소한 시행 5년 결과로 보면 과도한 규제는 '득'보다 '실'이 눈에 띈다. 회계개혁 법안을 입안했던 마이클 옥슬리 전 의원조차 "당시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규제가 과도했다는 점을 인정했을 정도다.

이같은 경험은 우리에게도 시사적이다. 초과 유동성이 부동산에서, 또 주식시장으로 흘러가는 과정에서 나온 금융·경제 정책이 '규제 우선'의 빛깔을 띠고 있는 탓이다.

금융 당국은 눈앞의 이상 기류에 즉각 달려들어 손을 쓰기 앞서 해당 조치가 시장이나 금융산업 발전을 옥죄는 것은 아닌지 미리 검토하길 기대한다. 지금을 비상상황으로 보지 않으면 말이다. '소탐대실'은 서울에서 재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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